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12일 “종부세는 더 신중해야 한다”고 밝히며 여당 내에서 제기되는 종부세 완화론을 정면으로 반박했다. 이 실장의 이 같은 발언은 지난 재보궐선거 참패의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 실패가 지목되면서 당내 의원들의 종부세 상향 의견이 봇물을 이루는 가운데 청와대가 급브레이크를 건 것으로 해석된다. 특히 송영길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전날 재선의원들과의 간담회에서 “청와대의 명령에 당이 따라가는 식은 안 된다”는 입장을 드러낸 직후여서 당청 간 갈등이 본격화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민주당 초선의원들은 또 문재인 대통령이 논란의 장관 후보자 3인에 대한 인사 청문 경과 보고서 채택 시한을 14일로 제시한 것과 관련해 최소 1명이라도 낙마시켜야 한다는 입장을 내놓아 당청 간 충돌 지점이 확산되고 있다.
이 실장은 이날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종합부동산세의 부과 기준선을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 조정하는 것도 검토하고 있느냐’는 질문에 “과세 형평성 측면도 고려해야 한다”고 답했다. 민주당은 4·7 재보선 참패의 가장 큰 원인이 부동산 문제라는 인식 하에 부동산특별위원회를 출범시켜 주택 공급과 금융·세제에 대한 종합적인 재검토에 나선 상황이다. 송 대표 체제 출범 이후 진선미 부동산특위 위원장을 김진표 의원으로 교체하며 당의 무게감을 한층 높이는 등 청와대에 끌려가지 않겠다는 강력한 의지도 드러냈다. 민주당의 이 같은 움직임에 이 실장이 “신중해야 한다”고 하면서 당내 의원들은 격앙된 반응을 보였다. 수도권의 한 재선의원은 “특위 첫날 정책실장이 언론을 통해 명령하듯 발언하는 것은 도의적으로 옳지 않다”면서 “정책실장이 법에 대해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불편함을 감추지 않았다.
초선81명, 장관후보 최소1명 부적격에 靑,기존입장 반복
인사 문제에서도 당청 간 불협화음이 첨예해지고 있다. 민주당 초선의원 81명 전원이 참여하는 ‘더민초’는 이날 간담회를 열어 “장관 후보자 가운데 최소 1명은 부적격으로 청와대에 권고할 것을 지도부에 요구한다”는 입장을 내놓았다. 5선 중진인 이상민 의원도 “민심이 그렇기 때문에 민심을 대변하지 않을 수 없다”며 지명 철회나 자진 사퇴의 필요성을 재차 강조했다. 이에 대해 청와대 고위관계자는 “대통령께서 14일까지 국회에 의견을 요청했다”며 “다양한 의견을 다양한 경로를 통해 수렴할 것”라는 기존 입장을 반복했다.
"감히 정책실장이"…靑에 격앙된 與, 정책 대충돌 조짐
“청와대가 법을 만든답니까? 어디 청와대 정책실장이 국회의원 하는 일에 이래라저래라 하는 건가요. 언제 그런 얘기를 했답니까?” (수도권의 한 재선 의원)
“청와대가 그동안 찍어 눌러 참패했는데 김진표 부동산특별위원회 위원장이 첫 회의도 하기 전에 정책실장이 언론에 나서서 그런 말을 했다는 겁니까?” (충청권의 한 의원)
12일 이호승 청와대 정책실장이 한 라디오 방송에 출연해 “종부세는 더 신중해야 한다”고 밝힌 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청와대가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를 당하고도 민심을 직시하지 못하고 있다며 격앙된 반응을 쏟아냈다. 이 실장의 한마디가 재보선 이후 민주당이 청와대에 가져온 서운한 감정을 폭발시키는 기폭제가 됐다는 해석까지 나왔다.
◇격앙된 민주당 의원=당내에서는 선거 참패 이후 지도부가 총사퇴한 뒤 어렵사리 새 지도부를 꾸려 민심 달래기에 착수했는데 청와대가 정책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며 여전히 ‘당 위에 군림’하려 한다는 불만이 분출했다는 평가도 나왔다. 일각에서는 “터질 게 터졌다”며 “이제 청와대에 할 말은 해야 한다”는 격앙된 반응도 있었다. 특히 재보선 패배의 핵심 원인으로 부동산 정책이 꼽히는 상황에서 당내 부동산특위가 새로 출범해 민심 수습에 나서자마자 청와대가 ‘찬물을 끼얹었다’고 보는 시각이 지배적이었다.
실제 민주당 서울시당이 4·7 재보선 패배 요인을 분석한 집단인터뷰(Focus Group Interview) 보고서에는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이슈와 박원순 전 시장 성 추문 문제 등을 포함해 부동산·한국토지주택공사(LH) 사태가 민주당 지지 이탈의 결정적 원인으로 꼽혔다. 이런 점을 인식해 민주당은 4·7 재보선 참패 직후 부동산특위를 출범시켰고 송영길 대표 체제 이후에는 기존 부동산특위 위원장을 김진표 의원으로 교체해가며 당력을 끌어모아 문제 해결에 나선 상황이었다. 무엇보다 이날 김 위원장이 주재하는 첫 부동산특위 회의를 앞두고 이 실장의 발언이 나오자 청와대가 당 단속에 나선 것이냐는 불만이 터져 나왔다.
◇당청 간 정책 이견 분출할 듯=김 위원장은 이날 첫 부동산특위에서 “투기 수요를 자극하지 않는 한도 내에서 규제를 완화할 필요가 있다”고 규제 완화 가능성을 열어놓았다. 김 위원장은 “1가구 1주택 실수요 거래까지 막는 부작용과 무주택자들의 생애 첫 자기 주택에 따른 부담을 완화시킬 세제상의 문제점을 정교하게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그동안 김 위원장이 줄기차게 다주택자 양도소득세 중과 유예나 한시적 감면 등을 주장한 점을 고려하면 큰 폭의 부동산 정책 전환이 예고되는 상황이다. 지난해 개정된 소득세법에 따라 6개월의 유예 기간이 종료되는 다음 달 1일부터 다주택자의 양도소득세는 기본세율에 20~30%포인트가 추가돼 양도세 최고 세율이 75%까지 대폭 오르게 된다.
김 위원장이 지난해 이낙연 당 대표 시절 다주택자가 집을 팔 수 있도록 양도세 중과 유예나 한시적 감면 등의 퇴로를 열어줘야 한다는 내용의 정책 건의서를 제시하는 등 규제 완화론자라는 점에서 규제 완화에 무게감이 더 크게 실리고 있다. 김 위원장은 이날 특위 회의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서도 “거래에 따른 모든 세금 부담을 검토할 것”이라며 “다만 어느 경우에도 투기 수요를 불러일으키는 방향은 없이 실수요자가 내 집 마련을 할 수 있게 선별해 완화할 것”이라고 부연했다.
종부세 역시 김병욱 민주당 의원이 지난달 1가구 1주택의 경우 종부세 부과 기준을 공시가 9억 원에서 12억 원으로 상향하는 내용의 재산세법을 포함한 종부세 개정안을 대표 발의한 상태다. 이처럼 당내 규제 완화에 대한 공감대가 커지는 상황에서 이 실장이 직접 ‘신중’을 요구하고 나서자 앞으로 당청 간 정책 충돌도 배제하기 어렵다는 전망이 나온다.
◇종부세·재산세 급등에 대한 위기감 확산=민주당은 4·7 재보선 참패 여파가 내년 대선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가장 크게 우려하고 있다. 민주당 수도권 재선 의원은 “부동산 가격 상승으로 실수요자의 내 집 마련 기회는 사라졌고, 가계 수입은 코로나19 상황에서 줄어든 마당에 공시지가 상승에 따른 세금 부담은 커지고 있다”며 “정책 오류가 있다면 인정하고 바로잡아야 내년 대선에 표를 달라고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다른 충청권 의원도 “투기 세력을 잡아내겠다고 갖은 정책을 내놓았지만 가격 상승을 막지도 못한 채 LH 사태가 터졌다”며 “국민 눈높이에서 종부세와 재산세 등 현실화가 필요한 부분은 반드시 정책 변경을 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특히 부동산 정책만큼은 앞으로 당이 중심이 돼야 한다는 당내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다른 한 의원은 “정부 국장급 이상이 한 직무를 맡는데 임기가 평균 1.4년에 그친다”며 “청와대 담당 수석비서관이나 주무 부처 장관도 연속성을 가지지 못한 채 떠나면 그만인 상황이 부동산 정책의 실패 원인”이라고 진단했다. 해당 의원은 “‘공급-국토교통부, 금융-금융위원회, 종부세·양도세-기획재정부, 재산세-행정안전부’식으로 쪼개져 있는 상황도 문제”라며 “앞으로 부동산 정책 전체를 아우르며 종합 대책을 세워가는 데 당의 역할은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고 강조했다.
/송종호 기자 joist1894@sedaily.com, 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 김인엽 기자 inside@sedaily.com, 허세민 기자 semin@sedaily.com, 주재현 기자 joojh@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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