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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명]헌재 ‘정치 재판’ 악순환 끊어야





최근 나온 헌법재판소의 주요 결정들이 정치적으로 편향됐다는 지적이 이어지고 있다. 헌법재판소의 임무는 헌법 질서를 수호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것이다. 헌법은 최상위 법이지만 내용이 추상적이고 모호하다. 따라서 구체적인 사건이 헌법에 위배되는 지를 판단할 때 재판관의 주관이 개입될 여지가 크다.

헌재는 투기지역·투기과열지구 내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금지 조치 및 검수완박(검찰 수사권 완전 박탈)법에 대해 사실상 문재인 정부의 손을 들어주는 결정을 내렸다. 이들 사건은 재판관 9명의 의견이 5대 4로 갈릴 정도로 의견 대립이 팽팽했다. 하지만 이 두 사건의 다수 의견과 반대 의견을 비교해 보면 어느 쪽이 국민의 상식에 부합하는 지가 명확하게 드러난다.

먼저 헌재는 문 정부 시절 시가 15억 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담대를 전면 금지한 조치는 헌법에 어긋나지 않는다고 결정했다. 다수 의견은 이 조치가 법률에 근거가 있고 재산권을 과도하게 제한하지도 않았다고 봤다. 눈에 띄는 점은 이 조치의 강제성 여부에 대한 상이한 판단이다. 다수 재판관(유남석·이석태·이영진·김기영·이미선)은 “금융위원회는 은행들이 이 조치에 불응해도 불이익 조치가 없을 것이라고 명시적으로 고지해 기본권 제한 정도가 약하다”고 판단했다. 하지만 이선애·이은애·이종석 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이 조치는 금융기관에 대한 각종 행정 권한을 가진 금융위가 우월적 지위에서 은행으로 하여금 일방적으로 공권력에 순응케 하는 방식으로 권력적으로 행사됐다”고 지적했다. 다수 재판관은 금융 당국이 은행들의 금리 인하를 압박해 관철시키고 은행 최고경영자(CEO) 인선에까지 개입하는 ‘관치 금융’의 현실을 애써 외면한 것이다.



검수완박법 입법 과정이 헌법과 법률을 위반했지만 효력은 유효하다는 헌재의 결정은 해괴할 따름이다. 헌재는 일단 이 사건의 핵심 쟁점인 민형배 더불어민주당 의원의 ‘위장 탈당’은 국회법뿐 아니라 헌법상 다수결의 원칙(헌법 제49조)을 위반했다고 판단했다. 그럼에도 헌재는 검수완박법 자체는 유효하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남석·이석태·김기영·문형배 재판관은 “법사위원장과 국회의장의 가결 선포 행위는 국회의원의 법률안 심의·표결권을 침해하지 않아 무효가 아니다”라고 봤다. 여기에 캐스팅보트를 쥔 이미선 재판관이 “법률안 심의·표결권이 전면 차단되지 않았기 때문에 국회의 권한을 존중해야 한다”며 법안의 효력을 인정해 다수 의견이 됐다. 반면 이은애·이종석·이영진 재판관은 반대 의견에서 “입법 과정에서 요구되는 의결정족수 충족에 관한 중대한 헌법 위반의 경우에도 그 효력에 대해 침묵한다면 이 사건과 유사한 위헌적 행위가 앞으로도 반복될 수 있다”며 법안을 무효로 해야 한다고 봤다. 국회법과 헌법을 위배해 만들어진 법률이 유효하다는 헌재의 다수 의견은 헌법의 최종 수호자라는 헌재의 존립 근거를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두 사건 모두 문 정부의 손을 들어준 유남석 헌법재판소장과 이석태·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진보 성향으로 분류된다. 유 소장은 우리법연구회 창립 멤버고 김기영·이미선 재판관은 국제인권법연구회 회원이었다. 이석태 재판관은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 회장을 지냈다. 이들 진보 성향 단체 출신들은 문 정부 때 사법부의 요직을 꿰찼다. 유 소장과 이미선 재판관은 문 대통령이, 이석태 재판관은 김명수 대법원장이, 김기영 재판관은 더불어민주당이 지명했다. 이들 재판관이 자신을 지명한 문 대통령과 민주당에 유리한 결정을 내린 것을 우연으로 보기는 어렵다.

헌재 헌법연구관을 지낸 김진한 변호사는 저서 ‘헌법을 쓰는 시간’에서 “정치 권력이 바람직하지 않은 의도로 적합하지 않은 후보를 헌법재판관으로 임명할 때 헌법 재판은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된다”고 지적했다. 임기 내 헌법재판관 9명 전원을 교체하는 윤석열 정부가 명심해야 할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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