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약물 남용 사태는 (새클러) 가문의 한 사람 때문에 시작됐다. 이 사람은 의학으로 큰 돈을 벌려면 영업과 홍보가 필요하단 걸 알았죠”
오피오이드 사태의 발단이 ‘아서 새클러’라고 밝히는 이디 플라워스 검사(우조 압두바 분)는 비장했다. 아편 성분의 진통제 옥시콘틴 남용의 진실을 밝혀내려는 이디 플라워스 검사와 피해자, 가해자가 등장하는 넷플릭스 시리즈 ‘페인킬러’는 새클러 가문을 고발하는, 실화에 바탕을 둔 6부작 범죄 드라마다. 실존 인물들과 허구가 섞여 ‘펜타닐’이라는 국가적 재앙의 원인과 결과를 집요하게 파헤친다.
제약 혁명 직전 아서 새클러(클락 그렉 분)는 정신과 의사였다. 당시 정신의학계에서는 전두엽 절제술이 횡행했는데 이 수술법은 기회가 단 한 번뿐인 치료였다. 제대로 된 약만 있으면 평생 환자가 생긴다는 걸 알게 된 그는 신약을 출시했다. 전두엽 절제를 병에 담은 약물이었다. 의료행위보다는 영업에 소질이 있었던 그는 의사를 그만 두고 제약회사 ‘퍼듀파머’를 인수했다. 미국 최대 규모의 의료 광고 대행사도 샀다. 마케팅이 의료 산업의 미래임을 예견한 그는 신경안정제 ‘발륨’을 출시해 환자들을 끌어모았다. 이렇게 아서는 현대식 제약업을 만들어내고 가문의 부를 키웠다. 아서가 심근경색으로 급사하자 조카인 리처드 새클러(매튜 브로데릭 분)가 사장직에 올랐고 죽음의 진통제 ‘옥시콘틴’이 탄생했다.
‘페인킬러’는 탐사 저널리스트 패트릭 래든 키프가 2017년 뉴요커에 기고한 ‘고통의 제국을 건설한 가문’ 특집기사와 베리 마이어가 2018년 출간한 동명의 책을 토대로 한다. 키프 기자는 “멕시코의 마약 카르텔을 취재하다가 오피오이드 사태와 거대 제약회사에 관심이 생겼다. 2010년 시날로아 카르텔이 국경을 넘어 미국으로 대량의 헤로인을 실어 날랐고, 갑작스런 헤로인 공급에 의문이 들어 오피오이드 사태를 주시했다”고 넷플릭스를 통해 밝혔다.
‘옥시콘틴’을 유통한 제약사 퍼듀 파머는 파산했지만 현재까지 새클러 가문은 한번도 형사 고소를 당한 적이 없다. 퍼듀 파머는 규제당국, 의사와 환자를 오도하고 옥시콘틴 중독의 위험을 경시한 소비자 기만 마케팅과 관련해 2007년과 2020년 두 차례 연방법원에서 유죄를 인정했다. 그러나 실 소유주인 새클러 가문은 퍼듀 경영진의 위법 행위를 전혀 몰랐다고 주장해 법적 책임을 피했다. 2억2500만 달러를 내기로 법무부와 합의한 후 퍼듀 파머는 법원에 파산보호를 신청해 민사소송면책을 받으려 했다. 비영리 법인으로 거듭나겠다는 퍼듀 파머의 계획이 파산법원에서 용인되면서 오히려 소송리스크를 피해왔다. 이렇게 새클러 가문은 재산을 지키기 위해 파산보호 제도를 악용하려 했다. 그러나 최근 미국 연방대법원은 제약사 퍼듀 파머와 관련한 파산 합의를 일시적으로 중단했다. 법무부의 항소를 받아들여 법의 맹점을 악용하려던 억만장자 가문의 책임에 다시 의혹을 제기한 것이다.
마약성 진통제 남용 위기는 현실이 허구보다 더 비현실적이다. 다큐멘터리 ‘세기의 범죄’를 시청하면 더 극심한 공포가 몰려온다. 수많은 사람을 죽인 옥시콘틴은 가려진 부분이 훨씬 크다. 제약사 퍼듀 파머는 1996년 옥시콘틴을 시장에 출시했다. 매캔지의 마케팅 전략에 힘입어 출시 당시 4400만 달러(31만6000건 처방)였던 옥시콘틴의 매출을 2001년과 2002년 합산하여 약 30억 달러(1400만 건 이상 처방)로 끌어올렸다. 2001년에만 옥시콘틴의 마케팅 및 홍보에 지출한 금액은 약 2억 달러. 퍼듀를 소유한 새클러 가문은 2008~2017년 회사에서 100억 달러 넘게 받았다. 이 중 약 절반을 세금이나 기업 재투자에 썼다해도 9년 만에 50억 달러를 벌어들인 것이다.
고통을 겪는 인간은 약물에 의존적이 될 수 밖에 없다. 의사 처방으로 오피오이드를 구입하다가 한계를 넘게 되면 암시장 거래를 하거나 같은 성분이 들어간 헤로인 등 마약에 손을 뻗게 된다. 1924년 미국 내 판매, 수입, 제조가 금지된 헤로인도 제약사 바이엘이 개발한 오피오이드 만병통치약이었다. 양귀비에서 진액을 추출해 아편이 만들어진다. 아편은 모르핀이 되고 모르핀은 헤로인으로 바뀐다. 그리고 모르핀보다 약효가 50~100배 이상인 ‘펜타닐’은 존슨앤존슨 자회사 얀센이 개발한 오피오이드 진통제다./하은선 미주한국일보 편집위원·골든글로브협회(GGA) 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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