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대통령이 4월 미국을 국빈 방문(state visit)한다. 윤 대통령은 지난해 5월 취임 11일 만에 한미정상회담을 열어 한미 동맹의 복원을 전 세계에 선언했다. 이번에는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한국 정상으로는 12년 만에 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 한미 동맹 70주년의 이정표를 세울 대화에 나서는 것이다. 미국은 인플레이션감축법(IRA) 해결과 북핵 확장 억제 강화를 재확인하고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기구에 참여하는 빅딜로 한미 동맹을 업그레이드해야 한다는 조언이 나온다.
외신과 대통령실에 따르면 윤 대통령은 4월 미국을 국빈 자격으로 찾을 예정이다. 블룸버그는 이날 바이든 대통령이 백악관 국빈 만찬에 윤 대통령을 초대하는 방안을 준비하고 있다고 전했다. 7일(현지 시간) 존 오소프 상원의원(조지아주)은 바이든 대통령에게 윤 대통령을 국빈으로 초청해야 한다는 서한을 발송하기도 했다. 방문 시기와 형태는 여전히 조율 중이지만 현재로서는 윤 대통령이 2011년 이명박 전 대통령 이후 12년 만에 미국을 국빈 방문하는 안이 유력하다.
국가 정상의 방문은 사적 방문, 실무 방문, 공식 실무 방문, 공식 방문, 국빈 방문 등으로 분류된다. 최근 10년간 미국을 국빈 방문한 외국 정상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프랑스 대통령, 고(故) 아베 신조 전 일본 총리, 프란치스코 교황,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등 5명밖에 없다. 특히 바이든 대통령 취임 이후 국빈 방문은 마크롱 대통령이 유일하다.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이 성사되면 바이든 대통령이 직접 레드카펫 위에서 윤 대통령을 영접하고 의장대는 예포 21발과 함께 사열로 환영 행사를 연다. 숙소도 백악관 북쪽 블레어하우스를 이용하고 최고의 격식을 갖춘 국빈 만찬도 열린다.
외교가에서 주목하는 부분은 윤 대통령의 국빈 방문 시점이다. 4월 말로 조율 중인 이번 방미는 바이든 대통령이 2020년 취임 이후 이란 핵 협상과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등 외교 전선에서 뚜렷한 성과를 내지 못한 상황에서 진행된다.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을 취임 이후 두 번째 국빈으로 초청한 배경에는 외교적 이정표를 세우기 위한 기대감이 반영돼 있다는 것이다. 이 때문에 바이든 대통령이 윤 대통령과의 정상회담에서 북핵 문제, 나아가 미국의 핵심 이익인 대중국 견제에 대한 성과를 원하고 있다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박원곤 이화여대 북한학과 교수는 “미국은 하반기에 2024년 대선 국면에 들어가기 때문에 한미 동맹 70주년을 강조한 이번 방미는 기회”라고 평가했다.
양국 정상은 지난해 5월 21일 한국에서 가진 제1차 한미정상회의에서 북한 문제에 대해서는 한반도 비핵화와 미국의 확장 억제 공약을 재확인했다. 또 반도체와 원자력, 우주, 인공지능(AI) 등 신흥 기술에 대한 협력을 강화하기로 했다. 나아가 한국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기구인 인도태평양프레임워크(IPEF) 참여를 선언하며 양국 간 동맹을 글로벌 무대로 확장했다.
하지만 지난 1년간 양국을 둘러싼 안보와 외교·경제 환경이 급변하면서 더 진전된 논의가 필요한 상황이 됐다. 군사적 도발을 지속해온 북한은 지난해 8월 한국을 겨냥해 선제 핵 공격을 명문화했다. 이 때문에 국내적으로는 미국의 핵우산에 대한 신뢰 문제가 불거지고 있다. 윤 대통령은 올 1월 핵 비확산 원칙에 위반되는 자체 핵무장 가능성까지 언급한 상태다. 여기에 경제문제는 더욱 복잡해졌다. 미 의회의 IRA로 한국 전기차와 배터리 업체들이 직격탄을 맞았다. 공동성명에 명시한 사용후핵연료의 평화적 사용 또한 진척이 없다. 반대로 한국은 중국 견제를 위한 안보 협의체인 쿼드(Quad) 플러스에 대한 진전된 입장을 내놓지 않고 있다.
한미 동맹 70주년으로 무르익은 협력 분위기를 발판으로 삼아 두 정상이 꽉 막힌 현안에 대해 통 큰 합의를 해야 한다는 주장도 제기된다. 한국이 대중국 견제 기구인 쿼드 플러스 참여 의사를 밝히고 미국은 북핵 억제를 위해 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상시 전개하는 방안이다. 또 미국이 주도하는 디지털 시장 개방에 대해 논의하는 대신 국내적으로 큰 문제가 되고 있는 IRA와 사용후핵연료의 평화적 이용에 대해 합의하는 방안도 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는 “미국이 관심 있어 하는 공급망 부분에서 우리가 협력을 해주고 우리가 관심 있는 확장 억제 부분에서는 얻어내야 한다”며 “(원자력협정 문제는) 쉽지 않겠지만 시도는 해야 한다”고 말했다.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