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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정치·사회
[최수문특파원의 차이나페이지] <100> 마오 묘지·천안문 광장을 세계문화유산으로···‘사회주의 강국’ 향한 무모한 도전

■‘중국판 역사 만들기’에 나선 베이징 중축선

중국 베이징의 수도박물관에 전시된 중축선 건축물 모형을 한 아이가 살펴보고 있다. (오른쪽부터)영정문에서 고루·종루까지 미니어처로 제작돼 있다. /최수문기자




중국 베이징 중축선(北京 中軸線)의 한 가운데 천안문 광장(톈안먼 광장)이 있다. 중국의 주요 정치 행사가 열리는 곳으로, 베이징의 중심부에 있어 찾는 사람이 많다. 하지만 최근 점차 통제가 강화되고 있는 구역이기도 하다. 외국인의 출입은 더 까다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광장을 중국 공안과 무장경찰들이 이중삼중으로 둘러싼 채 검문검색을 하고 있다. 2019년부터는 외신 기자들의 천안문 광장 출입이 아예 금지다. 일반 광장의 접근을 금지한다는 것은 정상 국가로서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다. 중국 기자들은 한국의 광화문 광장이나 미국 의사당, 백악관 앞을 자유롭게 오간다.

또 천안문 광장에는 마오쩌둥기념당(정식 명칭은 ‘毛主席記念堂’)으로 불리는 마오 묘지가 있다. 1976년 사망한 마오쩌둥의 시신이 방부처리 돼 누워있는 곳이다. 기념당은 1977년 세워졌다. 마오쩌둥은 중공군의 한국전쟁 참전을 지시하면서 국제연합(유엔)과 충돌한 인물이다. 중공군은 국제연합군(유엔군)과 3년 동안 전쟁까지 치렀다.

최근 중국 베이징방송의 ‘最美中軸線’ 프로그램에서 소개한 중축선의 구조. 다만 ‘ㅁ’을 이루는 베이징성은 이미 사라지고 없다. /베이징방송


이런 것들이 포함된 베이징 중축선 건축물들을 중국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를 추진 중이다. 앞서 지난 2012년 중축선 세계문화유산 공정에 들어갔는데 최근인 지난달 16일 본국인 푸젠성 푸저우에서 열린 ‘제44회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위원회 총회’에서 다시 중축선 이야기를 꺼냈다. 칭화대 국가유산보호센터 주임인 루저우는 “중축선은 베이징을 규정하는 웅장한 도시 경관이며, 거의 800 년 동안 지속된 중국 문명의 축적이자 도시 문화의 물질적 캐리어”라고 주장했다.

중국 베이징시는 2020년부터 3년간의 중축선 행동계획을 마련, 사업을 진행 중이다. 관영 베이징방송은 ‘가장 아름다운 중축선(最美中軸線)’이라는 연중 시리즈물을 지난달부터 방송하며 분위기 띄우기에 나섰다. 중축선 인근에는 때 아닌 도시미화 작업이 한창이다. 철거되는 건물의 보상과 이전 문제도 지속적으로 논란이 되고 있다.

베이징 중축선이 한때 부강했던 중국의 대표적인 문화유산이며 향후 강국이 될 중국도 대표할 것이라는 생각에서다. 중국은 베이징 중축선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해 베이징을 문화도시로 삼는 것과 함께 세계의 중심, 즉 중화(中華)라는 전통사상을 현대에 부활시킬 의지를 과시하고 있다. 이른바 ‘사회주의 현대화 강국’ 달성 목표인 오는 2035년까지 세계문화유산 등재를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베이징 중축선의 남단 ‘천교’ 앞의 바닥에 ‘北京中軸’이라는 글자들이 박혀 있다. 멀리 보이는 건물은 정양문이다. /최수문기자


베이징 중축선이 만들어진 것은 명나라가 1420년 한족 역사상 처음으로 베이징을 통일 왕조의 수도로 정하면서다. 사각형으로 베이징 성곽을 쌓고 그 가운데 궁궐(자금성)을 배치했다. 베이징성의 남문도 자금성 앞에 있었으니 남북으로 일직선이 생겼다. 베이징성 남문(정양문), 자금성, 그리고 고루·종루를 잇는 7.8㎞의 선이 생겼다. 베이징성의 규격은 대략 이 선을 기준으로 좌우가 일치하도록 했다. 이 선을 ‘중축선’이라고 부른다.

이번에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 신청이 된 ‘베이징 중축선’ 건축물은 남북 방향으로 영정문(永定門)에서 선농단(先農壇), 천단(天壇), 정양문·전루(正陽門·箭樓), 모주석기념당(毛主席記念堂), 인민영웅기념비(人民英雄記念碑), 천안문광장(天安門廣場), 천안문(天安門), 사직단(社稷壇), 태묘(太廟), 고궁(故宮·자금성), 경산(景山), 만녕교(萬寧橋), 고루·종루(鼓樓·鐘樓)까지 모두 14곳이다.

세계문화유산의 자격 조건이 되지 않는 건물도 많다. 일단 중국은 중축선이 ‘中’을 상장한다고 주장한다. 엄밀히 말하면 ‘中’ 보다는 ‘l’에 불과하다. ‘l’을 둘러싸고 있는 ‘ㅁ’가 고의적인 파괴로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ㅁ’는 바로 베이징성이다. 아예 문화유산으로 보기 힘든 곳도 있다. 완전히 새로 지은 건물도 있고 더욱이 마오 묘지는 겨우 40여년 전인 1977년, 인민영웅기념비는 1958년의 작품이다. 그나마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자금성은 이미 독자적으로 세계문화유산으로 등록돼 있다.

중국이 주장하는 중축선의 가장 남단에는 영정문이 있다. 베이징성을 구성한 내성과 외성 가운데 외성의 남문이 영정문이었다. 아쉽게도 지난 1950년대 베이징의 문화유산 파괴의 광풍 속에서 영정문도 흔적 없이 사라졌다. 지금 있는 문은 2004년에 새로 세운 것이다. 다만 주위를 둘러싼 성곽도 없이 문만 덩그러니 서 있어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자아낸다. 20년도 채 안된 건물이 아주 낡게 보이는데 이는 복원할 때 크게 노력을 기울이지 않았기 때문인 듯하다.

없는 것보다는 낫다는 평가다. 영정문에서부터 북쪽으로 길게 돌이 깔려 있어 중축선 기분을 낸다. 돌길은 내성의 남문인 정양문까지 3㎞ 가량 이어진다. 중간에 천교(天橋)라는 다리가 있다. 물론 이것도 지난 2013년 복원한 것이다. 다만 원래 자리에는 도로가 있어 복제품은 40m 남쪽에 세워졌다.

천교는 좌우로 있던 천단과 선농단에 황제가 가기 위해 건넜던 다리다. 원래 다리 아래로는 베이징 외성을 남북으로 가르는 시냇물이 흐르고 있었다.(지금은 도로다) 천단은 말 그대로 하늘에 제사지내는 곳이고 선농단은 임금이 농사에 모범을 보이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곳이다.

베이징 전문대가의 한 건물에서 유리창을 통해 바라본 정양문(전루)와 마오쩌둥기념당, 천안문의 모습. /최수문기자


천교를 지나 정양문에 이르는 길이 전문대가(前門大街)로 부르는 곳이다. 정양문을 보통 ‘전문’이라고 하기 때문이다. 우리로 하면 남대문시장 같은 곳이다. 전통시대 중국의 최대 규모의 시장이 있던 곳이다. 전문대가 서쪽이 ‘다자란’이라고 부르는 골목시장이고 또 그 서쪽에 유명한 ‘유리창’이 있다.

전문대가는 청나라의 유산이다. 만주제국인 청나라가 중국을 정복한 후 베이징에 눌러 살면서 민족별로 거주지를 나누었다. 베이징 내성은 정복자인 만주인들의 살고 피정복자인 중국인 한족들은 외성으로 쫓아냈다. 즉 베이징성(내성)으로 들어가지 못한 한족들이 그나마 가장 가까운 곳에 모여 상업행위를 한 것이 전문대가인 셈이다.

전문대가 앞 전문의 정식 명칭은 정양문이다. 정양문도 영정문처럼 주위에 성곽이 없어 쓸쓸한 모습이다. 그마나 전통시대 건축 그대로 살아있는 것이 다행이다. 베이성의 대문은 보통 대문 자체와 옹성으로 구성돼 있다. 우리의 동대문을 생각하면 이해가 쉽다. 다만 규모는 더 컸는데 대문과 방어용 전루, 그리고 양쪽에 작은 문이 있고 이를 옹성 성벽이 둘러싸고 있었다. 정양문은 현재 대문과 전루만 남아 있다. 처음 보는 사람은 문이 2개라고도 생각하는데 실제로는 문 하나의 부분들이다.

정양문 북쪽으로는 천안문 광장이 있다. 전통 시대 천안문 광장은 주위가 성곽으로 둘러싸인 폐쇄식 구조였다. 광장 모양은 ‘T’자로, 출입구로는 위쪽 가운데가 천안문, 위쪽의 양끝은 장안동·서문(長安東·西門), 아래쪽에는 대청문(大淸門)이 각각 있었다.



중국은 1950년대 베이징 도시를 개발하면서 천안문 광장의 ‘T’자 모양 성벽을 없애고 위쪽은 도로(장안대로)로, 나머지는 확 트인 광장을 만들었다. 장안동문과 장안서문은 사라졌고 대청문은 현재의 마오기념당이 그 자리에 들어서면서 역시 흔적마저 없어졌다. 과거 사람들이 교류하던 대청문 자리에 마오 묘지를 세우면서 중축선 한가운데를 꽉 막아선 모양새가 됐다.

중축선 단일 건축물로서 최대이자 자금성의 중심인 태화전이 웅장함을 자랑하고 있다. /최수문기자


천안문 광장 끝에는 천안문이 있다. 당초 베이징성 안에는 황제의 거주지역인 황성(皇城)이 있었는데 그 황성의 정문이 천안문이었다. 천안문도 역시 황성의 성곽은 사라지고 성문만 남아 있다. 천안문 광장에서 대형 정치 행사가 벌어지곤 하는데 천안문 자체도 정치색을 강하게 띄고 있다. 바로 마오쩌둥 사진이다.

천안문에 인물 사진이 붙은 것은 1928년 중화민국 정부가 중국을 통일하면서 손문(쑨원)의 사진이 붙은 것이 시초라고 한다. 이후 일제 침략기에 떼어졌다가 1945년 중일전쟁 승리후 이번에는 장제스의 사진이 붙었다. 1949년 국공내전에서 공산당이 승리하면서 드디어 마오쩌둥으로 사진으로 바뀌었다.

천안문을 지나면 단문(端門)이 나오는 데 좌우로 사직단과 태묘가 있다. 사직단은 땅과 곡신의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곳이고 태묘는 임금의 조상신을 모시는 곳이다. 우리의 사직단과 종묘와 유사한 형식이다.

단문을 거치면 바로 자금성인데 정문을 오문(午門)으로 부른다. 자금성은 단일 궁궐로서는 세계 최대 규모라고 한다. 면적이 72만㎡이니 우리 경복궁의 1.7배 정도 된다. 조선과 당시 명·청의 인구와 국토 규모를 감안하면 자금성이 그렇게 큰 편은 아닌 것을 알 수 있다.

베이징 중축선은 자금성 안에서 오문, 태화문, 태화전, 중화전, 보화전. 건청문, 건청궁, 교태전, 곤녕궁, 흠안전, 신무문 등으로 남북이 이어진다. 이들 ‘문’과 ‘궁’ 등의 앞뒤 문을 모두 열면 일직선이 생기는 것에서 자금성도 중축선을 중심으로 만들어졌다고 볼 수 있다.

자금성에서 유일하게 중축선을 비껴가 있는 곳이 있다. 바로 곤녕궁이다. 원래 명나라가 처음 만들 때 곤녕궁은 왕비의 침전이었다. 때문에 다른 건물들처럼 앞뒤로 문이 나 있었다. 하지만 만주족 청나라가 자금성을 차지하면서 이 건물을 만주족 풍습으로 고쳤고 이에 따라 건물의 문이 동쪽(정면을 봤을때 오른쪽)에 생겼다. 중축선에 맞지 않는 구조다. 청나라가 망한 이후에도 곤녕궁은 문화유산으로 유지됐고 지금도 그대로 남아 있다.

경산 정상에서 남쪽으로 자금성을 바라보면 주요 건물들이 일직선 상에 배치돼 있음을 알 수 있다. /최수문기자


자금성을 나서면 경산이 있다. 경복궁의 뒷쪽 북악산과 같은 구조인데, 평원인 베이징성 내에 만든 인공산으로 유일한 산이다. 자금성 주위의 해자를 팔때 나온 흙으로 산을 만들었다고 한다. 이후 청나라 때 산 위에 정자 5개를 만들어 지금 우리가 보는 모습이 완성됐다.

경산을 지나면 황성을 빠져나가게 되는 데 원래는 지안문(地安門)이 있었다. ‘천’의 상대 개념으로서 ‘지’다. 지금은 도로 확장 때문에 완전히 사라졌다. 최근 베이징시가 지안문을 복원하기 위해 노력한다고 한다. 하지만 도로 구조를 변경해야 해 쉽지 않은 모양이다.

만녕교는 중축선과 베이징 대운하가 합쳐지는 곳에 있는 다리다. 원나라대 처음 만들었다고 하니 800년의 세월이 흐른 건축물이다. 일부를 수리해 지금도 자동차가 지나는 도로로 사용된다.

중축선의 최북단은 고루와 종루다. 고루는 북을, 종루에는 종을 두고 전통시대 베이징의 시각을 알렸다. 우리의 보신각에 해당된다. 종루를 지나면 후퉁이 펼쳐지고 중축선이 사라진다. 생각으로는 베이징성 북문이 있을 듯하지만 실제로는 없다. 베이징성의 북쪽에는 덕승문과 안정문이 있었는데 이 둘은 중축선의 동서로 치우쳐 있다.

베이징 중축선의 약점이자 베이징의 약점은 전통 건물들이 많이 사라져버렸다는 것이다. 1949년 중국이 공산화되고 이후 들어선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베이징 도시의 현대화 개조에 나섰는데 이 와중에 이전까지 베이징을 뒤덮던 전통 건축물들을 대규모로 훼손했다. 대표적인 것이 베이징 성곽이다. 길이가 내성 23.3㎞, 외성 14.4㎞였던 베이징 성곽은 모두 사라지고 내성 동남쪽 일부 1㎞ 남짓만, 그것도 절반은 파괴된 채로 남아 있다. 베이징 성곽 자리는 베이징의 간선도로인 제2순환도로가 차지하고 있다. (서울 성곽인 한양도성의 길이는 18.6㎞였는데 현재 성곽의 70% 정도는 남아 있다)

가장 파괴가 심한 곳은 천안문 광장 주변이다. 전통 광장을 둘러싸던 성벽이 사라진 것과 함께 광장 옆의 전통 기관들의 건물도 없어졌다. 한국에서는 그나마 표지석이라도 있고 또 최근 광화문광장 재구조화 작업의 일환으로 의정부 건물 등을 복원 중이기는 하지만 중국은 말 그대로 역사가 잊혀졌다.

대신 들어선 것이 마오쩌둥기념당과 인민영웅기념비, 인민대회당 등이다. 천안문 광장도 중국 공산당 정부의 정치적 목표를 달성하기 위한 상징으로 더 역할하고 있다.

경산에서 북쪽으로 고루를 바라본 모습. 고루와 종루(고루 뒤편)가 베이징 중축선의 끝이다. 현재 고루 주변은 리모델링에 분주하다. 그 뒤쪽은 아파트 등 고층건물로 가득하다. /최수문기자


최근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베이징 중축선은 정확한 중간은 아니다. 현재 중축선은 전통 시대 베이징성을 기준으로 동편 성곽에서는 3,210m, 서편 성곽에서는 3,470m 각각 떨어져 있다. 중축선이 130m 동쪽으로 치우쳐 있는 것이다. 그렇다고 중국의 중축선 ‘선전’에 차질이 생기는 것은 아니겠지만 완벽하지는 못한 셈이다.

중축선을 남북으로 더 확장하면 북쪽에서는 올림픽 경기장, 남쪽에서는 다싱국제공항이 나온다. 베이징의 현대화 확장판이라고 할 수 있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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