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봉산은 강원도 삼척시와 울진군 북면에 걸쳐 있는 해발 999m의 산이다. 고봉준령이 빽빽한 강원도에서 999m면 높지 않은 산이다. 하지만 응봉산의 계곡은 강원도, 아니 대한민국 전체를 통틀어 어느 산의 계곡과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응봉산은 울진 덕구온천 근처로 올라가면 정상까지 3시간,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응봉산 입구 왼편 등산로를 통해 올라가도 3시간이 걸린다. 하지만 응봉산의 진면목을 만나보려면 풍곡리 오른쪽으로 진입하는 덕풍계곡을 따라 올라가야 한다.
삼척시 가곡면 풍곡리 일대 4,819㏊는 지난 2005년 9월 7일 산림유전자보호구역으로 지정됐다. 그만큼 숲이 조밀하고 산림자원의 다양성이 확보돼 있다. 실제 이곳은 멸종위기종 산양의 서식 밀도가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이기도 하다.
삼척국유림관리소 명의로 세워진 안내문에 따르면 이곳 산림자원은 소나무·졸참나무·굴참나무 등이 주종을 이루고 있다. 그래서인지 예년에 비해 늦은 단풍 빛깔은 빨간색보다 노란색에 가깝다.
응봉산이라는 이름은 산의 형상이 하늘로 날아오르는 매의 모습을 닮았다고 해서 붙여졌다. 한자 이름인 응봉산으로 불리기 전 인근 주민들이 부르던 이름은 ‘매봉’이었다. 전설에 따르면 울진에 살던 조씨가 매사냥을 하다 매를 잃어버렸는데 이 산에서 매를 찾아 ‘매 응(鷹)’ 자를 써서 응봉(鷹峯)이라고 했고 그곳에 좋은 묏자리가 있어 부모의 묘를 썼더니 집안이 번성했다고 한다.
조씨 집안이 어디에서 번성했는지 모르겠지만 계곡을 품은 풍곡리 덕풍계곡마을은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첩첩 산골 오지였다. 마을 이름을 ‘큰 덕(德)’ 자에 ‘풍요로울 풍(豊)’ 자를 써서 덕풍계곡이라고 불렀는데 계곡이 깊고 앞뒤가 산으로 막혀 있어 변란이 있을 때마다 피난처 역할을 했을 정도다.
실제로 이 산을 일반에게 처음 알린 산악인 박인식 씨는 40여 년 전 한 남자에게 “반대하는 결혼을 하려고 하는데 어디 숨어 들어가서 살 수 있는 오지 마을을 알려달라”는 부탁을 받고 이곳을 알려줬다고 한다. “그 연인들은 정말 이곳으로 들어와 한동안 살다가 언젠가 떠나가 버렸다”는 것이 박 씨의 전언이다.
삼척 쪽 응봉산에는 계곡이 두 곳인데 하나는 통행이 가능한 용소골이고 또 한 곳은 예전에는 통행이 가능했지만 탐방로를 정비하느라 출입을 금하고 있는 문지골이다. 기자가 찾은 날에도 문지골은 입구까지만 접근이 가능했고 상류 쪽으로는 길이 끊겨 있었다.
반면 덕풍계곡 용소골은 제2용소까지 접근이 가능하다. 골짜기 입구에는 간단한 안내문과 함께 헬멧 10여 개가 비치돼 있다. ‘등산객은 웬만하면 헬멧을 쓰고 가라’는 얘기다. 삼척시는 이 골짜기를 따라 철제 데크길을 깔아 놓았는데 봄에 이곳을 찾으면 철길 곳곳이 낙석 충격으로 찌그러져 있다. 겨울철 바위 틈에 얼었던 얼음이 녹으면서 헐거워진 바위가 떨어지는 탓이다.
이 가을 계곡의 주인공은 돌멩이가 아닌 단풍이다. 이곳 계곡의 바위는 흰빛을 띠고 있는데 단풍보다 먼저 물이 든 참나무들은 온통 노란색이다. 참나무 군락과 어우러진 계곡은 2용소 앞까지 폭 60~70m, 총연장 10㎞의 규모가 일정하게 유지된다. 먼 옛날 빙하에 의해 형성된 협곡이기 때문이다.
덕풍계곡 용소골에는 3개의 용소가 있는데 접근은 2용소까지만 가능하고 그 위로는 접근이 차단돼 있다. 하산길에 다시 안내문을 살펴보니 ‘덕풍계곡 용소골은 전국 제일의 트레킹 코스로 계곡에서 제3용소에 이르는 12㎞는 내금강에 필적할 만큼 경치가 빼어나다’고 적혀 있다.
이어 ‘용소골에는 일제강점기 입목 수탈을 목적으로 가설된 41㎞에 달하는 산림 궤도가 있었는데 해방 후 태풍 등 자연재해로 파괴된 후 대부분 유실돼 곳곳에 산재해 있었다. 이후 2010년 1용소에서 2용소까지 국민들이 참여해 짧게 절단한 레일을 배낭에 넣어 수거하기도 했다’고 전하고 있다. 이 깊은 산속까지 들어와 레일을 수거한 국민들의 참여 정신에 고개가 숙여질 따름이다. /글·사진(삼척)=우현석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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