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세 A 군은 한국에서 군 복무를 마치고 한동안 회사 생활을 하다가 미국 뉴욕으로 이사했다. 그는 싼 아파트를 구해 룸메이트와 함께 지내며 뉴욕에서 공공 화장실을 찾는 애플리케이션을 개발해 출시했다. 새로운 앱 아이디어를 찾으면서 호주의 모바일 앱 개발 회사에 지원하기도 했다. 이전에는 직업을 찾아 새로운 도시로 옮겨 가는 것이 일반적이었으나 이제는 살고 싶은 곳을 찾아서 스스로 직업을 창출하는 시대가 됐다.
온라인 플랫폼과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업무를 보는 디지털 노마드 라이프스타일은 직업의 개념을 바꾸고 있다. 흔히 말하는 Z세대는 자라면서 스마트폰을 쓰기 시작한 디지털 네이티브다. 그 세대가 어느새 대학을 나와 직장 생활을 시작했다. 과거의 ‘직장 생활’이라는 개념도 더 이상 맞지 않는다. 직장이 있어서 일을 하러 다니는 것이 아니라 일을 찾아서 직업을 만드는 시대가 됐기 때문이다.
평생직장을 보장하던 일본의 도요타를 부러워하던 시절도 옛이야기가 됐다. 직장의 성공과 나의 성공은 분리됐다. 직장을 가족으로 표현하는 것은 필요 이상의 부담을 주기 때문에 지양해야 한다. 한 가지 일만 하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일을 병행하는 것이 흔해지고 있다. ‘n잡러’는 한 가지 일을 하는 것이 아니라 2개 이상 복수의 직업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라는 뜻의 신조어다. 영어처럼 보이지만 영어는 아니다. 미국에서는 정규 직업 외에 다른 부업을 하는 것을 사이드허슬(side hustle)이라고 표현한다.
최근 한 조사에 따르면 아르바이트나 부업으로 n잡을 해본 경험이 있는 직장인이 10명 중 8명 이상인 것으로 나타났다. n잡으로 하는 일은 판매·매장 관리, 블로거, 배달, 음식점 서빙·보조, 사무 보조 등이 다수를 차지하고 있고 유튜버와 같은 크리에이터나 온라인 스토어에 대한 관심도 높다. 현재 n잡을 하고 있다고 답한 직장인들이 부업에 투자하는 시간은 20대 3.2시간, 30대 3.1시간, 40대 3.4시간, 50대 4.1시간으로 나타났다. 또 연령별 부업을 통해 얻는 월평균 소득은 20대 53만 원, 30대 69만 원, 40대 92만 원, 50대 이상은 평균 105만 원으로 드러났다. 연령대가 높아질수록 부업에 투자하는 시간과 월 소득이 증가하는 것이다.
몇 십 년 전까지만 해도 은퇴 후의 계획은 한정돼 있었다. 하지만 지금의 5060세대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재능을 활용해 별도의 수익을 창출하고 제2의 인생을 준비하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일과 삶이 뒤섞이는 시대가 됐고 지원자가 회사를 역채용하는 시대가 됐다. 호기심을 가진 제너럴리스트가 필요하고 젊은이보다 시니어 케어 시장이 늘어나고 있다. 인생 전반과 비교할 필요도 없고 젊은 사람과 비교할 필요도 없다. 할 수 있는 일이 있다면 땀 흘려 일하는 데 귀천은 없다. 시대의 변화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이고 직장 밖에서 경제적 자립을 하기 위한 새로운 도전은 그 자체로서 귀한 자산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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