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인이 사건’을 마주했던 경찰과 아동보호전문기관(아보전)의 안일한 인식이 당시 이들이 작성한 양부모 평가에도 고스란히 드러났다. 신고를 받고 현장에 나간 이들은 양부모에 대해 ‘개선 의지가 있다’, ‘학대 행위에 대해 정당화를 시도하지 않는다’ 등의 평가를 내렸다.
신고 현장에 나간 아보전과 경찰은 학대 위험도를 판단하는데 이 과정에서 평가 척도를 활용한다. 앞서 정인이를 대상으로 작성된 평가 척도가 학대 위험을 과소평가해 논란이 됐는데 양부모를 평가한 내용이 이번에 추가로 드러났다.
17일 서울경제신문이 국민의힘 강기윤 의원실을 통해 입수한 자료에 따르면 아보전과 경찰은 지난 3차례의 학대 신고 직후 이뤄진 조사에서 양부모를 대상으로 3번의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 척도’를 작성한 것으로 확인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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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개월 영아 죽음 내몬 부모가 1점?
신고를 받은 아보전과 경찰은 현장에 나가 실제 아동 학대의 심각성을 살핀다. 이 판단에 따라 분리 조치, 보호 시설 이송, 정식 수사 전환 여부 등 후속 조치도 결정된다. 이 과정에서 특히 중요한 판단 기준으로 작용하는 것이 아동학대 위험도 평가 척도다. 아동과 학대 행위자 모두를 대상으로 작성되는데 앞서 정인이를 대상으로 한 것은 밝혀졌지만 양부모 대상 평가는 공개되지 않았다.
9개로 문항으로 이뤄진 아동 대상 척도와 달리 학대 행위자용은 총 10개 문항으로 이뤄져 있다. ‘학대 행위자가 아동을 방치하고 있는지’, ‘학대에 대한 그릇된 인식을 가졌는지’, ‘아보전 등의 개입에 저항하는지’을 묻는 항목 등이 포함된다. 여기서 5점 이상 항목에 해당하면 아동을 학대 행위자로부터 분리하도록 권고되는데 양부모의 경우 3차례의 조사에서 각각 1·2·2점으로 평가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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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차례 모두 양부모 ‘개선의지 있다’ 판단
당시 평가 내용을 뜯어보면 3차례 신고에도 내사 종결하거나 정식 수사로 전환하지 않았던 경찰과 아보전의 안일한 인식과 조사 행태가 고스란히 드러난다. 이들은 3번의 조사 모두에서 ‘학대 행위자가 학대 행위의 개선에 대해 노력하려는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는 문항에 ‘아니오’라고 표시했다.
2차 신고는 1차 신고 조사가 마무리된 지 채 한달도 지나지 않아 접수됐다. 3차 신고 역시 2차 신고의 후속조치 격으로 아보전이 양부모에 요청한 상담 등 사후 모니터링에 이들이 적극성을 보이지 않던 중에 이뤄졌다. 양부모 측은 3차 신고 당일까지도 공동 육아,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을 핑계로 아보전과의 상담을 차일피일 미뤄왔던 것이다. 3번 연속 ‘개선 의지가 있었다’는 평가에 물음표가 붙는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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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대 숨기려 던 양부모...척도엔 “정당화 안해”
아울러 ‘학대 행위자가 학대 행위를 정당화하느냐’는 취지의 항목에도 모두 ‘아니오’라고 기재했다. 평가와 달리 양부모는 멍, 쇄골에 난 실금 등을 마사지 때문이라거나 아동이 엎드려 자는 과정에서 생긴 것이라고 반박했다. 2차 신고 당시 아동을 차량에 방치한 것 아니냐는 추궁에도 ‘아이가 혼자 잠을 자는 습관을 들이기 위한 수면 교육 차원’이라고 대답해 혐의를 벗어났음이 앞서 드러났다. 이외에도 경찰과 아보전은 ‘학대 및 체벌에 대해 그릇된 인식을 갖고 있는지’ 등을 포함해 10개 중 8개 항목이 양부모와 관련이 없다고 판단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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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실 동떨어진 척도...실효성 논란
이렇다 보니 척도의 실효성을 지적하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아동학대의 특성을 고려하지 못한 순진한 문항이 대부분인데다 일부 문항은 추상적이어서 평가 척도로서 부적절하다는 것이다. 공혜정 대한아동학대방지협회 대표는 “학대로 판정되면 벌을 받는데 조사하러 온 사람 앞에서 누가 자기가 학대를 했다고 순순히 말을 하겠느냐. 게다가 학대를 저지르면서도 학대라고 인식하지 않는 부모들도 얼마나 많은데 문항이 다 현실성 떨어진다”며 “현장의 상황을 잘 아는 현장 전문가, 범죄심리학자 등의 의견을 반영해서 척도를 완전히 새로 뜯어고쳐야 또 다른 정인이를 막을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수정 경기대 범죄심리학과 교수는 “체크리스트는 현장에서 관찰한 것을 토대로 작성되는데 현장에서 판단하기 어려운 문항들이 상당수”라며 “아동학대의 특성을 전혀 고려하지 못한 체크리스트”라고 비판했다. 이어 “조치를 위한 최소 점수인 5점도 무엇이 기준인지 알 수가 없다. 너무 높게 설정돼 있다”고 덧붙였다. /허진기자 hjin@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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