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양만 하면 ‘완판’되던 시절이 있었다. 불과 2~3년 전이다. 새 아파트를 주변 시세보다도 싸게 살 수 있다 보니 주택 수요자들이 앞다퉈 청약 시장으로 몰렸다. 인근 구축 아파트보다 수억 원 싼 분양 단지들은 ‘로또’라 불리며 수백 대 1, 수천 대 1의 경쟁률을 나타냈다. 청약 가점 ‘만점’ 수준이 아니면 당첨은 꿈도 못 꿨다. 서울의 경우 아파트 초기 분양률(분양 후 3∼6개월 내 계약 비율)은 2020년 1분기부터 지난해 2분기까지 단 한 차례를 제외하고는 줄곧 100%를 기록했다. 분양하는 족족 다 팔렸다는 얘기다. 100%를 못 채운 2021년 2분기도 99.9%였다.
광풍이 불던 청약 시장이 완전히 뒤바뀌어 이제는 꽁꽁 얼어붙었다. 웃돈을 얹어 거래되던 분양권은 마이너스피가 붙어도 아무도 거들떠보지 않는다. 급기야 수도권 대단지에서 근 10년 만에 할인 분양을 실시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6일부터 정당 계약을 받는 경기 안양시 호계동 ‘평촌센텀퍼스트(덕현지구 재개발)’ 얘기다. 이 단지는 지난달 1순위 청약 평균 경쟁률이 0.22 대 1에 그쳤고 정당 계약률 역시 10% 선에 그칠 것이라는 우려가 제기됐다. 결국 조합원들은 긴급 총회를 열고 일반분양가를 10% 내리는 ‘눈물의 할인 분양’을 결정했다.
올 들어 청약을 실시한 단지들은 잇따라 초라한 성적표를 받아 들었다. 충남 한 단지의 1순위 청약에는 단 한 명만 신청했고 대구에서는 481가구 모집에 28명만 지원했다. 청약 미달 단지가 속출하면서 미분양 공포도 날로 커지고 있다. 지난해 말 기준 전국 미분양 주택은 6만 8107가구로 급증하며 정부가 ‘위험선’으로 제시한 6만 2000가구를 넘어섰다. 특히 우려스러운 것은 증가 속도다. 지난해 11월과 12월, 2개월 연속 1만 가구씩 쌓였다. 부동산 경기가 호황이던 2021년 말 1만 7700가구에서 1년 사이에 무려 5만 가구가 늘었다. 이런 속도라면 미분양 10만 가구 도달은 시간문제라는 관측까지 나온다. 분양만 하면 완판은 따놓은 당상이던 서울 아파트조차 지난해 4분기 초기 분양률이 20.8%로 주저앉았다. 서울에서 분양한 아파트 10가구 중 8가구가 미분양이라는 얘기다.
미분양 상황이 심각해지자 건설 업계는 일단 분양을 미루는 방안을 택하는 모습이다. 올해 1월 분양이 예정된 단지는 전국에 10개, 7275가구로 집계됐지만 실제로 분양이 이뤄진 단지는 4개, 1569가구에 그쳤다. 당초 계획의 21.6%만 실적으로 이어진 것이다. 건설 업계는 여기에 더해 정부가 보다 근본적인 미분양 대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준공 후 미분양 주택을 매입할 때 취득세를 감면해주거나 총부채원리금상환비율(DSR)을 완화해달라는 것이다. 정부가 한국토지주택공사(LH) 등을 통해 미분양 주택을 직접 매입하는 방안도 요청했다.
현 정부는 아직 직접 개입할 정도로 미분양이 위험한 단계는 아니라는 입장이다. 원희룡 국토교통부 장관은 미분양 문제가 국가 경제에 심각한 영향을 미치는 경우라면 미분양 매입을 고민할 수 있겠지만 분양가 인하 등 건설사의 자구 노력이 먼저라고 밝힌 바 있다. 시장 호황기에 건설사들이 정확한 수요예측 없이 무리하게 아파트를 지었던 것이 미분양이라는 부메랑으로 돌아온 만큼 건설 업계가 일정 부분 책임을 져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하지만 정부가 대책을 내놓아도 효과가 나타나기까지는 시차가 발생한다. 2007년 9월 당시 노무현 정부가 미분양 아파트의 임대주택 매입과 민간 매입 임대사업 유도 등의 대책을 발표했고 이명박 정부는 출범 첫해인 2008년에만 미분양 주택 매입 시 취득·등록세 감면 등 세 차례나 미분양 대책을 쏟아냈지만 폭증하는 미분양을 꺾지 못했다. 2007년 말 11만 2254가구였던 전국 미분양 물량은 2008년 말 16만 5599가구로 5만 3000가구 이상 늘었다. 위기가 현실화했을 때 움직이면 이미 늦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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