러시아 국내선 여객기에서 중독 증세로 쓰러진 후 독일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러시아의 야권 운동가 알렉세이 나발니가 자국 당국이 사건 당시 자신이 입고 있었던 옷을 가져갔다며 이를 돌려 달라고 요구했다. 옷에 자신이 중독된 것으로 알려진 독극물 ‘노비촉’이 묻어 있을 수 있어 중요한 증거물이 될 수 있다는 이유에서다.
21일(현지시간) 타스통신에 따르면 나발니는 이날 자신의 블로그에 올린 글에서 “나의 지금 관심사는 중독된 날인 지난달 20일 입고 있었던 바로 그 옷”이라며 “(러시아 수사당국에 할당된) 30일간의 사전 조사 기간이 이 중요한 증거를 숨기는 데 이용됐다”고 주장했다. 그는 “(러시아 당국이) 나를 독일로 보내도록 허가하기 전에 내게서 모든 옷을 벗겨 낸 후 나를 완전히 벌거벗은 상태로 (독일로) 보냈다”면서 “내 몸에서 ‘노비촉이 발견됐고, 접촉 감염이 아주 유력한 점을 고려할 때 옷은 아주 중요한 물건”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수사당국을 향해 “내 옷을 조심스럽게 비닐봉지에 포장해서 내게 돌려 달라고 요구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나발니의 요구와 관련, 나발니를 처음으로 치료했던 시베리아 옴스크주 보건부는 “나발니가 처음 입원했던 옴스크 제1응급병원에는 나발니의 옷이 없으며 수사당국이 그것을 거둬 갔다”고 전했다.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의 대표적인 정적으로 꼽히는 나발니는 지난달 20일 시베리아에서 모스크바로 향하던 러시아 국내선 여객기에서 갑자기 쓰러져 혼수상태에 빠졌다. 사건 직후 시베리아 도시 옴스크 병원에서 치료를 받던 나발니는 이틀 뒤 독일 시민단체의 도움으로 받아 베를린의 샤리테 병원으로 이송됐다. 지난 7일 나발니는 의식불명 상태에서 깨어난 것으로 전해졌고, 자가호흡할 수 있다는 소식을 자신의 인스타그램을 통해 알리며 근황을 알렸다. 특히 지난 19일엔 혼자 계단을 내려오는 사진을 올리며 몸 상태가 상당히 호전됐다고 밝혔다.
나발니를 치료하고 있는 샤리테 병원 측은 그가 노비촉에 피습됐다고 주장했다. 노비촉은 구소련이 군사 목적으로 만든 화학무기로 신경세포 간 소통에 지장을 줘 호흡 정지, 심장마비, 장기손상 등을 초래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독일 정부 역시 지난 2일 연방군 연구시설의 검사 결과 나발니가 노비촉에 노출됐다는 “의심의 여지가 없는 증거”가 나왔다고 밝혔으며 이어 프랑스와 스웨덴의 연구소에서도 나발니의 노비촉 중독을 확인했다. 사실상 이번 공격의 배후에 러시아가 있다고 간주하는 미국과 유럽연합(EU) 등은 러시아에 나발니 사건의 진상을 신속하게 밝혀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러시아 측은 여전히 의혹과 무관하다는 입장이다. 처음으로 나발니를 치료한 시베리아 옴스크 병원과 당국은 나발니에게서 독극물 흔적이 발견되지 않았다는 견해를 고수하고 있다.
한편 나발니 측은 이날 “법률로 정해진 30일간의 사전 조사 기간이 종료됐다”면서 수사 당국이 형사사건으로 정식 수사를 개시할지 말지를 결정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이에 러시아 내무부(경찰청) 시베리아 지역 교통국은 “사전 조사 기간에 약 200명의 관련자를 조사했다”면서 “지금도 사전 조사가 계속되고 있다”고 밝혔다.
/곽윤아기자 o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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