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27일 ‘주식양도세 폐지’ 일곱 글자로 예정에 없던 자본시장 관련 공약을 낸 것은 최근 한 달 간 속절없이 무너지는 주식시장에 힘을 불어넣기 위한 취지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금리 인상을 예고하며 긴축 기조를 더 강하게 죄면서 국내 시장은 최근 한 달간 400포인트나 하락했다. 연중 최저점이다. 윤 후보가 양도소득세 폐지를 들고 나와 “큰손이나 작은손·일반투자자 가릴 것 없이 주식투자 자체에 자금이 몰리고 활성화돼야 한다”고 밝힌 것도 이 같은 시각이 반영됐다.
윤 후보는 더 나아가 “미국도 테이퍼링(자산 매입 축소)을 하고 있다”면서도 “한국의 기업가치가 많이 저평가돼 있다는 의견이 우세하다”며 증시 활성화에 대해 적극적인 의견도 밝혔다.
이에 한 종목에 10억 원 이상, 1%(코스피)·2%(코스닥) 이상 물량을 가진 대주주가 받던 양도소득세를 없애 시장 거래의 물량을 늘리겠다는 것이다. 이날 발표에 따라 윤 후보가 대선에서 승리하면 집권 즉시 대주주에 대한 주식양도세 폐지를 추진할 방침이다.
윤 후보는 이에 그치지 않고 정부가 오는 2023년 시행할 예정이던 금융투자소득세도 전면적으로 손볼 예정이다. 내년부터 금융투자 수익이 5000만 원 이상이면 20%, 3억 원을 초과하면 25%가 부과된다. 하지만 윤 후보가 포괄적으로 ‘주식양도세 폐지’를 공약하면서 집권 시 정부가 추진하던 과세 계획도 전면 수정될 가능성이 높아졌다. 선대본은 나아가 특정 종목에 장기투자하는 개인 투자자에게 장기보유 특별공제 형태의 세제 혜택을 주는 방안도 살펴보고 있다. ‘1세대 1주택 장기보유’와 같이 일자리를 만드는 기업에 장기투자하는 경제적 행위에 세제 지원을 하겠다는 것이다. 장이 급락하는 가운데 윤 후보가 투자자를 향해 투자 수익에 대한 대대적인 세제 지원책을 발표하는 형태로 차기 정부에도 증시 부양을 이어갈 것이라는 메시지를 분명히 한 셈이다.
정책본부 관계자는 “미국의 긴축 및 이자율 상승, 국내 기업의 실적 악화, 미국 기업들의 전망 악화 등 주식시장이 악화되는 상황”이라며 “무리한 양도차익 과세는 과거 대만의 경우처럼 시장을 무너뜨리고 자금의 해외 이탈 및 부동산 유입 등을 통해 청년 및 서민들의 자산 사다리를 걷어차는 효과가 나올 수 있다는 걱정이 우선적으로 고려됐다”고 설명했다.
다만 당 안팎에서는 윤 후보가 1000만 ‘개미투자자’를 향해 무리한 공약을 내질렀다가 한 달 만에 번복하는 자충수를 뒀다는 지적도 제기된다. 당초 공약인 증권거래세를 이행하기 위한 비용과 사회적 파장을 제대로 고려하지 않았다는 비판이다. 증권거래세 폐지가 오히려 공매도 등으로 개미투자자들의 원성을 사고 있는 기관투자가에 유리하게 작용할 것이라는 진단은 꾸준히 제기돼 왔다. 무엇보다 거래세가 폐지되면 지난해 기준 약 10조 원에 달하는 세입이 사라진다. 특히 증권거래세(0.23%)의 0.15%는 국내 농어업 경쟁력 강화와 농어촌 산업 기간시설 확충을 위해 걷는 농어촌특별세다. 개미 투자자에 대한 혜택이 농가에는 불이익이 될 수도 있다. 이번 공약인 주식양도세 폐지 역시 ‘수익에 과세하지 않는다’는 잘못된 신호를 시장에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이에 윤 후보가 실현 가능성을 점검한 뒤 제대로 된 공약을 발표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왔다. 당 소속 한 의원은 “또 이러면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후보처럼 ‘말 바꾸기 했다’는 지적을 받을 여지를 주는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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