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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최강’ 메모리 반도체도 불길한 징조···탁월한 인재 키워야 ‘초격차’ 가능” [청론직설]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

차량용 반도체 부족과 코로나로 반도체 패권 경쟁 가속

시스템반도체 주도 위해 패러다임 바꾸는 인력 육성을

메모리 양산 기술 최강…선행기술은 美 마이크론 선두

K-반도체 경쟁력 위해선 화평법·화관법 규제 완화 필요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31일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이 31일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서는 탁월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하고 있다. /성형주 기자



차량용 반도체 공급난을 계기로 전 세계가 반도체 패권 경쟁에 본격적으로 뛰어들고 있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은 지난 4월 13일 반도체 칩 부족 사태의 해법을 모색하기 위해 개최한 ‘반도체 화상회의’에서 웨이퍼를 들어 보이며 반도체를 국가 인프라로 규정했다. 중국은 이미 ‘반도체 굴기’를 내세워 정부의 강력한 지원 속에 반도체 기술을 성장시키고 있다. 이런 흐름과 달리 정작 반도체가 기둥 산업인 우리나라의 상황은 자못 심각하다. 우리가 세계 최강을 자랑하는 메모리 반도체는 어느덧 미국에 따라잡히기 일보 직전이다. 그동안 공들인 시스템 반도체는 현실의 벽이 높기만 하다. 정부가 목표로 내세운 ‘2030년 종합 반도체 강국’으로 발돋움하기 위해 지금 무슨 일을 해야 할까. 이종호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전기·정보공학부 교수)은 “패러다임을 바꾸고 기존에 없던 신(新)시장을 창출할 수 있는 탁월한 인재를 키워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소장을 31일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에서 만나 국내 반도체 산업 현황과 초격차 기술 확보 전략에 대해 들었다.

-차량용 반도체가 품귀를 빚으면서 반도체가 세계경제의 핵심 이슈로 떠올랐다. 미국·중국은 물론 유럽까지 반도체 산업 육성을 위해 팔을 걷어붙이고 있는데.

△반도체 패권 경쟁은 사실 오래됐다. 미국에서는 이미 버락 오바마 행정부 시절 대통령 자문위원회가 수십 쪽짜리 보고서를 만들어 중국 견제 필요성을 지적했다. 이 기조는 도널드 트럼프, 조 바이든 행정부를 거치며 그대로 이어지고 있다. 반도체 패권 경쟁이 격화하는 것은 차량용 반도체가 부족할 뿐 아니라 코로나19 상황에서 비대면 수요 등에 맞춰 정보통신기술(ICT)이 더 필요해졌기 때문이다.

-반도체 수요가 더 늘었다는 뜻인가.

△차량용 반도체를 보자. 자동차 한 대를 만들려면 반도체가 수백 개 필요하다. 전기차나 자율주행차에는 2,000개 이상 들어간다. 자동차는 내연기관차에서 전기차를 넘어 자율주행차로 바뀌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코로나19 여파로 ICT 제품의 수요가 늘면서 수익성이 상대적으로 낮은 차량용 반도체 생산이 줄어든 것이 주요 원인이 됐다. 반도체 부품은 다른 부품과 달리 하루아침에 대체할 수 없다. 그 안에는 수많은 공정이 있고 각각의 공정은 저마다 정교하게 통제돼야 한다. 오랜 세월에 걸쳐 최고의 기술이 집약되고 축적돼야 한다. 지금 제아무리 많은 자금을 투자한다고 해도 당장 얼마 뒤에 부품을 만들 수 있는 게 아니다.

-차량용 반도체도 시스템 반도체의 일부다. 시스템 반도체는 왜 중요한가.

△시스템 반도체는 논리 연산과 데이터 처리 등을 주로 수행한다. 컴퓨터의 뇌에 해당하는 중앙처리장치(CPU)가 대표적인 시스템 반도체다. 시스템 반도체가 중요한 것은 산업 전 분야에서 가장 많이 쓰이기 때문이다. 카메라·전화기·냉장고·밥솥 등 거의 모든 전기 제품에 들어간다. 시장 규모로 보면 시스템 반도체가 메모리 반도체의 2배 정도 된다.

-우리나라는 처음부터 메모리 반도체 쪽을 공략했다. 시스템 반도체 쪽을 키우지 않은 이유가 뭔가.

△초창기에는 시스템 반도체를 하려고 했다. 그 예가 손목시계용 집적회로(IC) 칩이다. 같이 시작한 것은 아니지만 두 분야에 모두 씨앗을 뿌렸는데 메모리 쪽은 싹이 잘 트고 시스템은 잘 트지 않았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수율(합격품 비율)이 기업 경쟁력이다. 우리는 정부 지원도 받았지만 야근을 밥 먹듯이 하고 주말 근무도 마다하지 않으면서 수율을 높이기 위해 열심히 일한 결과 외국 기업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었다.

-지금 시스템 반도체 시장을 공략하면 추격이 가능한가.

△반도체 투자를 시작하던 과거와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여건이 훨씬 좋아졌다. 당장 시스템 반도체 분야 인력을 보면 미국·일본·대만에 비해 격차가 있지만 지속적인 인재 양성이 추진되고 있다. 가능성은 충분히 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최강이 된 것처럼 시스템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시스템 반도체는 각각의 제품에 따라 설계도 다르고 집적 공정 레시피가 따로 있다. 이들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축적의 시간’이 필요하다. 세계와의 격차는 줄었지만 작은 차이가 경쟁력 차이를 만들고 시장 지배력을 좌우한다. 세계시장을 주도하기 위해 필요한 것은 자본과 인력이다. 자본 관점에서 보면 대만의 TSMC의 투자 규모가 가장 크다. 투자 규모에서 한국은 두 번째 수준인 만큼 충분히 도전해볼 수 있다. 제일 중요한 것은 인재다. 가장 앞서가는 미국을 보면 시스템 반도체 인력이 엄청나게 많다. 숫자가 많을 뿐 아니라 뛰어난 인재도 많다. 중국의 인력도 워낙 많으니까 그 안에는 뛰어난 인재들이 있다.

-우리나라의 인재는 왜 부족한가.

△반도체 분야에서 능력을 갖추려면 기초 과목을 잘해야 한다. 현재 고교에서 물리I보다 물리II를 선택하는 학생이 훨씬 적다.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에는 물리II를 배운 학생과 배우지 않은 학생이 섞여 있는데 둘의 학력 차이가 크다. 학부 과정에서는 반도체 연구에 필요한 기초 과목을 가르친다. 공학수학·전자기학·확률·통계·컴퓨터기초·프로그램언어 등 배워야 할 과목이 워낙 많아 여기에 반도체 관련 과목을 많이 넣기는 어렵다. 기초가 부족한 학생이 고급 인재로 성장하기는 힘들다.

-정부는 오는 2031년까지 반도체 인력 3만 6,300명을 양성하겠다는 계획을 밝혔다. 반도체 관련 학과 정원 확대로 1,500명을 배출하고 반도체 장비 기업과 연계한 학과 신설로 학사 인력 1만 4,400명을 양성한다는 것이다. 또 석·박사급 전문 인력 7,000명과 실습 인력 1만 3,400명도 키운다. 이 계획을 어떻게 평가하는가.

△실무급에서 석·박사급까지 단계별로 인력을 배출하는 좋은 계획이라고 생각한다. 다만 탁월한 인재를 양성하는 프로그램이 없는 것이 아쉽다.

-어떻게 해야 탁월한 인재를 키울 수 있나.

△탁월한 인재는 기존 패러다임을 바꾸고 신시장을 창출할 수 있어야 한다. 반도체에서 세계시장을 주도하려면 이런 인재가 있어야 한다. 특정 반도체 분야에서 뛰어난 능력을 발휘한 사람이 자기 분야에서 깊이를 더한다면 탁월한 인재가 될 수 있다. 현재 박사 학위까지 받으면 대개 교수가 되거나 기업체로 간다. 이런 길도 좋지만 뛰어난 실력을 보인 박사 졸업생들에게 일정 기간 자기 분야를 더 파고들 수 있는 특별한 ‘박사 후 과정’ 프로그램을 지원해줄 수 있을 것이다.

-다른 방법도 있는가.

△반도체는 회로·소자·공정·장비·설계·아키텍처·운영체제(OS)·테스트 등 여러 분야가 있다. 가령 집적회로 쪽에서 뛰어난 실력을 보인 학생에게 세계 최고의 테스트그룹에 참여해 연구할 기회를 준다면 어떨까. 이렇게 하면 뛰어난 융합형 인재를 만들 수 있다. 기업에서는 소자팀·공정팀·회로팀 등 팀 간 트러블이 있는 경우가 있다. 뛰어난 융합형 인재가 있다면 이런 문제를 바로 해결할 수 있다. 단 융합형 인재를 키울 때는 한 분야에서 탁월한 실력을 보인 경우라는 전제가 있어야 한다. 한 분야도 제대로 하지 못하는 사람이 두 분야를 담당하는 것은 불가능하다.

-시스템 반도체의 정점은 CPU인데 우리가 CPU를 개발하지 않는 이유는 뭔가.

△과거에 코리안 CPU를 만들자는 얘기가 있었다. 일본도 있었다. 그런 게 성공하기 위해서는 CPU 시장을 장악하고 있는 인텔의 아성을 훨씬 넘어서는 수준이어야 한다. 또 시스템 소프트웨어가 잘 돌아가는지, 여러 OS에 잘 맞는지 등 보편성도 따져야 한다. 이런 관문을 통과하는 데는 오랜 시간이 필요하다. CPU 분야에서는 미국이 독보적이다. 중국도 이 점을 인정하고 인공지능(AI) 쪽으로 방향을 잡았다고 생각한다.

-메모리 반도체에서는 우리가 여전히 세계 최강이라고 할 수 있는가.

△D램과 낸드플래시 모두 하향 곡선을 그리기 시작했다. 불길한 징조는 몇 년 전부터 시작됐다. 세계 최강이라고 말하기 쉽지 않은 상황이 됐다. 모든 사람들이 메모리 반도체는 세계 최강이라고 말하는 사이 인력 양성도 등한시하고 국가 예산 배정도 줄였다.

-그래도 현재까지 세계 최강인 것은 맞지 않나.

△메모리 반도체의 양산 기술은 여전히 세계 최강이다. 양산 기술의 핵심은 수율이다. 선행(첨단) 기술에서는 더 이상 1등이 아니다. 메모리 반도체 3위 업체인 미국 마이크론은 지난해 11월 낸드 메모리 셀 소자를 176층까지 쌓아올리는 176단 낸드플래시를 개발했고 올 1월에는 1알파(α) 4세대 D램을 개발했다고 발표했다. 둘 다 세계 최초다. 발표만 놓고 보면 마이크론이 앞서 있다.

-선행 기술에서는 오히려 추격당한 것인가.

△지금이 정말 중요한 시기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최강을 유지하려면 기술 초격차 전략이 필요하다. 탁월한 인재를 확보하는 길밖에는 없다.

-정부는 최근 K반도체 전략을 발표했다. 더불어민주당이 반도체기술특별위원회를 만들어 반도체산업지원특별법을 추진하고 있는데 거기에 어떤 내용이 꼭 들어가야 하는가.

△반도체 기업은 위험 물질을 많이 다룬다. 불산·염산·황산·비소·수소 등 온갖 위험 물질이 다 있다. 기업이 위험 물질을 철두철미하게 관리하는데도 사고는 난다. 이럴 때 가혹한 처벌을 받아 기업 경영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 현행 화학물질의 등록 및 평가 등에 관한 법률(화평법)과 화학물질관리법(화관법)의 규제를 완화한다면 반도체 산업의 경쟁력을 키우는 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He is…

1966년 경남 합천에서 태어나 경북대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서울대에서 석사·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 마이크로시스템 기술랩에서 박사 후 연구원으로 연수했다. 원광대와 경북대를 거쳐 2009년부터 서울대 전기·정보공학부 교수로 재직 중이다. 국가과학기술자문회의 위원으로 활동한 데 이어 현재 서울대 반도체공동연구소장을 맡고 있고 국제전기전자공학회(IEEE) 석학회원이다. 공학한림원 젊은공학인상, 녹조근정훈장, 경암상 등을 수상했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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