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미국 아카데미 시상식의 주인공은 영화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에브리씽)’였다. 11개 부문 후보에 이름을 올린 이 작품은 작품상을 비롯해 7개의 상을 휩쓸었다.
12일(현지시간) 미국 로스앤젤레스(LA) 돌비 극장에서 열린 제95회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에브리씽’은 작품상, 감독상 등 7관왕을 기록했다. 특히 주인공 에블린 역을 맡은 양자경 아시아계 배우 최초로 여우주연상을 수상했다.
‘에브리씽’은 미국으로 이민 와 차이나타운에서 세탁소를 운영하는 에블린이 다중 우주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다. 아시아계 이민자 가족의 세대 갈등과 정체성 혼란을 성공적으로 담아낸 영화로 평가받았다.
말레이시아에서 태어나 ‘와호장룡’, ‘크레이지 리치 아시안’ 등 왕성한 활동을 펼친 끝에 ‘에브리씽’으로 아카데미상 여우주연상을 수상한 양자경은 이날 “이 장면을 보고 있을, 나를 닮은 소년 소녀들에게 상을 바친다”는 소감을 남겼다. 그러면서 “이 상은 희망과 가능성의 신호다. 꿈은 이루어진다”며 “여성들이여, 그 누구도 당신의 전성기가 지났다고 말하게 하지 말라”고 덧붙였다. 말레이시아에 있는 자신의 어머니를 향해서는 “이 상을 제 어머니와 세상의 모든 어머니들을 향해 바친다. 그들은 진정한 슈퍼히어로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또 에블린의 남편 웨이먼드를 연기한 배우 키 호이 콴은 남우조연상을, 국세청 직원 디어드리를 연기한 배우 제이미 리 커티스는 여우조연상을 받았다. 영화 ‘인디애나 존스2’에서 아역으로 출연하기도 했던 키 호이 콴은 “(베트남 전쟁으로) 오랫동안 난민 캠프에 있다가 긴 여정을 통해 이렇게 큰 무대까지 올라왔다”며 “여러분들에게 계속 꿈을 꾸라고 말씀드리고 싶다”며 울먹이기도 했다.
남우주연상은 영화 ‘더 웨일’에서 272㎏에 달하는 거구의 대학 강사 ‘찰리’로 분했던 배우 브렌던 프레이저에게 돌아갔다. 영화 ‘미이라’에 출연하며 일약 스타로 도약했던 프레이저는 촬영장에서의 부상과 할리우드 고위급 인사의 성추행 피해 등으로 할리우드에서 자취를 감췄던 바 있다. 그러나 그는 ‘더 웨일’을 통해 재기의 신호탄을 쏘았다.
비영어영화로 독일군의 시각으로 제1차 세계대전을 다룬 넷플릭스 영화 ’서부 전선 이상 없다'는 촬영상, 국제장편영화상, 음악상, 미술상 등 4개 부문의 주인공이 됐다. 작품상을 비롯 9개 부문에 이름을 올려 ‘제2의 기생충’이 탄생하는 게 아니냐는 기대감을 낳았으나 헐리우드의 높은 문턱을 넘지는 못했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정적 알렉세이 나발니를 향한 독살 시도를 다룬 영화 ‘나발니’는 장편 다큐멘터리 상을 수상했다. 이날 나발니의 아내 줄리아는 “제 남편은 진실을 말하고 민주주의를 수호했다는 이유 때문에 감옥에 갇혀 있다”며 “국가가 자유로워지는 날을 꿈꾼다”는 소감을 전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