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진정 혼자다. 내가 유일한 생명체다. 만일 인류의 숫자를 세어보라고 한다면, 30억 외에 달 반대편에 둘, 그리고 이쪽에 오직 신만이 아는 한 사람을 더해야 하리라.”
1969년 7월 20일 인류 최초로 달에 발을 내디뎌 전 세계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은 닐 암스트롱과 버즈 올드린 외에 아폴로 11호에는 또 다른 우주 비행사 마이클 콜린스가 있었다. 그는 동료들이 무사히 사령선으로 귀환할 때까지 달 궤도를 돌며 시스템을 점검하고 관제센터와 교신했다. 그는 홀로 남아있던 고독의 순간을 이렇게 표현했다.
책 ‘달로 가는 길’은 콜린스가 나사(NASA·미항공우주국) 우주인으로 선발되고 아폴로 11호에 탑승해 임무를 마치고 돌아오기까지의 과정을 기록한 회고록이다. 1974년 출간됐다가 달 착륙 50주년을 기념해 한정판으로 다시 나왔다.
콜린스는 우주비행사가 되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거쳤다. 애리조나 사막에서 야영하며 지질학 탐사를 하고, 불시착에 대비해 정글에서 살아남기 위해 노력하고, 초음속 비행기로 무중력을 재현해 그 안에서 구르고 토하는 등 훈련 과정을 겪었다. 특히 그는 훈련 도중 아폴로 1호 폭발과 탑승우주인 사망이라는 비극을 마주하며 우주비행이란 목숨을 걸고 하는 일이라는 사실을 다시금 깨닫게 한다.
“20만㎞ 밖에서의 지구모습은
빈부 경계 없는 그저 작은 공
분쟁하던 지도자들도 멈출것”
달착륙 주목받은 암스트롱 외
궤도 돌며 시스템 점검 콜린스
홀로 우주서 마주한 지구 회고
저자는 과학기술의 발전만으로는 달 탐사가 가능하지는 않았다는 것을 책 곳곳에서 드러낸다. 우주탐사는 그 자체로 과학과 공학, 의학이 집약된 활동이다. 그러나 우주선과 우주과학 기술은 완성된 채로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예측할 수 없는 지구 바깥 상황과 기술적 오류와 같은 돌발변수들 때문에 우주비행사들은 직접 지상실험에 뛰어들어 수정을 거듭한 후에야 비로소 달과 우주를 향해 날아갈 수 있었다. 콜린스는 하루 동안 무려 850번의 버튼 조작을 한 경험을 전하며 우주 탐사와 달 탐사는 기계만이 아닌 ‘인간’이 해낸 일임을 피력한다.
책에서 가장 흥미진진하게 펼쳐지고 독자들의 눈길을 사로잡는 부분은 역시 아폴로 11호의 우주비행과 달 착륙에 관한 내용이다. 준비 과정부터 이륙 순간, 우주에서의 생활, 암스트롱과 올드린이 달에 발을 내디뎌 혼자 남게 된 순간까지 세세하게 기록했다. 콜린스는 우주에서 마주한 지구가 본질적으로 아름답고, 생명과 다양성이 넘쳤다고 전한다. 황량하고 단조로운 달과 비교가 안 됐다. 무엇보다 그는 우주에서 본 지구는 국경이 없었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상의 정치지도자들이 20만 킬로미터 밖에서 이 행성을 볼 수 있다면, 그들의 관점도 근본적으로 바뀔 것이다. 국경은 보이지 않고 시끄럽던 논쟁도 순식간에 잦아들 것이다. 이 작은 공은 돌고 돌면서 경계를 지우고 하나의 모습이 될 것이다. 차별을 중지하라고, 평등하게 대하라고 외쳐댈 것이다. 지구는 보이는 모습 그대로여야 한다. 청색과 흰색이지, 자본주의와 공산주의는 아니다. 부유층과 빈곤층도 아니다.’
저자는 우주탐사와 관련된 여러 논쟁들에 대한 답변도 제시한다. 유인우주선 프로그램이 인류에게 어떤 가치가 있는가, 수백억 달러의 세금을 쓸 만한 가치가 있는가의 질문에 대해 저자는 그것을 판단하기는 시기상조라고 답한다. 우주프로그램에 들어갈 국가 예산을 아끼면 그로 인해 국민 복지가 획기적으로 개선될까. 저자는 1970년대 초 미국 복지부(HEW) 예산 750억 달러와 NASA 예산 30억 달러를 비교하며 우회적으로 답한다.
대한민국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우주인인 이소연이 책의 감수를 더했다 . 이소연은 ‘감수의 글’에서 콜린스와 직접 만난 일화를 전한다. 우주인 훈련을 받는 동안 콜린스와 만난 적이 있는 이소연은 “달 착륙은 사기”라는 주장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는 질문을 그에게 던진다. 이에 콜린스는 여유 있는 미소를 지으며 “기술이 지금처럼 발전되지 않았던 그 시절에 전 세계 사람을 속이기 위해 컴퓨터 그래픽으로 방송조작을 하느니 그냥 달에 다녀오는 게 싸게 먹혔을 것”이라는 센스있는 답변을 내놓는다. 책 전체에도 콜린스의 이런 유머와 여유가 담겨있으며 지구와 인간 존재에 대한 깊은 사색들까지 더해져 책은 600쪽 가까운 두께에도 어렵지 않게 읽힌다. 2만8,000원.
/김현진기자 star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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