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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태우 별세]북방외교의 그림자…돌려받지 못한 소련의 빚

■북방 외교의 대가

1990년 한-소 수교로 외화 차관 제공

당시 외환보유액 10% 돈 소련에 차관

1년 만에 소련 붕괴·러시아는 디폴트

‘불곰사업’ 통한 상환은 아직도 진행

섣부른 외교 결정이 국민 쌈짓돈 탕진

러시아와 교류·현지 시장 확대 평가도

한국 사회 반공주의 더 퍼지는 계기

1992년 11월 18일 노태우(오른쪽) 대통령과 보리스 옐친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정상회담을 마친 후 한.러 기본조약에 서명하고 있다./연합뉴스




노태우 정부의 북방외교는 국민의 쌈짓돈을 소련에 빌려주고 30년간 제대로 받지 못한 그림자도 낳았다. 또 한편으로는 공산권 국가와의 급진적인 관계개선으로 반공주의의 뿌리가 더 깊게 박히는 계기가 됐다는 평가도 받는다.

노태우 전 대통령은 북방외교를 앞세워 냉전 체제의 끝에서 요동친 동아시아 정세의 해법을 마련하고자 했다. 당시 노 전 대통령은 소련과의 수교를 통해 북한을 대외적으로 압박하고자 했다. 한국을 중심으로 통일의 발판을 마련하려는 목표를 염두에 둔 것이다. 이른바 ‘원교근공(遠交近攻·먼 곳과 사귀고 가까운 곳을 때린다)’으로 북한을 개혁·개방으로 이끄는 전략이다.

북방외교를 첫 단계로 해서 북한의 대외개방을 이끌고 이후 한국의 생활·문화권을 북방으로 확장해 한반도에 평화를 정착하는 것이 궁극적인 목표였다. 동구(유럽의 동쪽)권 공산국가들과 외교를 통해 평화통일을 길로 가고자 한 것이다.

과감한 구상엔 ‘돈’이라는 대가가 따랐다. 미국의 레이건 행정부를 맞이한 소련은 1980년대 들어 혹독한 군비경쟁에 노출됐다. 재정은 파탄지경까지 갔고 만성적인 외화부족 상태에 돌입했다. 1985년 개혁개방(페레스트로이카)을 택했지만 외화를 채우기는 역부족이었다.

노태우정부는 이 사정을 간파하고 있었다. 1990년 한-소 수교는 경제협력을 위해 소련에 차관 30억 달러를 제공하는 조건이 붙었다. 당시 우리나라(1989년 기준)의 무역수지가 9억 1,200만 달러, 외환보유고가 149억 달러인 점을 고려하면 노태우정부는 북방외교를 위해 국가의 3년 치 무역이익을, 외환보유고의 20%를 소련에 빌려주는 파격적인 결정을 한 것이다. 노태우 정부는 1999년 돌려받는 조건으로 1991년까지 14억 7,000만 달러(10억 달러·소비재 4억 7,000만 달러)를 소련에 빌려줬다.



하지만 노태우정부는 아쉽게도 냉전의 벼랑 끝에 서 있던 소련의 상황을 간파하지 못했다. 소련의 붕괴다. 1991년 12월 소련은 공식적으로 해체됐다. 우리 외환보유고의 10%를 빌려간 뒤 1년 만에 소련 자체가 사라진 것이다. 소련을 계승한 러시아는 이를 갚을 능력이 없었다.

이 빚은 후임인 문민정부(김영삼 대통령)가 떠안았다. 문민정부는 러시아와 빚을 방산물자와 원자재 등으로 상환하는 ‘불곰사업’을 추진하기로 합의했다. 하지만 1997년 말 아시아를 휩쓴 금융위기의 여파는 1998년 러시아까지 디폴트(채무불이행) 상황으로 몰아넣었다. 이자와 원금은 30억 달러로 불어났고 결국 우리 정부는 2003년 6억 6,000만 달러를 탕감하는 조치를 단행했고 아직도 돈을 받기 위해 협의를 하고 있다.

1990년 9월 26일 전국대학생대표자협의회가 서강대에서 북방정책분쇄 결의대회를 가진 후 화염병 시위를 하고 있다./연합뉴스


북방외교의 명암은 뚜렷하다. 섣부른 외교적 판단으로 북한의 개혁개방을 이끌지도 못한 채 국민의 돈을 떼였다는 비판이다. 반면 차관으로 흘러간 우리의 소비재가 러시아 시장에서 자리 잡고 불곰사업으로 양국이 지속적인 교류와 협력을 해온 점은 긍정적인 면으로 꼽힌다.

한편으로는 지나치게 속도를 낸 북방외교가 한국에서 반공주의를 자극했다는 평가도 있다. 노태우정부는 1989년 문익환 목사와 임수경 전 의원이 잇따라 방북하는 사건이 터지는 와중에도 북방외교를 밀어붙였다. 이는 우리 사회에서 반공주의가 더욱 확산되는 원인을 제공하기 되기도 했다. 다만 국시(國是)로 이어온 반공주의를 극복하고 국익을 위해서라면 적대적 국가들과도 수교한 노태우정부의 강단이 한국 외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다는 평가도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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