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일 문재인 정부가 열여덟 번째 부동산대책을 발표했다. 이번 대책은 이제까지 발표된 정책 중 가장 강도가 센 것이라고 한다. 서울 대부분 지역을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대상으로 지정했고, 서울 등 이른바 ‘투기지역’ 내 시가 15억원 초과 아파트를 구입하기 위한 주택담보대출을 전면 금지했다. 그러나 시장 반응은 긍정적이지 않다. 분양가상한제 지역의 확대로 주택 공급이 줄어들 것이고, 시세보다 낮은 청약제도의 매력이 커져 아파트 분양시장은 더 뜨거워질 것으로 전망된다. 이에 더해 15억원 이상 아파트에 대한 대출 전면 금지로 서울 강남 고가 아파트는 현금부자들의 먹잇감이 될 것이다.
최근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마치 한국전쟁 당시 ‘백마고지’를 점령하기 위해 국군과 중공군이 치열한 전투를 벌이는 상황을 연상하게 한다. 부동산은 국민 거의 모두가 참여하는 시장이기 때문에 시장원리에 입각해 신중하면서도 점진적 접근이 필요하다. 그러나 정부는 이를 군사 공격의 대상으로 삼고 무차별적이고 급진적인 정책을 남발하고 있다. 그 결과 지금까지 수많은 정책에도 서울 아파트값은 지난 2년반 동안 45%나 상승했다. 반면 지방 아파트는 미분양과 깡통전세가 속출하는 등 주택시장의 양극화 현상은 갈수록 심화되고 있다. 이유는 부동산 정책이 정부 개입으로 시장원리에 반하기 때문이다.
아파트 분양가상한제가 대표적 예다. 정부가 인위적으로 아파트 분양가를 규제하니 시세차익을 노리는 가수요가 생겨 서울지역 청약경쟁률은 평균 18대1에서 61대1로 급등하는 청약 광풍이 불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주변의 기존 아파트 가격 상승을 불러오고 있다. 또 낮은 분양가로 인해 아파트 건설 유인과 재건축 사업의 경제성이 낮아져 공급이 줄어들 것이라는 전망 역시 아파트 가격의 상승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결국 정부의 가격규제 정책이 아파트 가격을 올리는 촉매제가 되는 것이다. 최근 교육부의 자율형사립고 및 외국어고 폐지 정책도 강남 8학군의 집값을 부추기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은 노무현 정부의 실패를 그대로 답습하고 있는 것 같아 안타깝다. 가격이 오르면 공급을 늘리는 정책을 펼쳐야 가격이 안정된다는 것은 상식이다. 15억원 초과 아파트에 대한 주택담보대출 전면 금지 조치 역시 지나친 재산권 침해라는 이유로 위헌소송이 제기돼 있고 또 이는 15억원 미만 아파트 가격을 부추기고 전세대란을 일으킬 가능성이 크다. 부동산 시장에 대한 규제 중심의 정책 남발은 건설경기를 침체시켜 경기 부진과 일자리 부족 현상을 가속화하는 요인이 될 것이다.
이러한 부동산 정책의 난맥상은 정부의 무리한 개입으로 첫 단추를 잘못 끼웠기 때문이다. 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 단추를 모두 풀고 시장원리에 따라 첫 단추부터 다시 잠가야 할 것이다. 모든 정책을 다 바꾸기 어렵다면 적어도 아파트 분양가 규제정책만이라도 철폐해야 한다. 그리고 주택담보대출 전면 금지와 같은 급진적 정책 역시 속도를 늦춰야 할 것이다. 정책수정 과정에 이념지향적 인사보다는 부동산 시장의 생리를 잘 아는 현장 전문가 의견을 경청하는 새로운 관행을 만들어갈 것을 건의한다.
필자는 2003년 노무현 정부의 규제 중심 부동산 정책을 지켜보면서 ‘시장을 이길 정부는 없다’를 출간한 바 있다. 그 책에서 노련한 서퍼가 파도를 타듯 정부가 시장원리를 잘 활용해 부동산 정책을 관리해나갈 것을 제언했다. 노무현 정부의 전철을 그대로 밟고 있는 문재인 정부에게도 시장친화적 방향으로 부동산 정책의 궤도 수정을 권고한다. 시장에서 가격은 모든 정보가 종합적으로 반영된 결과이기 때문에 정부가 인위적으로 가격을 결정하려는 시도는 필연적으로 실패한다는 것이 경제학의 기본상식이다. 경제는 급격한 충격을 싫어하기 때문에 경제정책은 과격한 변화보다는 미세조정의 형태로 추진해야 부작용이 최소화되고 소기의 목적을 달성할 수 있다는 사실 역시 정책 당국이 잊지 말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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