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온라인 동영상 서비스(OTT) 생태계에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던 쿠팡플레이가 새롭게 각광받고 있다. 가수 겸 배우 수지 주연의 드라마 ‘안나’가 호평을 받으면서부터다. 이용자들은 쿠팡플레이에서만 볼 수 있는 콘텐츠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고, 첫 오리지널 드라마였던 ‘어느 날’까지 재평가하고 있다. 오리지널 콘텐츠가 힘을 발휘하고 있다.
‘어느 날’(극본 권순규/연출 이명우)은 영국 BBC ‘크리미널 저스티스’를 각색한 범죄 스릴러 드라마다. 배우 김수현의 첫 OTT 작품이자 쿠팡플레이 드라마 첫 타자였다. 공개 전부터 제작비 200억원을 투자한 대작으로 알려져 관심을 모았다.
작품은 첫 회만으로도 몰입도를 한 번에 높인다. 평범한 대학생인 현수(김수현)는 조별 과제 모임이 취소되자 풀빌라 파티를 하자는 친구들의 부름에 응한다. 문제는 현수가 한밤중 몰래 친구들을 만나러 가기 위해 택시 기사인 아버지의 택시를 몰고 가면서 시작된다. 그는 운행 중인 택시인 줄 알고 탑승한 여자 국화(황세온)와 하룻밤 일탈을 즐기게 된다. 국화의 집에서 술을 마시다가 마약까지 손대고 상황과 분위기에 이끌려 밤을 보낸다. 이후 소파에서 홀로 깨어난 현수는 국화가 처참하게 칼에 찔려 죽어있는 것을 보고 당황해 곧바로 도망간다. 하지만 현수는 얼마 못가 경찰에게 눈에 띄고, 유력한 살인 용의자가 된다.
현수는 자연스럽게 표적이 된다. 그의 진심을 믿어 주는 건 잡범들을 변호해 먹고사는 삼류 변호사 중한(차승원) 뿐이다. 현수 주변에는 그가 진범인지 아닌지 중요하지 않은 사람들이 득실거린다. 퇴직을 앞둔 형사과 팀장 박상범(김홍파)은 자신의 명예를 위해 현수의 자백을 종용하고, 담당 검사 안태희(김신록)는 실적을 올리기 위해 스토리 만들어 결국 부장검사까지 승진한다.
현수는 점점 변해간다. 처음에는 그저 공부보다 친구들과 노는 것이 좋은 평범한 대학생이었을 뿐인데 하루아침에 살인자로 낙인 되며 공포에 휩싸인다. 억울하고 무섭고 두렵다. 하지만 자신의 말을 들어주는 이가 없다는 걸 깨닫게 되면서 자신의 모습이 어떻게 보이든 신경 쓰지 않는다. 악의 구렁텅이 같은 교도소에서 살아남기 위해서는 물들어가는 것을 선택한다. 법정의 선 그가 아무것도 모르는 청년의 모습에서 공허한 눈빛과 냉소적인 표정의 죄수의 모습처럼 바뀌는 것을 보면 소름 끼칠 정도다.
‘어느 날’이 현수를 통해 보여주고자 하는 것은 사법제도의 허점이다. 작품은 내내 현수를 진범으로 만들려고 하는 사람들과 현수의 결백을 증명하려는 중한이 대치하는 것으로 흘러간다. 현수가 진범이 되든 아니든 이미 현수의 평범한 삶이 붕괴된 것은 되돌릴 수 없는 일이다. 어떤 말로도 그를 위로할 수 없다. 그래서 중한이 어렵게 꺼낸 말은 더 무겁게 다가온다.
“경찰이고 검찰이고 범인이 필요해. 곧잘 만들기도 하고. 사법시스템이라는 게 원래 그래.”
메시지는 분명하고 배우들의 연기를 보는 맛이 확실한 작품이다. 그럼에도 아직 활성화되지 않은 플랫폼이라는 한계가 있었다. ‘어느 날’ 이후에도 쿠팡플레이가 별다른 오리지널 콘텐츠를 양산하지 못한 것은 패인으로 분석된다.
쿠팡플레이가 시선을 확실하게 머무르게 한 건 ‘안나’였다. 축구 선수 손흥민 소속 토트넘 홋스퍼 경기 등을 중계하는 방식으로 구독자를 모으기도 했지만, 오리지널 콘텐츠의 힘을 무시할 수 없었다. 볼거리가 부족하면 자연스럽게 이탈률이 높아지기 때문이다. ‘안나’가 작품성을 인정받으면서 수지 또한 연기 생활 10년 만에 확실하게 배우로서 각인됐고, 쿠팡플레이까지 관심을 받았다.
‘OTT 공룡’ 넷플릭스가 최근 위기론이 대두된 것도 오리지널 콘텐츠의 영향이 크다. 지난해 국내 오리지널 콘텐츠 ‘D.P.’ ‘오징어게임’ ‘지옥’ 등이 호평을 받은 것에 비해, 올해는 아쉽다는 평이 줄을 잇고 있다. 최근 ‘종이의 집: 공동경제구역 파트1’ ‘블랙의 신부’가 공개됐지만 기대 이하 퀄리티라는 반응이다. 한국 TOP10 1위, 비영어권 드라마 부문 1위 등은 모두 ENA 드라마 ‘이상한 변호사 우영우’가 차지하며 OTT 오리지널 콘텐츠가 무색해졌다.
여타 OTT서비스가 다양한 방법으로 차별화 전략을 세우고 있지만 이용자들의 시선을 끄는 건 질 높은 퀄리티가 풍부한 플랫폼이다. 넷플릭스는 명성을 되찾기 위해 하반기에는 예능 라인업을 강화하고, 쿠팡플레이는 작가 겸 방송인 유병재가 집필하고 배우 신하균이 주연으로 나선 시트콤 ‘유니콘’을 공개한다. 하반기 OTT 경쟁전이 어떤 양상으로 불붙게 될지 귀추가 주목된다.
◆ 시식평 - 묻히기엔 아까운 작품이 '어느 날' 다시 떠오르는 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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