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번 더 가자.”
우렁찬 외침과 함께 어둠 속에서 잠시 숨 고르던 배우들은 이전보다 더 강렬하고 신명 나게 두드리고 또 두드린다. 칼과 도마, 대형 (조미료) 드럼통과 나무 스틱이 부딪쳐 경쾌한 소리를 뿜어내고, 리듬을 만드는 배우들의 움직임은 현란하면서도 일사불란하다. 쉴새 없는 칼질에 사방으로 흩어진 양배추 조각들을 보니 무아지경의 ‘난타전’이 귀환했다는 게 실감 난다. 언어를 초월한 무대로 세계인의 마음을 두드렸던 넌버벌 퍼포먼스 ‘난타’가 돌아온다. 지난해 봄 코로나 19로 문을 닫은 명동 전용관이 오는 12월2일, 1년 9개월 만에 다시 관객을 받는다.
“난타가 1997년 초연했는데, 그 해에 유독 많은 관객이 와 주셨어요. 어렵고 힘든 시기에 우리 공연이 시원하고 통쾌하고 위안이 된다면서요.” 난타 제작자인 송승환 피엠씨 프러덕션 예술감독은 최근 서울 중구 명동 난타 전용관에서 열린 재개막 기념 프레스콜에서 초연 당시 이야기를 꺼냈다. 1997년과 결은 다르지만, 녹록지 않은 현실에 온 국민이 지친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여전히 불확실성 가득한 상황에서 조심스레 무대를 여는 그는 “어려운 상황에서도 우리 공연이 희망의 메시지가 되었으면 한다”는 바람을 전했다.
난타는 한국 전통 가락인 사물놀이 리듬을 소재로 주방에서 일어나는 일을 유쾌하게 표현한 국내 최초의 비언어극이다. 지금까지 국내외 관람객은 총 1,500만 명. 서울 명동 뿐 아니라 홍대앞, 제주도, 중국 광저우와 태국 방콕 등에 상설 공연장을 마련해 활발한 공연을 펼쳤으나 코로나 19로 모든 게 멈춰 섰다. 송 감독은 “메르스와 사스 때도 문을 닫기는 했지만, 이번처럼 2년 가까이 공연을 올리지 못하기는 처음이었다”며 “이러다 난타가 잊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에 두렵기도 했다"고 털어놓았다. 배우들을 향해서도 "무대에서 연기해야 할 사람들이 택배하고, 식당에서 일하며 어려운 시간을 보냈다”고 안타까운 마음을 전했다.
누구보다 무대를 그리워한 배우들은 이날 21개월의 공백이 무색하리만큼 완벽한 무대를 선보였다. ‘헤드 쉐프’ 역의 고창환은 “그동안 몸을 안 써서 힘든 부분도 있지만, 몸이 난타를 기억한다”며 “10년 이상 (공연을) 하면서 ‘난타 피’가 흐르고 있어서다”라고 말했다. 이날 소감을 말하던 배우들은 벅찬 마음에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주 관객층인 외국인 관광객의 입국이 아직 제한적인 상황에서 난타는 국내 관객 확대에 공을 들일 계획이다. 송 감독은 “난타의 누적 관객이 1,500만 명인데 그중 1,000만 명이 외국인”이라며 “내국인 중 난타를 알지만 안 본 사람, 난타를 아예 모르는 젊은 층을 대상으로 마케팅을 펼칠 것”이라고 설명했다. 공연은 일단 12월 한 달 간 매주 목∼일요일 나흘 간 거리 두기를 적용해 진행된다. 회차 추가나 공연 연장 여부는 이후 추이에 따라 결정될 예정이다.
난타는 내년 9월 미국 미네소타를 시작으로 투어에 나서기 위해 현지 에이전시와 협의 중이다. 코로나 19로 중단됐던 하와이 전용관 설립도 재추진한다. 그렇게 조심스레, 다시 두드린다. 잠시 숨 고른 뒤 “한 번 더 가자”를 외치는 공연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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