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프랑스 화가 장 앙투안 바토가 그린 ‘제르생의 간판’은 파리에 실존했던 한 미술 상점의 내부 모습을 담고 있는 풍속화다. 이 그림 속에는 파리의 젊은 남녀들이 점원의 설명을 받으며 작품 구입을 고민하는 장면이 생생하게 묘사돼 있다. 작가가 살았던 동시대인들의 삶의 단면을 그림의 주제로 채택했다는 점에서 이 작품은 당시 프랑스 주류 화단이 추구했던 화풍과는 확연히 구별된다. 그림이 제작된 시점은 로코코미술이 태동하던 오를레앙 공작의 섭정 시기다. 1715년 루이 14세가 사망한 후 약 8년간 지속된 섭정 기간 프랑스 문화는 귀족과 상층 부르주아들에 의해 주도됐다. 이들은 권위적이고 규범화된 고전주의 역사화를 대체할 새로운 미술 양식을 갈망했다. 화려한 색채 미학과 유연한 곡선미를 중시하며 경쾌하고 우아한 양식을 특징으로 하는 로코코미술은 이러한 시대적 배경 속에서 태동했고 바토는 이 화풍의 창시자로 평가받고 있다.
바토가 활동했던 18세기 초 프랑스 사회에서는 미술에 대한 안목과 지식을 존중하는 문화적 환경이 조성되면서 미적 취향과 문화적 역량이 사회적 위상을 드러내는 표식으로 작용하기 시작했다. 이러한 미술에 대한 사회적 관심의 증가와 미술품 수요 계층의 확장은 왕실과 교회의 주문에 의존하던 창작 구조의 변화를 초래하면서 미술 수용의 주체를 다변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왔다. 이 시기 프랑스 사회에서 예술가에 대한 직접적인 후원 제도가 쇠퇴하고 불특정 구매자를 대상으로 작품을 제작해 판매하는 근대적 미술 시장이 등장하게 된 배경에는 이러한 요인이 있다. 미술 시장은 단순히 그림을 사고파는 경제적 행위의 장소만은 아니다. 작가와 예술 애호가, 그리고 미술 상인들 간의 긴밀한 사회적 교류를 유발하며 새로운 취향과 양식을 태동시키는 공간으로서 미술 시장은 작가의 창작 과정에도 지대한 영향을 끼쳐왔다.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고 작가의 창작 행위와 예술 소비자들의 취향을 연결시켜주는 매개체로서 미술 시장의 역할은 지금도 유효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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