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4년 한국인 생물학자 황우석 교수가 인간 배아를 성공적으로 복제했다는 논문을 ‘사이언스’지에 발표했다. 이듬해에는 해당 배아들로부터 최초의 인간 복제 줄기세포 라인을 만들어냈다는 보고가 이어졌다. 황 교수가 만든 11개의 복제 줄기세포 라인은 손상된 조직을 고치고, 병든 장기를 재생하는 ‘만능’ 개인 맞춤 줄기세포 치료의 가능성을 의미했다. 이 획기적 성과로 그는 ‘한국의 꿈’으로 추앙 받았고 수백 명의 여성들이 그의 연구를 위해 난자를 기증했다. 하지만 논문은 조작된 것이었다. 각기 다른 환자에서 채취한 개별 세포라인이라던 두 장의 사진이 사실은 같은 사진을 사용한 것이었음이 밝혀졌다. 연구소 내부 고발자들은 “실제로 만들어진 세포 라인은 11개가 아닌 2개였으며, 그나마도 복제 배아에서 나온 것이 아니었다”고 폭로했다. 연구 프로젝트 전체가 황 교수의 지시로 조작된 속임수였다는 것이다.
국내외에서 인정받는 저명한 생물학자 중 한 명이었던 황 교수가 어떻게 그토록 노골적이고 부주의한 사기 행각을 벌일 수 있었을까? 신간 ‘사이언스 픽션’은 그 답을 “단지 황 교수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과학적 시스템의 붕괴로부터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한다. 그가 연구 성과를 발표하고 스타가 되기까지, 그가 주장하는 성과를 확인할 검증 시스템은 제대로 작동하지 않았다. 심리학자이면서 스스로 ‘과학 커뮤니테이터’라 소개하는 저자는 획기적인 연구 결과로 학계에서 인정받고 명성을 얻으려는 연구자의 욕망이 ‘상호신뢰에 기반한 과학계 시스템’의 허점을 만날 때 가짜 과학자가 생겨난다며, 과학계에서 쏟아져 나오는 허위 논문, 과장된 논문의 실상을 파헤치고 어떻게 ‘검증 시스템’을 보완할 지를 제안한다.
책은 “과학계 인사들도 흥미롭고 획기적인 연구 결과를 보면 보통 사람과 다름없이 속아 넘어간다”는 사실을 여러 사례들을 통해 보여준다. 책이 ‘최악의 과학 사기 사건’으로 제시한 사례는 이탈리아 외과의사 파올로 마키아리니의 인공 기관지 이식에 관한 연구와 수술이다. 마키아리니는 기증받은 기관지에 이식 받는 사람의 줄기세포 샘플을 씨앗처럼 심는 방법으로 면역 체계 거부 반응이 생기지 않는 인공 기관지를 만들 수 있다고 공언했다. 실제로 3명의 환자를 대상으로 이식 수술이 진행됐고, 그 결과 환자들이 고통 속에서 죽어가는 데도 마키아리니는 거짓으로 자신의 업적을 자랑했다. 하지만 사필귀정으로 ‘사기’가 밝혀졌고, 그에게 노벨상 수여를 추진하던 노벨상위원회 위원도 사임했다.
사회적 조건과 제도가 인간 행동에 미치는 영향을 연구하기 위해 대학생들에게 죄수와 교도관 역할을 맡긴 1971년 ‘스탠퍼드 감옥 실험’의 연구진은 교도관 역할자들이 죄수 역할의 사람들을 놀라울 만큼 빠르게, 너무나 가학적으로 괴롭혀 실험을 일찍 끝내야 했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훗날 공개된 녹취록에서는 연구를 주도한 심리학자 필립 짐바르도가 간수들에게 죄수를 어떻게 학대해야 하는지 구체적 지침을 줬음이 드러났다. 이 역시 명백한 조작이다.
저자는 문제의 원인을 ‘과학적 시스템’의 위기에서 찾는다. 과학적 시스템은 대체로 상호 신뢰에 기반을 두고 있으며, 모든 사람은 기본적으로 다른 사람들도 윤리적으로 행동할 것이라 가정한다. 과학자들은 자신의 연구에 대한 신뢰도와 검정력을 확보하기 위해 다양한 실험과 데이터를 토대로 결과를 도출해 논문을 쓴다. 하지만 이 빈틈을 파고드는 과학자들이 생겨났다. 그들은 연구의 질보다 양을 우선시하고, 때때로 연구 윤리를 저버리기도 한다.
해법은 있다. 저자는 연구의 전 과정에 모두가 자유롭게 접근할 수 있는 ‘오픈 사이언스’가 연구윤리의 추락을 막을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데이터가 완전히 공개된다면 최소한 연구자들의 조작은 막을 수 있다는 얘기다. 그는 “눈에 띄는 연구 결과에만 관심을 두려는 우리의 본능을 다스리고, 당장은 덜 흥분되더라도 좀 더 견고한 결과를 중요시하는 법을 배워야 한다”면서 “과학을 혁신한다는 과제는 결코 간단치 않으며 그 과정에서 시행착오와 적절한 새로운 시도들이 있어야 한다”고 말한다. 과학은 ‘유레카’를 외치듯 짜릿하지도, SF소설처럼 흥미진진하지도 않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자극이 아니라 ‘진리’다. 1만7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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