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임대주택이라고 하면 ‘성냥갑’ 아파트를 떠올리기 쉽다. 도심 곳곳에서 흔히 마주하게 되는 이들 건물은 마치 판으로 찍어낸 듯 비슷한 크기의 상자들을 길게 줄 세운 모습이다. 취약 계층의 안정적 주거를 지원하기 위한 양적 확대는 꾸준히 진행됐지만 질적 개선은 상대적으로 후순위에 머물면서 공공임대는 우리 사회 속 고립되고 기피하는 공간으로 인식돼왔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의 ‘화성동탄2 A4-1블록 행복주택’은 공공임대에 대한 사회적 인식을 전환하기 위해 새로운 주거 개념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 설계자인 허필기 해안종합건축사무소 3부문 대표는 “설계를 맡았던 6년 전만 해도 임대주택이라고 하면 경제적으로 취약한 계층이 모여 사는 가난한 집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팽배했다”며 “설계에 앞서 이러한 사회적 갈등과 임대주택에 대한 편견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지 깊이 고민했다”고 말했다.
◇공간 개방으로 도시와 사람 연결=화성동탄2 A4-1블록 행복주택은 단순 거주만을 위한 주거 공간의 공급을 넘어서 도시와 상생하고 지역 주민의 삶을 담아내는 복합 생활 공간으로 조성됐다. 단지에는 동측 근린공원 및 남측 수변공원과 연결하는 순환형 공공 보행로가 있다. 이를 중심으로 도시와 사람이 소통하는 단지로 계획했다. 주거동을 거쳐 근린공원으로 이어지는 입체가로변에는 옥상 공간을 활용한 산책로, 운동 시설, 휴게 공간을 계획해 생활 영역을 확장하고 이웃 간의 자연스러운 소통이 가능하도록 했다.
주목할 점은 인근 주민 스스로 찾을 수 있도록 유도한 ‘열린 공간’으로 조성됐다는 것이다. 이를 통해 임대주택이 더 이상 기피 시설이 아닌 지역 명소로 자리매김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필로티 공간으로 마련한 주거동 저층부 역시 지역 주민과 입주민의 활발한 교류를 끌어내기 위한 하나의 장치다. 이 공간은 공연장과 플리마켓, 영화 상영장 등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무대로 활용된다. 허 대표는 “쉽게 말해 한 동네의 광장이자 공원 같은 열린 공간”이라며 “그냥 아파트가 아닌 도시와 상생하고 다양한 삶의 이야기가 펼쳐지는 지역의 명소로 만들겠다는 것이 기존 공공임대와의 가장 큰 차이점”이라고 강조했다.
2020년 6월 준공된 화성동탄2 A4-1블록 행복주택은 공공임대 100만 가구 기념사업으로 지어졌다. 총 14개 동, 1640가구 규모로 대학생과 신혼부부, 고령·수급자 등에게 공급됐다. 기존 임대주택에는 통상 3~4개의 타입이 적용되는 반면 이 단지는 전용면적 16~44㎡, 11개 평형, 57개 타입으로 확대했다. 수요자의 다양한 라이프 스타일을 반영한 주거 공간을 제공하기 위함이다. 전용 41㎡에는 공공임대 최초로 복층형 구조를 도입했으며 전용 44㎡는 방 2개와 화장실 1개, 거실로 구성해 어린 자녀를 둔 신혼부부가 거주할 수 있도록 했다.
단지 내부는 기존 임대주택에서는 보기 힘든 다양한 커뮤니티 시설을 갖췄다. 헬스 케어 센터와 작은 도서관, 실내 놀이터, 국공립 어린이집, 게스트 하우스 등이다. 특히 국공립 어린이집은 해당 주택 입주민의 자녀와 인근 지역 주민의 자녀들이 함께 어우러지는 보육 시설로 제공된다.
◇다양한 삶을 담아낸 소통형 가로 공간=단지 중심부에 있는 건축물은 ‘모든 것을 흡수한다’는 의미의 스펀지 형태로 구현됐다. 이곳의 필로티 공간은 단지 내부의 골목길 및 입체가로 곳곳과 이어져 다양한 삶의 이야기를 담을 수 있도록 했다. 허 대표는 “다양한 가로 공간을 만들고 또 연결함으로써 사람들이 우연히 만나고 서로 소통하고 공유하는 삶을 살도록 했다”며 “잠시 머물다 떠나는 집이 아닌 함께 오래도록 살고 싶은 집을 만들기 위함”이라고 설명했다.
라멘조(기둥식) 구조인 스펀지 주동은 입주자의 다양성을 담을 수 있는 복층형·절곡형 세대 등으로 조성돼 차별화된 주거 환경을 경험할 수 있도록 했다. 마치 골목길을 연상케 하는 2층 입체공유가로는 세대와 세대, 동과 동을 연결해 입주민의 공간 범위를 확대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가로와 주동 사이의 공간에서는 주민의 소규모 커뮤니티 활동이 이뤄지면서 집 안에만 머물지 않고 함께 어울려 사는 공동체 문화를 끌어낼 수 있도록 했다.
단지 후면부에 위치한 일반 가로형 주동은 다양한 특화 세대가 맞물려 독창적인 외관을 만들어냈다. 이 건물은 사잇길과 경사로, 브릿지, 옥상 정원과 주동 복도가 입체적으로 연결되는 방식이다. 사잇길에서 직접 진입할 수 있는 1층 직출입 세대와 프라이빗한 외부 데크가 있는 옥외 공간 특화 세대, 복층형 세대 등으로 구성된다.
이러한 시도는 획일화된 기존 공공임대 공급 방식을 극복했다는 점에서 긍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다. 화성동탄2 A4-1블록 행복주택이 ‘2021 한국건축문화대상’에서 공동주거 부문 대상을 수상한 이유다. 심사위원으로 참여한 조용범 대한건축사협회 이사 겸 범건축사사무소 대표는 “화성동탄2 A4-1블록 행복주택은 장기 임대 아파트의 사회적 문제와 획일화될 수 있는 건축 계획상의 물리적 한계를 새로운 개념으로 해결하고자 시도한 점에서 대부분의 공동주택 프로젝트와는 차별화된다”며 “입체적 동선, 다양한 유형의 평면 계획 등 공공임대주택의 사회적 문제를 새로운 방법으로 해결하고자 노력한 부분들은 매우 중요하게 평가돼야 한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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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공임대, 저소득층 위한 '싸구려 주거' 프레임부터 깨야"
■허필기 해안종합건축사무소 3부문 대표
소형 위주 벗어나 30평형까지 확대
모든 계층 아우르는 주택 공급 필요
“좁고 작은 집 위주의 공급에서 벗어나 30평형대까지 다양한 크기의 집을 공급하는 동시에 도시 가구 평균 소득 이상의 국민도 살 수 있는 조건을 내세워 많은 평범한 국민이 임대주택에서 살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해야 합니다.”
공공임대 100만 가구 기념 단지인 ‘화성동탄2 A4-1블록’을 설계한 허필기 해안종합건축사무소 3부문 대표는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 개선을 위해 ‘확장성’과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고 주문했다. 기존에 공급돼온 임대주택은 주로 전용면적 60㎡ 이하의 소형으로만 지어져 변화된 사회적 환경과 수요를 반영하지 못하고 부정적 인식을 키우는 데 한몫했다는 것이다.
허 대표는 “크고 작은 다양한 집에 다양한 계층이 모여 살 수 있는 곳으로 바꿔야 한다”며 “저소득층을 위한 싸구려 주거, 가난한 자만이 산다는 프레임에서 우선 벗어나는 것이 공공임대주택의 이미지를 개선하는 단초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기존 공공임대와 차별화를 시도한 화성동탄2 A4-1블록 행복주택마저도 소형 면적으로만 구성됐다. 이 단지에서 가장 넓은 가구의 면적이 전용 44㎡(방 2개)에 그친다. 어린 자녀 한 명을 키우는 신혼부부가 거주하는 데는 문제가 없을지 몰라도 이후 자녀가 성장하거나 자녀 수가 늘면 이사를 고려할 수밖에 없다.
정부도 이러한 지적을 반영해 최근 중형 면적의 공공임대 도입을 서두르고 있다. 국토교통부는 올해 총 14만 7000가구의 공공임대를 공급할 계획인데 올해 신규 승인하는 주택의 경우 전용 60~85㎡ 평형 비중을 늘리고 1인 가구 입주 가능 면적을 최대 36㎡(기존 18㎡)로 확대하기로 했다. 허 대표는 공공임대의 질적 개선에 따른 임대료 인상 등이 취약 계층의 부담으로 이어지지 않도록 세밀한 정책 보완을 병행해야 한다고 했다.
다행스러운 점은 대학생과 신혼부부 등 젊은 층을 대상으로 공공임대 공급이 꾸준히 늘면서 인식 개선 효과가 나타나고 있다는 점이다. 허 대표는 “최근 한국토지주택공사(LH)와 빅데이터 전문 기관이 진행한 조사에서 인근 임대주택 건립에 대해 긍정적인 응답(60%)이 부정적인 응답(35%)보다 높게 나타났다”고 했다. 반면 미디어 등에서 재생산되는 ‘엘거(엘에이치 거지)’ ‘휴거(휴먼시아 거지)’ 등 부정적인 신조어들은 임대주택에 대한 인식 개선을 늦추는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허 대표는 공공임대 등 공공 건축물이 지역을 대표하는 건축물로 조성될 수 있는 환경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그는 “현대에 들어와서는 우리나라와 지역을 대표하는 이렇다 할 건축물이 없다”면서 “지역 대표성과 상징성 등이 드러나는 매력적인 건축을 통해 역사적인 유물이 될 수 있는 특별한 건축물을 위한 재논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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