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정식 고용노동부 장관이 이틀 연속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 현장을 찾았다. 이정식 장관은 20일 대우조선해양이 있는 거제로 향하기 직전 윤석열 대통령을 면담했다. 윤 대통령은 하청 노조의 불법행위에 대해 법과 원칙에 따라 엄정하게 대응하라고 강조하면서도 경제위기 등 급박한 상황을 고려해 피해가 더 커지기 전에 조속히 해결할 것을 주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정식 장관은 이날 서울경제에 “법과 원칙은 (정부가) 양보할 수 없는 일관된 기조”라면서도 “노조가 농성을 풀고 평화적으로 교섭을 타결하면 처우 개선 등 다양한 지원책을 강구하겠다”고 밝혔다. 이정식 장관은 “파국을 막고 평화적으로 해결할 시간이 많지 않다”며 “노사가 평화적인 교섭으로 사태를 해결할 수 있도록 적극 지원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정식 장관은 이날 오후 6시쯤 파업 현장에 도착해 대우조선해양 사측과 하청 노조 양측을 잇따라 만났다. 이정식 장관이 전일에 이어 이틀 연속 파업 현장을 찾은 이유는 노사가 대화로 협상을 풀어갈 기회를 한 번 더 주기 위해서라는 분석이 지배적이다. 경영계와 노동계 양쪽에서는 “정부가 다시 한번 손을 내밀었다”는 분석이 나왔다.
전일 정부는 하청 노조를 압박하는 동시에 설득하는 양공 행보를 했다. 이상민 행정안전부 장관과 윤희근 경찰청장 내정자는 파업 현장을 둘러보며 공권력 투입이 임박했음을 시사했고 이정식 장관은 도크에 철제 구조물을 만들고 농성 중인 하청 노조 조합원을 직접 만나 설득했다. 이정식 장관의 설득에도 노조는 농성을 해제하지 않았다.
이날 오전까지만해도 이정식 장관은 오후 예정됐던 행사 일정을 소화할 계획이었다. 정부의 기류가 급반전한 것은 윤 대통령과 이정식 장관의 면담이 이뤄진 직후다. 이정식 장관은 다시 한번 하청 노조를 만나 농성을 풀고 대화에 나서게 하겠다는 의지를 보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 자리에서 노사 간 협의가 진전이 있다는 보고도 이뤄진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 고위 관계자는 공권력 투입에 대해 “거기에 대해서는 논의를 하는 중”이라고 밝혔다. 공권력 투입보다는 정부가 노사 협상 결과를 더 지켜보기로 했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이정식 장관은 이날 노사를 만나 어느 한쪽에 유리하거나 불리한 별도의 정부 중재안은 제시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당초 하청 노조는 30% 임금 인상안을 제시했다가 인상 폭을 10%, 다시 5%까지 낮췄다. 하지만 교섭을 막는 돌발 변수는 파업 피해에 따른 손해배상 소송 제기였다. 대우조선해양은 파업 여파로 6000억 원이 넘는 손실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조는 손배소 취하를 요구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정식 장관은 서울경제에 “손배소 취소는 (기업 입장에서) 배임에 해당될 수 있다”며 정부 입장에서 제시하기 어려운 중재안임을 명확히 했다. 기업이 불법 점거를 통한 파업으로 입은 손실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있는 원칙을 정부가 훼손할 수 없다는 얘기다.
정부의 설득과 노사 합의로 대우조선해양 파업 사태가 해결돼도 과제는 산적해 있다. 원하청 간 벌어지는 수많은 갈등이 대우조선해양 파업에서 재연됐기 때문이다. 하청 노조는 사측보다 원청이 협상에 나서야 임금 인상 등이 실질적으로 이뤄진다고 요구해왔다. 납품 대금으로 사업을 영위하는 하청 업체 특성상 원청과 경영 계획을 공유받지 못하면 임금 인상 결정이 쉽지 않다는 주장이다. 반면 원청은 현 제도상 협력 업체 노조의 교섭 대상자가 협력 업체 사측이라는 점을 넘어서는 결정(교섭)을 할 수 없다고 맞서고 있다. 대우조선해양 하청 노조 파업도 원청인 대우조선해양의 책임 범위를 두고 학계·노동계·경영계에서 여러 의견이 충돌했다. 이정식 장관은 전일 하청 노조 측과 만나 원하청 현장의 구조적 문제를 향후 해결하겠다는 의지를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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