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때 자랑거리였던 ‘K방역’이 ‘세계 1위 확진 국가’라는 오명을 입게 됐다. 정부는 오미크론 유행의 정점을 알 수 없는 상황에서 다시 방역을 완화했다. 지속된 방역 완화 시그널로 인해 확진자는 더 늘어나고 사망 피해는 걷잡을 수 없이 커지고 있다. 국민들은 “정부가 사실상 방역에 손을 놓았다”며 각자 알아서 치료하면서 위기를 넘기는 중이다. 전문가들은 정부가 의미 없는 거리 두기 완화를 발표할 때가 아니라 코로나19 환자 치료에 집중해야 할 시기라고 입을 모은다.
18일 중앙방역대책본부에 따르면 이날 0시 기준 코로나19 확진자는 40만 7017명으로 역대 두 번째로 높은 수치를 기록했다. 역대 최다치였던 전날(62만 1328명)보다는 줄었지만 일주일 전인 지난 11일(28만 2978명)의 1.4배로 증가세는 좀처럼 꺾이지 않는 형국이다. 이 같은 유행 확산 속도는 세계적으로도 유례를 찾기 힘들다. 월드오미터에 따르면 우리나라는 이날뿐만 아니라 일주일 누적 기준으로도 세계 최다 확진자가 나오고 있다. 2위인 독일은 하루 확진자 30만 명, 3위 베트남은 20만 명 수준이다. 사망자 역시 세계적인 수준으로 이달 16일 기준 미국·러시아·브라질에 이어 4위다. 단위 인구당 사망자 수를 감안하면 이들 국가를 뛰어넘는다.
그럼에도 정부는 이날 사적 모임 인원을 6인에서 8인으로 늘리는 새 사회적 거리 두기 방안을 내놓았다. 앞서 확진자가 폭증하는 시기에도 정부는 잇달아 방역을 완화했다. ‘37만 명가량이 정점’이라던 예상은 빗나간 지 오래다. 현실적으로 정확히 어느 정도가 정점인지도 알 수 없는 상황이다. 하지만 정부의 방역 완화 시그널에 방역에 대한 시민들의 경계심은 이미 풀려 버린 상태다. 실제 유통가는 이미 ‘탈(脫)코로나’ 분위기로 접어들었다. CJ온스타일에 따르면 17일 진행된 ‘하와이 패키지 여행’ 방송에서 한 시간 만에 주문이 약 1200건 몰리며 90억 원이 넘는 주문 금액을 기록했다. 13일 방송된 롯데홈쇼핑의 ‘필리핀 클락 골프 패키지’도 코로나19 이전에 판매한 해외여행 상품과 비교해 주문량이 2배 증가했다. 전문가들도 정부의 섣부른 방역 완화 기조를 비판하고 있다. 엄중식 가천대 길병원 감염내과 교수는 “사적 모임 인원 2명은 크게 차이가 없을지 모르나 국민들에게 방역 완화 메시지를 줘 풀어지게 만드는 게 문제”라면서 “계속되는 방역 완화로 인해 정점 수준의 유행이 길어져 피해 규모가 급증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의료계는 유행 정점까지는 사회·경제적 효과보다 국민들의 목숨을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할 때라고 입을 모은다. 특히 고령자·소아 등 취약 계층의 피해를 우려한다. 천은미 이대목동병원 호흡기내과 교수는 “일반 환자들이 중증화로 진행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는 동네 병원에서 먹는 치료제를 적극적으로 처방해야 한다”며 “충분한 물량을 확보해 초기부터 바이러스를 가라앉혀야 치료도 원활하고 병상 부족도 막을 수 있다”고 말했다. 허탁 전남대병원 응급의학과 교수는 “고령층 확진자가 다시 늘어나고 있어 우려된다”며 “요양병원·요양시설 확진자가 느는 만큼 외부로부터 감염을 차단할 방법이 나와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근 0~9세 소아 사망자가 증가하고 있는 것도 걱정이다. 소아응급의학회는 “코로나19 감염 여부와 관계없이 경련, 호흡곤란, 의식 저하 등의 중증 응급 환자를 적극적으로 수용해야 한다”면서 “초응급 상황의 환아들이 가장 가까운 준비된 응급 의료기관에서 처치를 받을 수 있도록 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제안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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