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권 도전 준비에 나선 정세균 전 국무총리가 21일 “부유세가 중산층에까지 확장되면 세목 취지와 어긋난다”며 종합부동산세 완화 찬성 입장을 밝혔다. 종부세는 부유세의 성격을 가지고 있는데 중산층은 부유층이 아니라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정 전 총리는 이날 한 매체와의 인터뷰에서 “(정부가) 그런 부분(종부세가 부유세의 성격을 가졌다는 점 등)을 잘 봐야 하는데 소홀했다”며 이같이 말했다. 그는 “종부세에 대해서는 그동안 ‘옳고 그름’보다는 눈치를 본 것 아니냐는 반성도 할 필요가 있다”고도 했다. 사실상 종부세 부과 대상에 관한 정부 정책이 잘못됐음을 인정한 것이다.
중산층이 종부세 부담을 안게 된 것은 정 전 총리가 관여했던 정부의 공시지가 현실화 정책의 결과다. 이에 일각에서는 그가 대권 도전을 앞두고 여당 안팎의 여론을 의식해 입장을 바꾼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그는 총리 재직 중에는 중산층의 종부세 부담과 관련해 정반대 생각을 드러냈다. 앞서 정 전 총리는 지난달 19일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종합정책질의에서 2030년까지 부동산 공시가격을 시세의 90%로 높인다는 정부 계획을 두고 “일관된 목표를 가지고 계속해서 추진해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당시 조해진 국민의힘 의원이 ‘공시가격 현실화와 집값 상승으로 세금 폭탄 사태가 벌어지고 있다’고 하자 “세금 폭탄이라는 말은 적절하지 않다”고 답하기도 했다. 정 전 총리는 해당 계획 발표 전 당정청 논의에 직접 참여한 바 있다.
이날 인터뷰를 통해 정 전 총리는 대출 규제를 풀어야 한다는 입장도 밝혔다. 그는 “대출 규제를 강화했던 것은 부동산 가격이 너무 올라 어쩔 수 없던 측면이 있었다”며 “여건이 조성되면 (대출 규제를) 정상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면서 “투기꾼을 잡으려다가 실수요자까지 잡는 상황이 된다면 그것도 제도의 취지와 맞지 않는다”며 “때가 되면 합리화를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정 전 총리의 이 같은 주장은 최근 여당에서 나오는 목소리와 궤를 같이한다. 더불어민주당 의원들은 4·7 재보궐선거에서 참패한 후 부동산 대출 규제를 완화하자는 취지의 발언을 연이어 내놓고 있다. 이에 정치권에서는 민주당이 대선을 약 1년 앞두고 돌아선 부동산 민심을 돌리기 위해 선심성 정책을 약속하는 것 아니냐는 비판도 제기되는 상황이다. 정 전 총리가 입장을 선회한 것이 이러한 당내 분위기를 고려한 결과라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앞서 김병욱 민주당 의원은 전날(20일) 종부세와 재산세의 대상과 적용 범위 등을 대폭 완화하는 내용을 담은 종부세법·재산세법 개정안을 대표발의했다. 같은 날 홍익표 정책위의장도 한 라디오 방송에서 “장기 무주택자와 신혼부부 세대를 대상으로 주택담보인정비율(LTV)을 다소 유연하게 해주자는 공감대가 있다”고 말했다.
당권 주자인 송영길 의원도 “최초로 자기 집을 갖는 분양 무주택자에게는 LTV와 총부채상환비율(DTI)을 90%씩 확 풀어야 한다”고 했다. 홍영표 의원 역시 “생애 처음 구입하는 주택에 대한 대출 규제 같은 것들은 현실에 맞게 해야 한다”고 주장한 바 있다.
/이희조 기자 lov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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