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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마의 함정' 숨긴 골프의 고향 [골프 트리비아]

■ 두 얼굴의 스코틀랜드 링크스 코스

물·나무 등 장애물 하나 없지만

굴곡·항아리벙커에 바닷바람 거세

변수 많아 자연 앞에 겸손해져야

보비 존스·우즈 등 전설들도 매료

디 오픈 순회 코스 중 하나인 로열 포트러시 전경. 디오픈 홈페이지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의 항아리 벙커. 김세영 기자


2019년 스코티시 오픈 당시 벙커에서 연습 중인 선수의 모습. 김세영 기자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 물과 나무가 거의 없는 것도 링크스 코스의 특징이다. 김세영 기자


골프의 고향은 스코틀랜드다. 좀 더 정확히 따지면 스코틀랜드의 동부 해안가다. 에든버러의 리스와 바로 옆 머셀버러를 비롯해 파이프주의 세인트앤드루스 등에서 발달했다. 해안가의 모래언덕은 고대 영어로는 슬링스(hlinc)였고 그 복수형(hlincas)이 발전해 링크스(links)가 됐다고 한다. 링크스는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공공의 땅이었다. 그곳에서 어부나 목동들이 막대기로 돌멩이를 날리며 놀았다.

세월이 흘러 링크스는 스코틀랜드와 잉글랜드·아일랜드 등의 골프 코스를 대표하는 단어가 됐다. 전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디 오픈(브리티시 오픈)은 링크스 코스를 순회한다. 150회를 맞는 올해는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에서 개최된다. 링크스가 골프 코스의 원형이기 때문에 현대의 많은 골프장들도 자신들의 코스 이름이나 설명에 ‘링크스’ 또는 ‘링크스 스타일’이라는 말을 넣고 싶어 한다.



하지만 골프장이 단지 바다 근처에 있다고 해서 진정한 링크스라고 할 수는 없다. 그만의 독특한 특징이 있어서다. 첫째, 해안가 모래 지역에 위치하며 페어웨이는 평평하지 않고 굴곡이 많다. 둘째, 코스에 물이나 나무가 거의 없다. 셋째, 벙커의 벽이 거의 수직이고 깊다. 폿(pot·항아리) 벙커다. 넷째, 바닷가여서 바람이 강하게 분다. 홀들은 전통적으로 한 방향으로 나갔다 다시 되돌아오도록 자리하고 있어 바람의 방향이 반대가 된다. 아웃 코스와 인 코스라는 말이 여기서 나왔다.

링크스 코스는 확 트여 있기 때문에 얼핏 만만해 보인다. 그런데 뒤집어 생각하면 그렇지 않다. 타깃이 없으니 조준이 제대로 될 리 없다. 숨은 함정도 많다. 페어웨이 곳곳에 울룩불룩 굴곡이 있어 볼이 어디로 튀어 구를지 모르고 경사가 나팔꽃처럼 벙커로 향하기 때문에 벙커의 영향권은 실제보다 훨씬 크다. 볼이 벽에 가깝게 붙어 있으면 옆이나 뒤로 빠져나와야 한다. 날씨도 변화무쌍하다. 쨍쨍하던 코스에 갑자기 비바람이 몰아쳐 하루에 사계절이 모두 있다고 할 정도다. 그래서 링크스에서는 겸손해야 한다. 반듯하고 예쁘게 꾸며진 코스에서처럼 호기롭게 덤볐다가는 낭패를 당하기 쉽다.

마스터스를 창설한 보비 존스(1902~1971)도 그랬다. 그는 1921년 디 오픈 때 처음으로 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를 접했다. 당시 경기가 마음대로 풀리지 않자 3라운드 11번 홀에서 기권한 뒤 스코어카드를 갈기갈기 찢어버렸다.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존스도 어린애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존스는 올드 코스를 연구한 끝에 링크스에서는 자연에 순응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고는 1927년 디 오픈과 1930년 브리티시 아마추어선수권을 제패했고 그 누구보다 링크스 코스를 사랑했다. 그런 그에게 세인트앤드루스도 명예시민증을 줘 화답했다.

‘살아 있는 전설’ 잭 니클라우스(미국)는 2005년 올드 코스에서 자신의 현역 생활을 마무리했다. 18번 홀의 스윌컨 다리에서 손을 흔드는 니클라우스의 모습은 골프의 명장면 중 하나로 남아 있다. ‘골프 황제’ 타이거 우즈(미국)도 올드 코스에 대해 “내가 세상에서 가장 좋아하는 코스”라고 말한다. 가학적인 코스 설계로 ‘사드 후작’이라 불렸던 피트 다이(1925~2020)는 1960년대 초반 스코틀랜드의 오래된 링크스 코스를 돌아보며 자신의 설계 철학을 완성했다.

전 세계 남자프로골프를 주름잡는 톱 클래스 선수들이 2주 동안 골프가 태어난 링크스 코스에서 샷 대결을 펼친다. 이번 주는 제네시스 스코티시 오픈(노스베릭 르네상스 클럽), 다음 주는 디 오픈(세인트앤드루스 올드 코스)이 열린다. 위대한 자연 앞에서 어떤 식으로 난관을 헤쳐나가는지 지켜보면 더욱 흥미로울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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