신탁 방식 재건축을 추진 중인 여의도 한양아파트가 시공사 선정 절차를 중단했다. 서울시가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에 “정비계획안이 확정되지 않은 상태에서 시공사를 선정하는 것은 위법”이라며 시정 조치를 내린 데 따른 것이다. 여의도 재건축 ‘1호 사업지’ 타이틀을 두고 속도전을 벌이다 되레 사업 진척이 더뎌지는 모양새다.
20일 정비 업계에 따르면 여의도 한양아파트 사업시행자인 KB부동산신탁은 소유주들에게 ‘시공자 선정을 위한 전체회의 소집 취소’를 공고했다. 한양 측 운영위원회는 “관할청의 권고를 배척하면 향후 전체회의 결의 무효, 고발, 수사 의뢰 등 후속 조치로 상당한 시일이 소요될 것으로 예상됐다”며 “사업 지연 우려로 서울시 권고를 수용해 전체회의를 연기했다”고 밝혔다.
한양아파트는 당초 이달 29일 총회를 통해 현대건설과 포스코이앤씨 중 한 곳을 시공사로 선정하려 했다. 첫 여의도 재건축 입성이라는 상징성을 갖춘 만큼 포스코이앤씨는 총사업비 1조 원 책임 조달, 현대건설은 가구당 최소 3억 6000만 원 이상 환급 등의 파격 공약을 걸며 수주전에 나섰다. 시공사 간 설계안의 신통기획안 준수 여부를 놓고 다툼이 벌어지는 등 과열 양상도 띤 것으로 알려졌다.
사업 지연은 불가피할 것으로 전망된다. 서울시는 여의도 한양아파트가 현재 정비계획이 제3종 일반주거지임에도 도시계획위원회를 통과하지 않은 신속통합기획안을 토대로 ‘일반상업지역’으로 전제, 롯데슈퍼 등 일부 소유주가 동의하지 않은 부지까지 사업 구역에 포함시켜 입찰을 진행한 만큼 위법 소지가 있다고 보고 있다. 롯데슈퍼는 450평 규모 토지·건축물로 롯데쇼핑주식회사가 단독으로 소유하고 있다.
한양과 KB부동산신탁은 롯데슈퍼 등과 협의해 정비계획 변경 절차에 속도를 낸다는 계획이다. KB부동산신탁은 “관할 관청과 현안을 해결하기 위해 업무 협의를 진행 중에 있으며 조속히 해결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할 것”이라고 전했다. 여의도 한양 재건축은 기존 588가구를 허물고 최고 56층, 5개 동, 아파트 956가구와 오피스텔 128실 규모의 국제금융 중심지 지원 단지로 재건축하는 사업이다.
신탁 업계는 이번 사태가 전문성을 내세운 신탁 방식 전반에 대한 불신으로 번지는 것은 아닌지 우려하고 있다. 한 신탁 업계 관계자는 “여의도 한양아파트가 규모나 속도 면에서 상징성이 있는 단지다 보니 시행자가 속도를 무리해서 높인 것 같다”고 전했다. KB부동산신탁은 7월에도 ‘특정 업체 밀어주기’ 논란 속에 한양아파트 시공사 입찰 공고를 한 차례 철회한 바 있다. 서울시의회 이성배(국민의힘) 시의원 등 10명은 공공 지원 대상이 아닌 재개발·재건축 사업도 서울시 공공관리제 적용을 받아야 한다는 내용의 조례 개정안을 발의한 상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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