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달 들어 미국에서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이 잇따라 발생하면서 경기 침체를 우려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일반적으로 만기가 긴 장기물의 금리는 채무상환의 불확실성이 크기 때문에 단기물에 비해 금리가 높게 형성된다. 장기물과 단기물 간의 금리 차인 스프레드가 좁혀진 뒤 역전된다는 것은 단기물보다 장기물에 대한 수요가 그만큼 더 많다는 뜻으로 미래 경제에 대한 불안감이 커졌음을 나타낸다. 지금 당장은 경기가 좋더라도 앞으로 경기가 침체하면서 금리가 내려갈 것이라는 인식이 시장에 퍼져 장기물 금리가 낮게 형성되는 것이다.
경기 침체를 예상하는 쪽이 내세우는 근거는 과거 사례다. 1978년 이후 장단기 금리 역전 현상은 5차례 있었고 그때마다 경기는 침체로 돌아섰다는 것이다. 금리 역전 현상과 경기 침체의 연관성을 밝힌 아투로 에스트렐라 미국 렌셀러폴리테크닉대 교수는 미국이 경기 침체에 빠질 가능성을 매우 높게 봤다. 그는 “과거 장단기 금리가 역전될 때는 모두 경기 침체가 발생했다”며 “내년 하반기부터 미국 경기가 침체에 빠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이에 대한 반론의 대표주자는 재닛 옐런 전 연방준비제도(Fed·연준) 의장이다. 그는 “역사적으로 금리 역전은 경기 침체의 신호였지만 이번에는 아닐 수 있다”고 지적했다. 그는 “연준이 기준금리를 낮출 것이라는 예상이 장기물 금리를 내리는 것 외에 다른 여러 요소가 있다”고 밝혔다. 즉 저금리 현상이 지속하면서 장단기물 간의 스프레드가 워낙 축소돼 있어 일시적인 발행량 증가나 중앙은행의 완화적 통화정책 기대만으로도 금리 역전을 일으킬 수 있다는 설명이다.
당연한 듯한 얘기지만 이에 대한 시장의 평가는 다르다. 옐런이 그렇게 얘기한 것은 모두가 경기를 나쁘게 얘기하면 진짜 경기가 나빠질 것을 우려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박종연 IBK연금보험 증권운용부장은 “경기 전망은 일기예보와 다르다”며 옐런의 발언에는 의도가 있다고 본다. “날씨는 예보를 어떻게 하더라도 바뀌지 않지만 경기는 모두가 비관적으로 내다보면 실제로 비관적으로 흐른다”며 “시장의 과도한 우려를 경계한 발언”이라고 평가했다.
일부 전문가는 과거와 비교할 때 장단기 금리가 역전된 것은 같지만 역전된 배경과 원인이 다르다며 경기 침체 신호가 아닐 수 있다고 지적한다. 과거에는 경기 호황 국면의 끝자락에서 중앙은행이 과열된 경기를 진정시키기 위해 단기 금리를 급격하게 올리는 과정에서 금리가 역전됐는데 이번에는 단기 금리는 크게 움직이지 않는 상황에서 장기 금리가 많이 내려 역전됐다는 것이다. 하지만 이들 역시 “경기 침체 신호가 아니다”라고 확언하지는 못한다. 같은 논리를 주장하는 이주열 한국은행 총재 역시 최근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현안보고에서 “이른바 ‘R(Recession·경기침체)의 공포’가 근거 없는 것이냐는 질의에 “근거가 없는 것은 아니다. 전문기관 예측에 따르면 미국의 경기침체 가능성은 30%”라고 말했다.
결국 장단기 금리 역전에 대한 시장의 대체적인 진단은 ‘경기 침체 신호가 맞는 만큼 대비해야 된다’로 요약된다. 김학균 신영증권 리서치센터장처럼 경기 침체라는 단어를 쓰기 조심스러워 하는 전문가도 최소한 “악재 또는 나쁜 신호”로 받아들이며 “장기 성장 잠재력 훼손에 대한 우려가 크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장단기 금리는 어떻게 하다 역전까지 됐을까. 세계에서 유일하게 경기가 살아 있는 곳이 미국이라는데 경기 침체 신호가 나온 이유가 뭘까. 세계는 연결돼 있다. 제아무리 미국이라고 혼자만 잘나갈 수는 없다. 일본과 유럽 일부 국가의 장기금리가 이미 마이너스까지 진행된 상황에서 미국의 장기금리가 내려가는 것은 당연하다. 보다 더 근본적으로는 미국도 경기가 꺾였고 꺾인 경기가 금리에 반영됐다. 지난 2004년 6월 미 연준은 기준금리를 1.00%에서 2005년 9월 3.75%까지 2.75%포인트 인상했다. 이 기간 미 국채 10년 금리는 4.465%에서 4.241%로 0.224%포인트 내렸다. 기준금리를 올리는데 장기물 금리가 반대로 내리는 이유에 대해 미 의회가 앨런 그린스펀 당시 연준 의장에 묻자 그는 “나도 모르겠다”고 대답했다. 시장에서는 중국 등 아시아 국가가 대규모 경상수지 흑자를 냈고 이렇게 해서 쌓인 외환보유액으로 미 장기물을 매입한 영향이 크다고 봤다. 박종연 부장은 “물론 이 영향도 무시할 수는 없지만 보다 더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고 분석한다. 그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경기선행지수를 보면 미국과 글로벌 지수가 비슷한 기간 모두 하락했다”며 경기둔화를 장기물 금리를 끌어 내린 근본 원인으로 꼽았다. 이번에도 비슷하다. 미국은 미공급자관리협회(ISM) 제조업지수, 건축허가 등 선행지수가 이미 꺾였다. 우리가 모르는 대단한 이유가 있는 것이 아니라 꺾인 경기가 금리 역전을 만들어낸 것이다.
경기 침체는 모든 사람에게 고통을 준다. 이를 회피하는 방법은 없을까. 가장 쉽게 생각해볼 수 있는 게 기준금리 인하다. 장기물 금리가 내려 장단기 금리가 역전됐다면 단기 금리를 인하해 역전 상태를 해소할 수 있지 않을까. 시장에서는 연준의 금리 인하 조치가 당연하며 시급하다고 본다. 도널드 트럼프 미 대통령 같은 사람은 제롬 파월 연준 의장을 ‘멍청이’라고 부를 정도로 비난하며 단기간에 1%포인트는 내려야 한다고까지 주장했다. 하지만 정작 키를 쥔 파월 의장의 생각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파월 의장이 기준금리의 공격적 인하를 시사하면 시장은 비록 경제 불안감은 있지만 이를 압도할 정도로 기준금리가 내릴 테니까 경기 침체까지는 가지 않을 것이라고 받아들일 수 있다. 그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24일 열린 잭슨홀 미팅에서 파월 의장은 미국 경제가 “좋은 위치에 있다”며 “연준은 적절한 조치를 취할 것”이라고 밝혔다. 추가 금리 인하 여부에 대한 아무런 단서를 주지 않았다. 지난달 말 연준이 기준금리를 인하할 때도 경제가 불안해서가 아니었다. 경기는 나쁘지 않는데 보험 성격으로 찔끔 내린 것이었다. 연준의 연방공개시장위원회(FOMC) 의사록에 따르면 7월 금리 인하는 추가 금리 인하를 위한 사전 설정 과정이 아니며 중간 사이클의 조정 수준이다.
시장에서는 그가 이런 자세를 보인 배경에 트럼프 대통령이 있다고 생각한다. 지난달 말 연준이 기준금리를 내린 바로 다음날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에 관세 10%를 매겼다. 어떻게 보면 미중 무역전쟁의 총알로 통화정책을 쓴 셈이다. 앞으로 경기가 나빠진다면 그것은 금리가 높기 때문이 아니라 미중 무역전쟁 탓이 크다. 현재 기준금리는 2.00~2.25%에 불과하다. 미중 무역전쟁으로 인해 기준금리 인하 효과가 반감된다면 실탄만 낭비하는 꼴이 되는 셈이다.
연준이 시장이 원하는 만큼 기준금리를 훌쩍 내리지 않는다고 가정할 때 경기 침체가 올 가능성은 더욱 높아진다. 독일·덴마크 등 일부 유럽 국가의 금리는 마이너스로 진입한 지 오래며 일본 금리도 마이너스 상태다. 금리가 마이너스라는 것은 경제가 장기적으로 수축한다는 것을 뜻한다. 이렇듯 미국·유럽·일본 등 세계 경제가 침체로 방향을 틀면 외부 영향을 훨씬 더 받는 한국 경제는 두말할 나위가 없다.
우리나라도 이미 장단기 금리 역전이 이뤄졌다. 한은에 따르면 우리나라 장단기 금리는 4월부터 역전됐고 역전폭도 계속 벌어지고 있다. 미국에서는 통상 국채 10년물과 2년물 금리를 비교하는 것과 달리 우리나라에서는 국고채 3년물과 통화안정증권 91일물 금리를 비교한다. 한은은 3년물 금리에서 91일물 금리를 뺀 수치가 4월 말 -0.04%포인트에서 6월 말 -0.09%포인트로 커졌고 이달 16일에는 -0.20%포인트까지 확대됐다고 분석했다. 국고채 3년물의 경우 금리가 0%대 진입을 눈앞에 두고 있다. 금리가 0%대로 내려간다는 것은 돈에 대한 수요가 없음을 뜻한다. 소비 수요는 크게 변할 수 없다. 변동성을 만드는 것은 기업 투자 수요인데 이게 0%를 향해 날개 없는 추락을 하고 있는 것이다.
사실 우리는 장단기 금리 역전이 아니더라도 경기 둔화를 가리키는 빨간 불이 켜진 지 오래됐다. 경제성장률은 1·4분기 -0.4%로 뒷걸음질하는 등 올해 1%대로 주저앉을 태세며 한국 경제를 이끌어온 수출은 지난해 12월 이후 9개월째 마이너스 행진이 확실시된다. 투자와 소비도 살아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침체를 회피하는 근본적인 방법은 기업 투자를 살리는 것이다. 기업 투자가 살아나려면 기업이 투자할 환경을 조성해줘야 한다. 기업이 원하는 첫번째 투자 환경은 국가가 덜 간섭하는 것이다. 김학균 센터장은 “정책은 돈이 갈 수 있는 길을 만들어주는 것”이라며 “지금은 비상시국인 만큼 정부가 규제 완화에 따른 리스크를 감수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한기석 논설위원 hanks@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