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이브러햄 링컨의 정당인 미국 공화당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됐는지 그저 의아할 뿐이다.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의 처형을 요구하고 9·11 테러 음모론을 제기하는가 하면 유대인들로 구성된 비밀 집단이 레이저를 사용해 캘리포니아 산불을 일으켰다는 등의 허황한 주장을 일삼아온 마조리 테일러 그린이 공화당 하원의원으로 버젓이 의회에 진출했으니 더 이상 할 말이 없다.
도대체 어찌 된 일일까. 대답은 간단하다. 당 지도부가 극단주의자들을 수용했기 때문이다. 최근 공화당 하원 의원 총회는 그린 의원에 대한 민주당의 징계 요구를 일축했다. 공화당 하원 원내대표인 케빈 매카시는 그린 의원이 신봉하는 극우 음모론 단체 ‘큐어넌(QAnon)’의 존재조차 알지 못한다며 시치미를 뗐다.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인 미치 매코널은 최근 그린의 음모론적 견해를 “황당하다”고 비판하는 등 당내 극우 세력과의 거리 두기에 나섰다. 그러나 그의 발언은 수위도 낮았고 타이밍도 놓쳤다. 공화당은 지난 수년 동안 ‘황당한 견해’를 부추겼다. 오늘날 우리는 밋 롬니 공화당 상원의원의 정치적 용기에 칭찬과 박수를 보낸다. 그러나 그에게도 흑역사가 있다. 지난 2012년 대통령 선거에 출마할 당시 그는 도널드 트럼프의 지지를 간절히 원했다. 어렵사리 트럼프의 지지를 확보한 롬니는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 벌어졌다”며 자신이 벌였던 물밑 작업을 덮었다. 같은 해 선거를 앞두고 트럼프가 버락 오바마 민주당 대선 후보의 출생지와 관련한 거짓 정보를 퍼뜨렸을 때도 롬니는 “내게 출생증명서를 보여달라고 요구하는 사람은 단 한 명도 없다”며 트럼프가 제기한 졸렬한 ‘버서리즘(오바마 전 대통령이 미 시민권자가 아니라고 주장하는 음모론)’에 슬며시 편승했다.
현대로 접어든 후 공화당이 습관적으로 내뱉은 진짜 큰 거짓말은 음모론이 아니다. 지난 수십 년간 공화당이 제시한 공공 정책의 핵심내용은 거의 모두 거짓말이었다. 1930년대부터 공화당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뉴딜 정책을 폐기하겠다고 공언했다. 그러나 루스벨트의 후임자로 선출된 공화당의 드와이트 아이젠하워는 뉴딜 정책에 전혀 제동을 걸지 않았고 이에 대한 반발로 현대적인 의미의 보수주의 운동이 시작됐다.
이어 린든 존슨 대통령이 “위대한 사회”를 선포하며 ‘빈곤과의 전쟁’에 나서자 보수주의자들은 백악관을 탈환할 경우 존슨의 정책을 갈가리 찢어버리겠노라 으름장을 놓았지만 이 역시 빈말로 끝났다.
로널드 레이건은 메디케어를 “사회주의로 가는 첩경”이라고 비난하는 것으로 정계 입문의 출사표로 삼았다. 그는 메디케어 법안이 그대로 통과될 경우 “우리는 우리의 자녀들과 그들의 후손에게 미국도 한때 자유민주주의의 나라였다는 옛날얘기를 들려주며 황혼기를 보내게 될 것”이라고 경고했다. 물론 레이건은 8년간 재임하며 단 한 번도 메디케어에 손을 대지 않았다.
1990년대 초 하원의장을 지낸 뉴트 깅그리치는 급진주의와 극단주의 수사를 한층 강화했다. 그는 혁명을 약속했고 자신의 반대편에 선 정치인들을 거짓말과 부정을 통해 선출된 사악한 정치 모리배로 매도했다. 칼럼니스트 디온 주니어는 깅그리치가 구사한 이 같은 전략의 유독한 결과물을 “실망과 배반의 정치”로 묘사했다.
공화당의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은 깅그리치의 전략을 그대로 답습한다. 2016년 대통령 선거 공화당 예비 경선에 후보로 나선 그는 오바마케어 폐기, 국세청(IRS) 폐쇄, 균형 예산 의무화를 주요 공약으로 내걸었다. 이들 모두가 실현 불가능한 공약임을 알고 있었지만 자신의 지지 기반인 극우 세력이 덥석 받아먹을 싱싱한 날고기라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그는 지지자들의 집단적 히스테리를 유발한 후 이들을 총알받이로 선거판에 투입했다.
공화당은 오바마케어의 “폐기와 대체”를 수도 없이 외쳤지만 막상 집권당이 된 후에는 아무런 계획도 내놓지 못했고 확실하게 뒤집어엎겠다던 현실에 재빨리 안주하는 모습을 연출했다. 이 같은 전략은 수백만 명의 공화당 유권자들로 하여금 당 지도부를 불신하게 만들었고 극단주의 성향을 보이지 않는 정치인들을 무조건 의심하는 분위기를 조성했다. 이렇게 보면 깅그리치 혁명과 1월 6일의 의사당 난입 사태는 짧은 일직선 위에 놓여 있다.
포퓰리즘과 민족주의 정서를 동시에 어루만질 줄 아는 보수주의 지도자로 첫손가락에 꼽히는 인물은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다. 존슨은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초기 대응에 실수를 저질렀지만 지금은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에 진지하게 대처하면서 마거릿 대처 이후 가장 영향력 있는 보수주의 정치인으로 떠오르고 있다. 존슨 총리는 서서히 그러나 확실하게 그가 이끄는 보수당을 현대의 영국과 양립 가능한 정당으로 만들어가고 있다. 존슨 총리의 각료들 중 아시아계가 3개의 최고 요직 가운데 2개를 차지하는 등 그의 내각은 눈에 뜨일 만큼 다양한 인종적 구성을 갖추고 있다.
팬데믹과 관련한 대규모 지출안을 발표하면서 존슨 총리는 “경기 부양안이 뉴딜 정책처럼 보이고, 뉴딜 정책처럼 들린다면 그건 실제로 그렇게 보이고 들리도록 짜여졌기 때문”이라며 “이는 시대적 요구이기도 하다”라고 덧붙였다. 존슨 총리는 이어 “위기의 시간에 국민들의 어깨를 감싸주는 강력하고 결의에 찬 정부야말로 이 시대가 요구하는 정부”라고 강조했다.
존슨 총리는 자신이 혁신적인 아이디어에 효율적인 정부, 자유 무역, 도덕에 기반한 외교정책 등 보다 전통적인 대처주의 아이디어를 접목시켰다. 그는 “불필요한 형식과 절차를 과감히 털어내고 오늘날 영국을 짓누르는 규제를 철폐함으로써 보다 나은 미래, 보다 푸른 청정 국가를 만들 것”이라며 “우리는 이 같은 목표를 매우 신속하게 달성할 것”이라고 선언했다.
만약 현대사회에 걸맞은 보수주의를 찾고 싶다면 공화당이 우선적으로 해야 할 일은 그들을 지지하는 유권자들에게 더 이상의 거짓말을 하지 않는 것이다. 이와 동시에 공화당은 그들의 정당을 사실(facts)과 현실(reality)의 세계로 인도하는 영국 보수당의 예를 꼼꼼히 살펴봐야 할 것이다.
/여론독자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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