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투가 싸가지 없다. 영상을 무료로 풀어버리겠다.” “영상을 삭제하고 싶다면 본인 인증을 해라.”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이 영상 유포 사실을 인지한 후에도 지속적으로 2차 피해를 경험하고 있다. 피해자들은 영상 삭제를 요청하며 또 다른 피해에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고 호소했다.
28일 서울경제가 e메일과 유선상으로 만난 디지털 성범죄 피해자들은 수많은 2차 피해를 경험했다고 밝혔다. 한 피해자는 “불법 촬영 영상이 유출된 사실을 인지한 뒤 피해 현황을 모두 직접 확인·캡처하고 링크도 정리했다”면서 “이런 일은 처음이라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모르지만 피해를 직접 당하면서 너무 고통스러웠다”고 말했다.
피해자들은 일부 불법 사이트 운영진으로부터 2차 피해를 당할까 봐 두려움에 떤 경험도 있다고 밝혔다. 실제 한 사이트의 운영진은 영상 삭제 요청을 받자 “회원들에게 문제가 안 생기게끔 자료는 내렸다”면서도 “말투가 싸가지 없다. 모든 자료를 무료로 풀어버리겠다”는 협박성 게시글을 올렸다. 또 다른 피해자는 사이트에 영상 삭제를 요청하는 과정에서 본인 인증을 해야 했다고 밝혔다. 피해자는 “본인 인증을 어떻게 해야 하나 곤란했다”면서 “신상 정보가 퍼질 것 같아 걱정됐다”고 밝혔다.
2020년 12월 ‘n번방 방지법’으로 불리는 정보통신망법 및 전기통신사업법이 시행된 후 인터넷 사업자의 불법 촬영물 유통 방지 의무는 강화됐다. 그러나 여전히 피해자들은 “어떤 사이트는 삭제 요청을 잘 들어주지만 어떤 곳은 아예 응답도 없다. 일베(일간베스트)는 삭제를 해주지만 구글은 e메일을 보내도 답장이 없다”거나 “해외 사이트는 삭제가 안 된다고 하는데 피해 영상을 지우는 건 아예 불가능한 게 아니냐”며 피해 확산을 우려했다. 영상 삭제와 모니터링을 사설 기관에 문의한 경우 “삭제 비용은 최소 1000만 원이 든다”는 말을 듣고 당황했다는 피해자도 있었다.
n번방 방지법에 따르면 연 매출 10억 원 이상 또는 하루 평균 방문자가 10만 명 이상인 인터넷 사업자는 피해자 또는 신고·삭제 기관이 불법 촬영물, 허위 영상물, 아동·청소년 성착취물을 신고·삭제 요청한 경우 해당 게시물의 삭제·차단 또는 방송통신위원회에 심의 요청 등 유통 방지에 필요한 조처를 해야 한다. 방통위는 사업자가 조치를 이행하지 않으면 연 매출액 3%를 넘지 않는 선에서 과징금을 부과할 수 있다.
하지만 해외에 있는 사이트의 경우 이 같은 시정 조치를 내리는 데 한계가 있다. 또 사이트 운영자가 외국인일 경우 한국의 법망을 피해 갈 수도 있다. 익명을 요구한 한 변호사는 “외국인이 한국인을 대상으로 범죄를 저질렀을 경우에도 처벌은 가능하다”면서 “하지만 피의자가 해외에 있어 피의자를 특정하기 어렵거나 ‘범죄인인도 조약’이 체결돼 있지 않은 경우 체포를 요청하기 힘들 수도 있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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