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재인 정부는 ‘실수요자의 세부담도 크게 늘릴 것’이라는 많은 비판 여론을 뚫고, 공시가격 현실화를 밀어붙였다. 올해 전국 평균 공동주택 공시가격 상승률은 19.08%에 달했고 서울만 놓고 보면 재산세 증가율 상한(30%)에 맞춰 세금을 내야 하는 가구도 속출했다. 더욱이 내년 3월 발표할 공시가격 상승률도 20% 안팎일 것이라는 전망이 많으면서 “내년 대선을 앞두고 조세저항은 더 커질 것”이라는 예측이 나왔다.
여론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한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가 이번에는 재산세의 기준이 되는 공시가격의 전면 재검토를 들고 나왔다. 부동산이 문 정부의 최대 실정 중 하나인 만큼 이 부분을 최대한 뒤집어서 차별화하겠다는 것이다. 문 정부가 ‘투기 근절’이라는 이념을 관철하려는 과정에서 부동산 시장에 혼란을 초래했다는 점과 차별화 해 ‘이재명표 실용주의’를 강조하는 것으로 해석된다. 앞서 이 후보는 “다주택자들이 (부동산을) 팔고 싶어도 양도세 때문에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고 있다”며 양도세 중과 1년 유예를 제시하는가 하면 “재산세 예외조항을 종부세로 확대해 억울한 사람이 없게 해야 한다”며 다주택자 종부세 핀셋 완화를 시사하기도 했다.
여당은 곧바로 반응을 했다. 민주당은 20일 관계 부처와 당정협의회를 열고 내년도 재산세에 올해 공시가격을 적용해 사실상 동결하는 방안을 논의한다. 이에 맞춰 현행 ‘공시지가 현실화율 90%’ 달성 목표 시한도 2030년에서 2031년으로 유예한다는 방침이다. 청와대·정부와는 달리 다주택자 양도세 완화에도 힘을 거들었다. 윤후덕 민주당 선대위 정책본부장은 18일 한 라디오(YTN)에 출연해 “양도세를 한시적으로 유예하면 물량이 대거 나올 수 있다”며 이 후보의 주장에 힘을 실었다. 그는 “금리가 올라 부동산 가격이 꼭지점이라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며 “중과 유예는 ‘지금이 매도 타이밍’이라는 심리를 빠르게 형성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윤 본부장은 재개발·재건축 완화도 시사 했다. 그는 “서울에 주택 50만 호가 더 필요하다”며 “재개발·재건축 물꼬를 터서 현실적인 서울권 공급 대책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하지만 이를 두고 시장이나 정치권의 반응은 차갑다. 대선용이라는 이유에서다. 부동산세제 전반에 대한 근본적인 검토 없이,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유예에 이어 또 다시 “일단 던져 놓고 본다”식의 여론 무마용 대책을 내 놓고 있다는 것이다. 부동산업계의 한 관계자는 “단독주택의 공시가격 확정이 12월, 다주택자가 내년 3월인데 공시가격 체계에 대한 근본 수술이 없는 한, 한계는 뚜렷한데도 일단 지르는 꼴”이라고 지적했다. 청와대와 정부가 이 후보의 주장을 수용할지도 미지수다. 이미 다주택자의 양도세 중과 완화는 청와대·정부의 반대로 실현 가능성이 불투명한 상태인데도 시장에 혼선만 주면서 거래가 급감하고 매물도 줄고 있다.
야권도 비판의 날을 세웠다. 부동산 세제의 정상화에 대한 주도권을 뺏기지 않겠다는 의도도 있다. 윤희숙 전 국민의힘 의원은 “이 후보가 문재인 정부뿐 아니라 자신과도 차별화를 하고 있다”며 “국토보유세를 왕창 걷어 기본소득으로 나눠주자고 하지 않으셨느냐”고 따져 물었다. 그러면서 “국민들이 (말을 바꾼 것도) 모를 거라고 믿고 자살골을 날렸다”고 평가했다.
김은혜 국민의힘 의원은 “2년 전 공시가격이 시세를 제대로 반영하지 않아 불로소득을 조장한다던 이 후보가 공시가격 제도 전면 재검토를 요구했다”며 “철학도 소신도 ‘인형뽑기’처럼 그때 그때 고르느냐”고 꼬집었다. 김재현 국민의힘 선대위 부대변인은 “이 후보는 표가 떨어지니 세금을 자신의 주머니 속 공깃돌인 양 만지작거린다”며 “이 후보의 ‘80일짜리 뻥 공약’을 국민들은 믿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전문가들의 평가도 호의적이지는 않다. 신율 명지대학교 교수는 “이 후보가 중도층 확장에 효과가 있다고 보고 현 정부와 차별화된 메시지를 계속 내고 있다”며 “하지만 ‘유연한 실용주의’라는 인식을 주기에 이 후보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부족한 측면이 있다. 자칫 말바꾸기 논란에 빠질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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