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최악의 전력난을 직면한 남아프리카공화국이 9일 (현지 시간) '국가재난사태'를 선포했다.
시릴 라마포사 남아공 대통령은 이날 연례 국정연설에서 "우리는 심각한 에너지 위기에 직면해 있다"며 "몇 달씩 우리 경제와 국민들의 삶에 막대한 피해를 초래한 전력 부족을 겪어 왔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특별한 상황은 특별한 조치를 요구한다"며 국가재난 사태를 선포하고 "지금부터 바로 효력이 발생한다"고 밝혔다. 이에 따라 “식품, 저장, 소매 공급망은 물론 발전기와 태양광 패널 사업을 지원할 수 있게 될 것"이라는 설명도 이어졌다. 아울러 그는 대통령 직속 전기부 장관을 임명해 에너지 위기 해결에 전념하겠다고 덧붙였다.
이번 비상사태 선포는 남아공에서 하루에 최대 10시간 가까이 이어지는 순환 정전 사태가 이어지며 상권이 마비되고 경제난이 악화한 데 따른 것이다. 뉴욕타임스(NYT)는 “잇단 정전으로 히터가 꺼지면서 양계 업장에서 병아리들이 떼죽음을 당하고, 연쇄적으로 닭고기 및 계란 가격 인상으로 식량 공급이 위협받고 있다”고 설명했다.
전면적인 '블랙아웃'을 예방하기 위한 순환 정전은 전력 공급이 수요를 못 따라가는 남아공에서 16년 가까이 일상적인 상황이었다. 하지만 국영 전력회사인 에스콤의 재정 상태가 악화일로로 치달으며 특히 그 기간이 길어지고 빈도도 잦아졌다. 자금 문제로 노후화한 화력발전 시설을 제때 정비하지 못해 전력난이 심화했기 때문이다.
NYT는 “라마포사 대통령은 5년 전 취임 이후 에스콤에 대한 광범위한 대책을 수립했다”며 기존 발전소 수리 및 재생 에너지 도입 등을 꾀했지만 가시적 성과는 거의 없었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전문가를 인용해 “에스콤을 구하려는 그의 노력에는 그가 한꺼번에 너무 많은 일을 하려고 했다는 치명적인 결함이 있었다”며 “이전 정권과 마찬가지로 근본적 과제인 ‘전력 공급 유지’에 초점을 맞추지 못했다”고 덧붙였다.
잇단 정전 사태는 제조업을 비롯한 모든 산업을 멈춰 세워 남아공 경제 성장에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지난해 2.5%였던 경제 성장률은 올해 0.3%에 그칠 것으로 예상된다. 남아공 중앙은행은 하루 6∼12시간의 순환 단전으로 매일 2억 400만∼8억 9900만 랜드(145억∼640억 원)의 경제적 손실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산하기도 했다.
한편 제1야당인 민주동맹 측은 이날 비상사태 선포에 이의를 제기했다. 비상사태 선포 시 정부가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관료적 절차를 일부 건너뛰고 감사에서 자유로워지는 등 권한이 확대되는 점을 남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이다. 앞서 2020년 코로나 19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비상사태를 선포했을 당시에 ‘말도 안 되는 규제’를 내렸다는 것이 야권의 주장이다. 이에 로이터통신은 “이들은 이번 조치 역시 전력 공급 안정화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인지에 의문을 품고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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