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둠이 내려앉은 해변의 파도 소리, 손에는 맥주 한 캔, 속마음을 실어나르는 대화, 그리고 낭만적인 불꽃놀이. 누구라도 싫어하기 힘든 조합 아니겠어요? 그런데 바다와 물살이들을 지켜 온 시셰퍼드코리아(인스타)가 불꽃놀이에 태클을 걸고 있어요. 그 좋은 걸 왜 못하게 하냐구요? 해변청소팀장을 맡고 있는 진정철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님의 이야기 찬찬히 들어볼게요.
아름다운 해변에 숨은 플라스틱 탄피
지난 9월 17일 오후, 인천 을왕리 해변에 시셰퍼드코리아 활동가님들과 시민 봉사자 32명이 모였어요. 모인 이유는 폭죽 탄피. 살면서 한 번도 관심을 기울여본 적이 없는데, 폭죽놀이를 하면 탄피가 떨어진대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진 탄피가 이만큼이나요.
놀라셨나요? 저도 놀랐어요. 정철 활동가님은 이번 캠페인으로 탄피 줍는 노하우를 얻으셨대요. 다수의 폭죽이 8연발, 10연발, 30연발, 48연발...을 자랑하기 때문에 탄피 하나가 보이면 그 자리에서 무더기로 나온대요. 30연발짜리를 쏘면 그 근처에 어김없이 30개의 탄피가 떨어져 있다는 거죠. 10개만 터뜨려도 300개. 그 탄피를 주워가는 사람 본 적 있으신 분? 없을 거예요.
시셰퍼드 팀과 봉사자분들이 2시간 동안 무려 1만4561개의 탄피를 주운 게 이상한 일이 아니에요. 8월에 을왕리에서 주운 것까지 합치면 2만 개가 넘고요.
탄피는 폭죽이 터지면서 떨어져 나오기 때문에 쪼개지고 갈라진 상태인데, 모래사장이나 바닷물 속에서 오랫동안 방치되면서 더더욱 쪼개져서 미세플라스틱을 뿜어내요. 해변과 바닷가의 생물들이 먹이로 오인하기도 하고요.
이 문제에 대해 아직까지 정확한 연구는 없어요. 하지만 정확한 수치가 없다고 해서 이 문제가 중하지 않다고 할 순 없죠. 그동안 거대한 해양쓰레기(폐어구, 아주 다량의 플라스틱 쓰레기)에만 관심을 가졌는데 마냥 즐겁게만 생각했던 폭죽놀이가 이런 문제점을 안고 있다니 뒷통수를 맞은 느낌이에요.
불법인데...폭죽 판매는 합법
정철 활동가님이 설명해 준 놀라운 사실이 하나 더 있어요. 원래 해변의 불꽃놀이는 법적으로 금지(해수욕장의 이용 및 관리에 관한 법률 제22조 8항)돼 있대요. 백사장에서 폭죽 제품 판매도 금지고요.
그런데 그걸 누가 알겠어요? 백사장 바깥의 편의점이나 매점에선 얼마든지 팔 수 있는데 말이에요. 가끔 해변에 폭죽놀이 금지, 과태료 부과 같은 내용의 현수막이 걸리기도 하는데 정작 방문객이 몰리는 휴가철엔 물놀이 안전 현수막 등등에 밀려서 찾아보기 힘들어져요.
그래서, 시셰퍼드 팀이 한참 탄피를 줍고 플래카드를 들고 있어도 저 옆에서는 아무것도 모른 채 폭죽놀이를 즐기는 경우가 많았대요. 활동가님들이 슬쩍 다가가서 이러이러한 사실을 아느냐, 고 물으면 "정말 몰랐다", "앞으로는 안 해야겠다"는 반응이 대부분이었다고.
인천시에서 해변 폭죽놀이를 관리하는 공무원은 단 한 명. 다른 업무도 맡는 분이시니까 사실상 관리감독을 하기가 어렵죠. 실제로 누군가 폭죽놀이를 신고한다 한들, 폭죽이 1분이면 다 터질텐데 무슨 소용이겠어요.
모두의 노력이 필요해
탄피를 줍는 것만으로는 근본적인 문제 해결이 안 되겠죠. 그래서 정철 활동가님도 여러 방법을 고민 중이에요. 예를 들어 바닷가에서 폭죽놀이 제품을 판매하는 세븐일레븐, CU, GS25, 이마트24 이런 기업들에 판매 금지를 요구할 수 있겠죠. 본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할 수도 있을테구요. 하지만 대기업 편의점 본사에서 시원하게 OK한다 한들 바닷가의 슈퍼, 매점에서 판매하면 소용이 없어요.
또 예를 들어서, 법적으로 해변으로부터 반경 1km 이내에서 폭죽 판매를 금지한다면? 누군가는 1km 바깥에서 폭죽을 팔 거고 사는 사람도 있겠죠. 그렇다고 지자체에서 해변마다 사람을 보내서 단속하기에는 예산도 인력도 부족해요.
그래서 결국에는 시민의식의 변화도 필요하다는 게 정철 활동가님의 생각이에요. 그래서 시셰퍼드가 폭죽 캠페인을 벌이는 것이고, 지구용도 힘을 보태고 싶은 거고요. 용사님들도 해변에서의 폭죽놀이, 다시 한번만 생각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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