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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트' 이정재, 화려한 감독 데뷔…정우성과 재회 옳았다(종합) [SE★현장]

2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열린 영화 ‘헌트’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에서 이정재 감독과 배우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올여름 텐트폴 마지막 주자 ‘헌트’가 심상치 않다. 배우 이정재의 첫 연출작이라고는 믿기지 않는 촘촘함과 긴장감이 125분 동안 내내 지속된다. 23년 만에 한 스크린 안에서 만난 이정재와 정우성의 호흡은 눈을 뗄 수 없게 만든다.

7일 오후 서울 강남구 삼성동 메가박스 코엑스에서 ‘헌트’ 언론시사회 및 기자간담회가 개최됐다. 이정재 감독과 배우 정우성, 전혜진, 허성태, 고윤정이 참석해 작품에 대한 이야기를 나눴다.

‘헌트’는 망명을 신청한 북한 고위 관리를 통해 정보를 입수한 안기부 해외팀 박평호(이정재)와 국내팀 김정도(정우성)가 조직 내 숨어든 남파 공작원 동림 색출 작전에 나선 이야기다. 동림을 통해 일급 기밀사항들이 유출되며 위기를 맞게 되자 해외팀과 국내팀이 날 선 대립을 한다. 급기야 서로를 용의선상에 올려두고 조사하는 고도의 심리전을 펼친다. 그 과정에서 ‘대한민국 1호 암살 작전’이라는 거대한 사건과 직면하고 팽팽한 긴장감이 조성된다.

‘헌트’는 1980년대 군부 독재 정권이 배경이다. 5.18 광주민주화운동과 북한 장교 이웅평 월남 사건, 아웅산 테러 사건 등 한국의 근현대사 사건들을 다룬다. 첫 연출작에 민감한 소재들을 과감하게 사용한 이정재 감독은 “시나리오 초고에 나와있는 설정 중에서 버려야 할 것과 취해야 할 것에 고민이 많았다. 초고의 주제와 내가 시나리오를 쓰면서부터 주제가 많이 달랐다”고 밝혔다. 이어 “주제를 잡는 데 꽤 오래 시간이 걸렸고, 그 주제가 과연 우리가 공감할 수 있고 같이 생각해 볼 수 있는 주제인지 고민했다. 그 결과 80년대 배경을 유지하는 것이 좋겠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이정재 / 사진=연합뉴스


작품은 복잡한 사건의 연속에서도 추진력 있게 나아간다. 스토리 전개는 섬세하고 치밀하다. 러닝타임 내내 펼쳐지는 박평호와 김정도의 대립 구도는 큰 줄기다. 하지만 감정선에 치우치진 않았다. 이 감독은 “주제가 너무나 도드라지고 무게감을 주는 다른 영화를 볼 때마다 나도 부담스럽다. 내 영화에서는 그런 감정이 잘 안 보였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라며 “우리가 갖고 있는 신념에 대해 한 번쯤 말해보면 좋지 않을까 싶어서 각 캐릭터의 딜레마를 살짝 보여주는 정도로만 표현하게 됐다”고 했다. 이어 “인간의 심리를 다양하고 다른 결들이 내재돼 있는 모습을 박평호, 김정도 등의 캐릭터들을 통해 보여지길 원했다. 이 사람은 착한 사람, 나쁜 사람으로 나누지 않았다”며 “앞 장면부터 그런 모습들을 작은 단서와 복선으로 깔았다. 너무 명확하게 드러나는 건 내 취향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액션은 시원하고 짜릿하다. 맨몸 액션부터 총격전까지 화려한 액션신이 계속된다. 액션 연기에 처음 도전한 전혜진은 "표정 연기보다 액션 연기가 더 어렵다. 하지만 이정재, 정우성 선배님이 워낙 열심히 하셔서 나 역시 열심히 뛰었다”며 “힘든데도 두 분은 구두에서 운동화로 갈아신지 않으시고 끝까지 액션을 소화하시더라”고 열정을 치켜세웠다. 정우성은 “총격 액션은 편한 액션인 편이라 어렵지 않았다. 박평호와 김정도가 복도에서 부딪히는 액션이 어려웠다”며 “둘 다 나이가 있어서 그런지 테이크가 얼마 안 가도 그 치열함이 온 얼굴로 뿜어나오더라”고 재치 있게 말했다.

이정재 / 사진=연합뉴스


정우성 / 사진=연합뉴스


이 감독의 연출 주안점은 배우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는 것이다. 그는 “오랫동안 연기자 생활을 해오다 보니 내가 연출을 하더라도 연기자들이 돋보이는 영화였으면 좋겠다는 생각이었다”며 “시나리오적으로, 환경적으로, 편집 과정에서 오로지 배우들과의 호흡, 개개인의 색깔을 극대화하려고 했다”고 말했다. ‘헌트’가 첫 영화인 고윤정은 “이 감독님이 감독님이자 선배님이어서 디렉팅을 주실 때 배우의 입장으로 조금 더 섬세하고 친절하게 해줬다. 조금 더 쉽고 편안하게 할 수 있었다”며 “배우로서 경력이 묻어있는 조언이어서 배우는 게 많은 현장이었다”고 전했다.

이 감독은 배우들에 대한 애정도 남달랐다. 그는 “‘태양은 없다’ 이후 같이 연기를 한 것이다 보니 다른 캐릭터로 부딪힘을 극대화하면 관객들이 더 재밌어하지 않을까 싶었다. 워낙 둘이 가까운 사이라는 걸 잘 아니까 완전히 다른 지점에서 캐릭터가 만나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밝혔다. 정우성은 김정도 역에 대해 “감추고 있는 비밀이 있지 않나. 본인의 죄책감일 수도 있고 잘못된 것을 바로잡아야겠다는 책임감도 있다”며 “감추고 있는 신념이 드러나지 않게끔 하려고 옷매무새나 외형을 깔끔하게 하려고 신경을 썼다. 박평호 차장과의 대립에서 날선 듯한 긴장감, 이런 것들을 신경 쓰려고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전혜진 / 사진=연합뉴스




허성태 / 사진=연합뉴스


고윤정 / 사진=연합뉴스


이 감독은 안기부 해외팀 에이스 방주경 역의 전혜진에 대해서는 “전혜진이 나온 영화는 내가 거의 다 봤다. 거기에서 나온 캐릭터들은 신기할 정도”라며 “어떻게 이렇게 잘 만들까 싶었다. ‘내가 몰래 따라 해도 모를까’ 싶을 정도로 따라 하고 싶은 충동이 있었다”고 말했다. 전혜진은 “남자들 가운데서 어떻게 하면 좀 더 박평호가 오른팔로 삼을 만큼 유연하게 일 처리를 잘 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 정보 전달 부분에 있어서 명확한 부분이 있어야 했기 때문에 또 다른 유연함을 가지기 위해서 감독님과 수위 조절에 대해 상의했다”고 캐릭터 구축에 대해 이야기했다.

안기부 국내팀 요원 장철성을 연기한 허성태와는 넷플릭스 ‘오징어 게임’에서 호흡을 맞춘 인연이다. 이 감독은 “허성태와 ‘오징어 게임’을 하면서 처음 만났는데 살이 굉장히 불어서 왔다. 평상시에 이런 모습인가 했는데 황동혁 감독님이 체격을 찌웠으면 좋겠다고 한 말 한마디 때문에 20kg를 찌웠다고 하더라”며 “자기가 하는 일에 최대한 구현을 하려고 열심히 노력하는 배우라는 걸 느꼈다. 1년 동안 함께 촬영하면서 마음이 굉장히 여리고 쑥스러움도 많이 타고 장난기도 많다는 걸 알았다. 동료로서 아주 즐거운 친구라서 이 작품에 꼭 함께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허성태는 “영화에서 얼마만큼 긴장감을 줄 것인지, 어떤 대사 톤을 할 것인지 등을 이 감독님과 함께 고민하고 이야기를 나눴다”며 “현장에서 충실하면서 실수하지 말고 누를 끼치지 말아야겠다고 생각했다. NG 장면이 잘 편집돼서 좋은 연출을 잘 봤다”고 했다.

이 감독은 박평호와 의문의 관계로 거대한 사건에 휘말리는 대학생 조유정 역의 고윤정 캐스팅에 대해 “드라마에서 봤다. 저 캐릭터는 하기 힘든 캐릭터인데 잘 한다고 생각하면서 관심 갖고 있었다”며 “미팅을 하고 시나리오 이야기를 나누는데 나름 가지고 있는 해석과 많은 아이디어가 있었다. 그런 모습을 보고 굉장히 유연하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고윤정은 “영화 촬영 두 달 전부터 감독님과 함께 대본 보고 리딩하고 2주의 한 번씩은 꼭 통화라도 하면서 이야기를 많이 나눴다. 캐릭터 구축에 대한 조언을 많이 듣고 준비를 많이 했다”며 고마워했다.

정우성, 허성태, 고윤정, 전혜진, 이정재(왼쪽부터 차례대로) / 사진=연합뉴스


배우들 모두 이 감독의 열정에 감탄하기도. 정우성은 “이 감독이 시간이 갈수록 말라가고 옷이 헐렁해졌다. 지친 모습으로 숙소로 들어가는 뒷모습을 보면 동료로서 측은했다”면서도 “본인이 선택한 책임의 무게를 꿋꿋하게 짊어지고 가는 것 같아 든든했다”고 치켜세웠다. 전혜진은 “촬영 중에는 꼼꼼하게 다 챙기는 건 여러 감독님이 다 그렇지만, 후반 작업할 때 마지막까지 부담감이 크셔서 그런지 끝까지 노력하는 모습을 보고 정말 대단하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이런 작품이 나왔다 싶었다”며 감동했다고 말했다. 이날 작품을 처음 봤다는 허성태는 “처음 시나리오를 보고 ‘어떻게 다 찍으실 거냐’고 했었는데 눈으로 보고 정말 놀랐다. 어떻게 연기하면서 연출까지 하신 건지 놀랐다”고 입을 다물지 못했다.

이 감독은 “체력이 너무 떨어지는 게 나 자신도 많이 느껴졌다. 첫 촬영했을 때 의상과 마지막 촬영할 때 의상의 사이즈가 달랐다”며 “동료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잘 챙겨주기도 하고 함께 지고 갈 짐 같은 것도 같이 지고 가는 동료애를 많이 느낄 수 있는 현장이어서 큰 무리 없이 진행할 수 있었다. 그분들에게 감사드린다”고 공을 돌렸다.

이 감독의 열정에 동료 배우들도 발 벗고 나섰다. 황정민, 이성민을 비롯해 박성웅, 김남길, 주지훈, 조우진, 유재명, 정만식 등이 특별출연한 것. 비교적 비중이 크지 않은 역할들도 마다하지 않은 것이 눈에 띈다. 이 감독은 “내가 정우성과 오랜만에 작업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동료 선후배 배우들이 작은 역할이라도 하겠다는 연락을 먼저 줬다”며 “그러면서 고민이 더 많이 됐다. 영화에 도움을 주겠다는 배우들을 많은데 계속 영화에 중간중간마다 나오게 되면 전체적인 스토리에 문제가 있지 않을까 고민했다”고 털어놨다. 이어 “사나이픽처스 대표님이 ‘다 나올 수 있는 방법을 만들어달라. 누군 나오고 안 나오면 서운하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한 번에 나오고 한 번에 퇴장하는 아이디어가 생각이 났다”며 “배우들이 본인이 주연인 영화인 만큼 연습을 해왔다고 하더라. 현장에서 정말 즐겁고 영상도 잘 찍혀서 정말 고맙다”고 비하인드를 공개했다.

배우 이정재(오른쪽)와 정우성이 포즈를 취하고 있다. / 사진=연합뉴스


영화 ‘태양은 없다’ 이후 23년 만에 작품에서 재회한 이정재, 정우성은 ‘헌트’를 특별한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다. 정우성은 “23년 만에 같이 한다는 것은 개인적인 의미가 크지만, 그게 전부가 되서는 안 됐다. 하지만 촬영 현장에서 같이 연기할 때 공기 이런 것들이 값진 추억의 연속이었다”며 “현장에서 배우로만 참여한 게 아니라 작품의 전 과정을 책임져야 하는 사람으로서, 동료로서 촬영장에 같이 있을 때마다 ‘우리 참 배우라는 직업, 영화인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잘 걸어왔구나’라고 생각했다. 함께하는 시간들을 스스로 잘 만들어낸 것 같은 뿌듯함을 느낄 수 있는 현장이었다”고 만족해했다.

이정재 역시 “‘태양은 없다’를 찍을 때나 지금이나 영화에 대한 열정, 온도는 거의 똑같다. 그런데 체력이 조금 떨어지다 보니까 현장에서 테이크를 5번 이상 가게 되면 피로도가 높아지더라”라고 농담을 던졌다. 이어 “20년 동안 이 생활을 해오다 보니 책임감이라든가 영화를 바라보고 만들 때 마음의 자세가 조금 더 진중해진 것은 사실”이라며 “동료 배우들과 후배 배우들과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 것도 예전에 젊었을 때 나누는 대화보다는 좀 더 미래를 생각하고 현재를 개선하는 이야기가 많아졌다. 작품을 하는 데 있어서도 조금 더 신중해졌다”고 말했다.

여름 대작 중 하나로 꼽히는 ‘헌트’가 마지막 주자로 나서면서 영화계 관심이 쏟아지고 있는 상황. ‘외계+인’ 1부, ‘한산: 용의 출현’, ‘비상선언’과 선의의 경쟁을 펼치게 됐다. ‘헌트’는 앞서 제75회 칸 국제영화제 미드나잇 스크리닝에 공식 초청되는 등 호평을 받았지만, 국내 개봉을 앞두고 새로운 평가를 기다리고 있다. 정우성은 “남다른 작업이어서 부담감도 있었다”면서도 “고질적인 재미도 중요하니까 최선을 다해서 작업에 임했다”고 진심을 드러냈다. 이 감독은 “여름 영화 네 편이 한 주 단위로 개봉하게 됐다. 모두 다 소중한 영화이고 모두 다 성공해야만 하는 영화”라며 “‘헌트’ 또한 많은 애정과 관심 가져주시고 극장으로 시원하게 영화를 즐기러 와주셨으면 좋겠다”고 덧붙였다. 오는 8월 10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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