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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순 민사 소액사건만 담당…유명무실한 '원로법관'제도

서울 등 수도권에만 지원 몰리고

경륜·연봉에 비해 업무수준 낮아

4~5년 뒤 퇴임 후 개업도 가능

전관예우 방지도 역부족 지적

일선 법원장 같은 고위 법관들이 변호사 개업을 통해 전관예우를 받는 폐해를 없애기 위해 도입한 ‘원로법관’ 제도가 정작 이들의 경륜과 노하우를 발휘하지 못하는 허드레 수준의 직무를 담당하고 있어 도입 취지가 무색하다는 비판이 나오고 있다.

특히 원로법관들은 소외된 지방 지역에서의 근무 보다는 서울 등 수도권 지역에 남고 싶은 희망자들이 많아 현실적으로 배정할 재판부 자리가 마땅치 않아 사실상 원로법관 제도가 무용지물이라는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29일 대법원 등 법조계에 따르면 현재 원로법관으로 재직하고 있는 판사는 총 11명이다. 그 가운데 5명이 서울중앙지법에서 민사단독 소액사건을 맡고 있다. 사건 당사자들과 직접 접촉하는 빈도가 높은 1심 재판을 경험 많은 원로법관들에게 맡겨 대국민 재판 만족도를 높이겠다는 의도다. 하지만 소송가액 3,000만원 이하의 민사사건의 경우 사건 의뢰인 보다는 변호인과 직접 이야기하거나 서류상 심리를 통해 판결을 확정하는 게 현실이다. 이들 민사사건은 초임 판사가 담당하는 레벨로 원로법관은 경륜을 살리기 터무니 없는 업무를 맡아 불만을 토로하고 민원인들은 원로법관을 대면하기도 힘든 지경이다. 재경지역 한 원로법관은 “그동안 나름 어렵고 복잡한 사건도 다뤄봤고 반복적인 심리로 전문성이 쌓인 분야가 따로 있는데 단순 민사단독 사건만 하다보니 원로법관 도입 취지가 많이 떨어진다는 생각이 든다”며 “이 연봉을 받아도 되는지 민망할 정도의 업무를 하는 것 같고 업무 자체가 단순 사건이라 기계적인 판단이 많다”고 꼬집었다.

당초 최우선 목표였던 전관예우를 막기에도 역부족이란 지적도 많다. 원로법관에 지명되더라도 길어야 4~5년 더 근무할뿐 결국 법원을 떠나면 변호사 개업을 할 수 있기 때문이다. 특허법원장을 역임한 강영호 서울중앙지법 원로법관은 지난달 국회에서 열린 ‘사법신뢰 회복방안’ 심포지엄에서 “일부 고위법관의 개업을 2~3년 지연시키는 효과만 있을뿐”이라며 “정년이후 판사들의 경험을 활용할 수 있는 제도개선이 필요하다”고 당부했다.



서울 등 수도권 지방법원에 원로법관들이 쏠리는 현상도 개선돼야 할 문제로 꼽힌다. 대법원 관계자는 “원로법관 지망자들이 결혼 후 서울 근처에서 자녀를 낳고 자리잡은 경우가 많아 수도권에 남고 싶어하는 의사가 강한 편”이라며 “그렇다고 수도권 지역에 이들을 위해 자리를 늘리기에는 사실상 어려워 원로법관들의 인식전환이 필요한데 그렇지 못하다”고 토로했다. 실제 여수로 간 박보영 전 대법관을 제외하고 10명의 원로법관이 서울·김포·광명·파주·대전 등에서 근무하는 중이다.

일각에서는 원로법관의 개념을 바꿔 정년을 늘리고 업무량을 줄여 연봉을 낮추는 임금 피크제 성격의 ‘시니어 법관 제도’로 개편하는 방안을 고려할 필요가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판사 출신의 대형로펌 소속 변호사는 “미국은 정식 법관으로는 퇴직하고 파트타임 식으로 기존 업무의 20~30% 정도만 담당하며 판결하는 게 현실적일 수 있다”며 “그게 어렵다면 고등법원 대등재판부 또는 민사합의부에 원로법관 전담재판부를 만들어 오랜 경험이 활용될 특허·증권 등 전문사건 등을 맡기도록 개선할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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