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스타트업 창업자의 경영권을 보호하기 위해 복수의결권을 부여하는 내용을 담은 ‘벤처기업육성에 관한 특별조치법’의 3월 국회 통과가 무산됐다. 조정훈 시대전환 의원이 재벌 세습 악용 가능성 등의 이유를 들어 끝까지 반대 의견을 굽히지 않았기 때문이다.
27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전체회의에서 김도읍 위원장은 벤처기업법에 대해 “오늘 이후 가장 가까운 시기에 개최되는 전체회의에서는 처리할 수밖에 없다”면서 전체회의 계류를 결정했다. 3월 임시국회는 30일 본회의에서 마지막 일정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4월 임시국회로 처리 일정 연기가 불가피하게 됐다.
이 법은 2020년 국민의힘 소속 양경숙 의원과 현재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인 이영 의원에 이어 중소벤처기업부가 각각 발의하면서 국회에서 논의가 본격화됐다. 정부 발의안은 비상장 벤처기업 창업주가 의결권이 있는 발행주식 총수를 기준으로 지분율 30% 미만일 경우 복수의결권 주식을 창업주에게 발행할 수 있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복수의결권 주식의 한 주당 의결권 수는 1개 초과 10개 이하의 범위에서 정관으로 정하도록 했다.
벤처·스타트업 창업자에 대한 복수의결권 부여는 더불어민주당이 2020년 총선 공약 중 하나로 제시했고 윤석열 정부의 국정과제 중 하나다. 따라서 여야의 이견이 없는 법안으로 꼽혔고 2021년 12월 상임위원회인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 전체회의에서도 통과됐다. 그러나 시민단체와 정치권 일각에서는 재벌의 비상장 계열사를 활용한 경영권 세습에 악용될 수 있다고 주장하면서 반대해왔다. 한 주당 1개 의결권을 부여하는 상법의 원칙에 위배되고 소액주주의 권리를 침해할 수 있다는 지적도 제기됐다. 이에 법사위 전체회의에서 통과되지 못하고 계류돼 있는 상태다.
조 의원은 2021년 상임위원회 전체회의에 이어 이날 법사위 전체회의에서도 “이 법을 통과시키는 실익이 잠재적 위협을 넘을지 의문”이라며 반대 입장을 고수했다. 경영권 세습 악용을 막기 위해 도입된 벤처기업의 상장 3년 후 보통주 전환 조항에 대해 “나중에 벤처기업이 기한 연장 또는 해당 조항 삭제를 요구할 것”이라고 우려를 제기했다. 정부가 조성한 모태펀드 투자 의존도가 높은 벤처기업 특성상 복수의결권이 허용되면 벤처기업의 도덕적 해이와 무분별한 투자로 이어질 수 있다는 주장도 했다.
국민의힘과 민주당 의원들은 이미 상임위원회에서 충분히 논의가 이뤄졌기 때문에 조속히 처리돼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조 의원을 설득하지 못했다. 반대 입장이었던 박주민 민주당 의원 역시 실효성에 의문이 든다고 지적하면서도 법사위 통과에는 동의했다. 정부도 창업주의 복수의결권 주식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해 복수의결권 주식을 상속 또는 양도하거나 이사의 직을 상실하는 등의 경우에는 복수의결권 주식이 보통주로 전환되도록 하는 등의 대책을 마련했다고 강조했다.
벤처·스타트업 업계는 성장을 위해 대규모 투자 유치가 불가피한 벤처·스타트업 특성을 감안하면 창업자에 대한 복수의결권 부여가 창업 생태계 활성화를 위해 반드시 필요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럼에도 이날 법사위에서 법안 통과가 무산되면서 아쉬움을 감추지 못했다. 벤처 업계의 한 고위 관계자는 “제도 도입을 위해 업계와 정부 등이 논의를 시작해 국회 해당 상임위원회 통과까지의 시간을 포함하면 이미 3년 넘는 시간을 허비했다”면서 “기업공개(IPO)를 준비하던 벤처기업들은 상장을 철회하거나 연기하고 있는데 국회가 너무나 무책임하고 태평하다”고 하소연했다.
한 스타트업 대표는 “복수의결권은 벤처기업이 대규모 투자를 통해 유니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것인데 이게 이렇게 미뤄질 일인지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정희 벤처기업협회 정책본부장은 “투자 냉각기가 지속되고 실리콘밸리은행(SVB) 파산 등 각종 대외 환경 악재로 기업가치를 제대로 보장받지 못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면서 “지금이 어느 때보다 정책적 지원이 시급한데 너무나 아쉬운 결과”라고 전했다. 유 본부장은 “복수의결권 도입은 벤처기업들이 대규모 투자를 유치하는 모멘텀이 될 수 있다”면서 “투자자 입장에서도 창업자 지분이 희석되는 것은 상당한 리스크다. 그나마 의지가 있는 투자자들도 복수의결권 등 제도적 보완 장치가 없으면 투자하기가 부담스러운 상황이 지속될 뿐”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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