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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꽂이] 스토리텔링, 진화와 파괴를 부르다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조너선 갓셜 지음, 위즈덤하우스 펴냄)

인류가 끊임없이 만드는 '이야기'

아테네 등 '문명발전' 이뤄냈지만

환경파괴·선동·전쟁 같은 병폐도

스토리텔링의 '필요악' 깨달아야







#. 플라톤이 살던 기원전 5세기 고대 그리스는 ‘살육의 시대’였다. 당시 아테네는 역병과 전쟁에 시달리고 있었다. 펠로폰네소스전쟁은 아테네인을 극한의 분열로 몰아붙였고, 전쟁이 끝나자 그들은 곧바로 내전에 돌입했다. 찬란했던 민주정이 막을 내리고, 스승 소크라테스를 비롯해 많은 목숨을 앗아간 중우정치가 고개를 들었다. 플라톤은 정치가의 꿈을 접고 이후 2000년 동안 명성을 떨칠 명저를 집필한다. 그런데 이상국가 건설에 대한 플라톤의 정치철학을 조목조목 담은 이 책의 마지막에는 의미심장해 보이는 대목이 등장한다. 유토피아에 이르려면 “이야기꾼(시인)을 모조리 추방해야 한다”는 주장이다.

#. 제2차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 600만명을 학살한 아돌프 히틀러의 나치 독일은 ‘독일 아리안 인종의 영광’이라는 스토리를 만들었다. 아리안족은 신의 선택을 받았고 이 세계의 지배민족이 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독일인에게 주입된 이런 스토리텔링으로 전쟁에 패하기 직전에도 독일에서 히틀러의 지지율은 절대적이었다. 또 나치의 망령이 80년 만에 부활했는데 이번에는 러시아를 통해서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서구 나치의 팽창을 막아야 한다’는 스토리를 가지고 1년전 우크라이나를 침공했고 전쟁은 지금껏 계속되고 있다.

문화는 이야기, 즉 스토리라는 말이 있었다. 문화를 만들기 위해서는 스토리텔링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어떤 스토리텔링이냐에 따라 하나의 거대한 문명을 만들고 정치에서 승리하며 경제에 매진할 수 있는 동력이 된다. 다만 이런 스토리텔링 본성이 오늘날 인류를 파멸위기로 모는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이른바 ‘이야기 과학’ 연구자인 저자 조너선 갓셜은 신간 ‘이야기를 횡단하는 호모 픽투스의 모험(원제 The Story Paradox)’에서 이야기는 부작용이 있는 ‘필요악’이며 이를 더 이상 간과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한다. 호모 픽투스는 ‘이야기하는 인간’이라는 의미다.



저자는 책에서 문학, 사회학, 철학, 진화심리학, 신경생물학에서 도출한 연구 결과에 흥미로운 ‘이야기’를 엮어 넣어 독자를 설득한다. 원시시대 동굴 들소의 출현에서 고대 아테네의 황금시대와 트로이목마까지, 도시괴담과 음모론에서 넷플릭스와 ‘해리포터’까지 이야기를 종횡무진하며 스토리텔링의 이로움과 해로움을 조목조목 설명한다.

그러는 사이 독자들은 주입된 이야기가 우리 뇌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 인간의 스토리텔링 본성이 인류의 진화와 문명에 어떻게 작용했는지 탐구하게 된다. 또 이야기가 어떻게 환경파괴, 무자비한 선동, 전쟁 같은 문명의 최대 병폐를 일으켰는지도 알게 된다.

우리 사회와 개인의 생활에서 스토리텔링의 비중과 역할은 점점 커지고 있다. 혹자는 책을 보지 않는다고 말할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일과를 찬찬히 살펴보면 절대로 그렇지 않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우리는 인터넷으로 SNS나 뉴스기사를 읽는 데 몇시간을 소비하고 버라이어티쇼, 시트콤, 다큐멘터리 등에도 열중한다. 중독성 게임도 이야기로 구성돼 있다. 대중가요나 팟캐스트나 오디오북 역시 말할 것도 없다.

오늘날 인간은 대면, 비대면을 막론하고 눈을 뜨고 있는 시간 내내 계속되는 ‘이야기 과잉 시대’에 산다. 그리고 이야기를 흡수해 각자의 세계관을 만든다. 물론 이야기가 문명을 발전시킨 것처럼 좋은 쪽으로 힘을 발휘한다면, 전혀 문제 될 게 없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이야기에는 양면성이 있어서 어두운 측면으로도 얼마든지 작동할 수 있다. 히틀러나 푸틴, ‘큰떠버리’(도널드 트럼프) 같은 악독한 이야기꾼이 그렇게 마음만 먹는다면 말이다.

한편으론 ‘성공하는 스토리텔링의 기본 요소’는 매우 단순하다. 이는 놀랍게도 원시시대 구술 민담부터 현대의 드라마, 유튜브에 이르기까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그 비법은△ 이야기가 말썽이나 갈등에 관한 내용일 것 △ 이야기에 깊은 도덕적 층위가 있을 것 등이다.

저자는 “우리 자신이 슬기로운 동물 ‘호모 사피엔스’가 아니라 이야기에 중독된 동물 ‘호모 픽투스’임을 자각시키기 위해서, 또 이야기가 우리의 마음과 사회에 작용하는 은밀한 방식을 똑똑히 알리고, 각성시키기 위해서 이 책을 썼다”고 말한다. 1만8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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