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로 놀라운 대화였습니다. 봉준호 감독은 오히려 저보다도 제 책을 더 잘 알고 있었고, 심지어 제가 생각지 못했던 질문들을 던졌죠. 봉 감독이 어떤 영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지 아주 기대가 큽니다.”
영화 ‘기생충’으로 작품상 등 2020년 아카데미 4관왕에 오른 봉준호 감독의 차기 공상과학(SF) 작품 원작인 소설 ‘미키7’ 작가인 에드워드 애슈턴은 “지난해 2월 봉 감독과 2시간 정도 긴 토론을 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애슈턴은 ‘미키 7’ 국내 출판을 기념해 출판사인 황금가지와 가진 서면인터뷰에서 “현재 우리 경제 시스템에 대한 의구심이나 계급 갈등을 풀어내는 스토리텔링 등에 관해 비슷한 관점과 감정을 공유하고 있었다”며 “유머 감각도 서로 비슷하고 현대의 부조리를 반영하는 예술에 대해 어느 정도 공감하고 있었다”고 설명했다. 그는 다른 매체와의 인터뷰에서는 “봉 감독의 모든 작품을 이미 다 보았다”며 “그는 천재”라고 극찬한 바 있다.
소설은 죽더라도 끊임없이 전임자의 기억을 갖고 복제인간으로 되살아나는 주인공 사내를 소재로 인간 정체성에 대한 철학적 질문을 던지고 계급간의 모순을 파고든다. 미키7은 소설에서 가장 위험한 일에 투입되는 인스펜더블(소모 인력)이다. 탐사 도중 가까스로 살아남아 기지로 생환하지만 미키8을 만나면서 이야기가 시작된다. 봉 감독은 영화배우 브래드 피트의 제작사인 ‘플랜 B’와 워너 브러더스의 지원을 받아 올 8월부터 촬영에 들어가며 내년 말이나 2024년 초 개봉 예정이다.
애슈턴은 2019년 말 초고를 완성했는데 에이전시가 출판 계약도 하지 않은 상태에서 플랜 B에 원고를 전달했다고 전했다. 봉 감독과 ‘옥자’를 함께 제작한 플랜 B는 소설을 스크린에 소환할 적임자로 판단해 봉 감독에게 원고를 보냈더니 봉 감독이 차기작으로 정할 정도로 마음에 들어하면서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고 한다.
그는 “최소 1755년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철학적 질문인 순간이동 역설에 오랫동안 심취해온 바 있다. 여러 분이 자신의 마음을 다른 신체에 완벽하게 복제했을 때 그 사람은 실제 여러분인지 아닌지를 묻는 질문이다”며 “그 역설을 체화한 인물이 맞닥뜨릴 수 있는 최악의 상황을 상정하면서 익스펜터블 미키가 탄생하게 됐다”고 설명했다.
애슈턴은 우주 개척 과정의 계급 갈등을 소설 배경으로 설정한 이유에 대해서는 “우리가 사는 현대 사회의 어떤 면을 논평하고자 만든 이야기”라며 “SF 소설의 최대 강점 중 하나는 독자들이 각자의 감정적 맹목을 배제한 채 오늘날의 문제들을 생각하게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의학 연구원으로 암 임상실험 연구를 하는 그는 시간이 날 때는 대학원생들에게 양자 물리학을 가르친다고 한다. 그는 “반물질에 대한 내용은 100% 과학적 사실이지만 격납 시스템은 순전히 판타지”라고 말했다. 또 조지 R. R. 마틴의 SF 소설 ‘빛의 죽음’과 영화 ‘스타트렉’의 전송기 시스템이 이번 소설 집필에 영감을 줬다고 전했다.
애슈턴은 후속작으로 ‘미키 7’ 사건 이후 1년 후가 배경인 안티매터 블루스’(Antimatter Blues)를 구상 중이다. 그는 “역사와 철학을 좀 덜어내고 액션을 약간 더 넣은 모험 이야기”라며 “(‘미키7’에서 새로운 행성의 토착 생명체인) 크리퍼들과 더 많은 시간을 보내면서 크리퍼 사회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그들이 새로운 인간 이웃을 어떻게 생각하는지 배울 기회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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