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현미 국토교통부 장관이 집값 과열 시 내놓을 추가 대책으로 민간택지 분양가상한제 적용을 기정 사실화하면서 업계는 잔뜩 우려하는 분위기이다. 그의 발언을 보면 시행령을 개정해 요건을 낮추고 관리처분인가 단지까지 소급적용한다는 것으로 해석될 수 있다.
참여정부 시절 민간택지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됐을 때 단기 공급 증가 이후 공급 부족이 심화하는 등 심각한 후유증을 겪은 바 있다. 김태섭 주택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단기적으로는 분양가가 내려가고 재건축·재개발 시장이 급랭할 것”이라면서도 “하지만 로또 분양과 신규 아파트의 희소성을 낳아 또다시 아파트값이 오를 수 있다”고 설명했다.
◇“시행령 개정해 소급적용하겠다”=김 장관은 8일 국회 국토교통위원회 전체회의에 출석해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상한제 도입을 검토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이어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지정요건을 바꾸는 방안을 검토하고 있다”며 구체적 적용 방법까지 밝혔다.
현행 주택법은 이미 민간택지 아파트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도록 규정하고 있다. 민간에 분양가상한제를 시행하는 요건은 공통적으로 지정일 직전 3개월간 해당 지역의 주택 매매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의 2배를 초과해야 한다. 여기에 △12개월 평균 분양가격 상승률이 물가상승률 2배 초과 △직전 2개월간 일반분양 5대1 초과 또는 국민주택규모 10대1 초과 △3개월 주택거래량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증가 등 세 가지 중 하나를 충족하면 민간사업지에도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다. 지난 2014년 이후 지금까지 이 조건을 충족한 지역이 없었기 때문에 민간택지 아파트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된 적은 없었다.
핵심은 김 장관의 설명대로 주택법 시행령을 고쳐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를 적용할 수 있는 요건을 완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규제지역으로 요건을 바꾸는 등의 방법으로 매매가·분양가격 상승률과 비교하지 않고도 즉각 시행할 수 있다.
또 시행령을 개정해 입주자 모집공고 승인 기준으로 분양가상한제 기준을 적용할 수도 있다. 이렇게 되면 현재 후분양을 추진하려는 단지 등 법 시행 이후 분양하는 모든 아파트에 적용된다. 서초구 원베일리, 강남구 상아 2차 등 관리처분인가를 받고 후분양을 준비 중인 강남권 재건축 단지가 직격탄을 맞을 것으로 보인다. 용산 한남동의 나인원한남 사례처럼 임대분양으로 돌아서는 단지가 나올 것이라는 전망도 제기된다. 국토부는 조만간 주택법 시행령을 개정해 상한제가 시장에서 작동하도록 기준요건을 강화할 방침이다. 업계에서는 이르면 이달 중 개정안이 발의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급 부족 심화 등 후폭풍 우려= 분양가상한제는 출범 이후 ‘역대급 부동산 대책’을 써온 이 정부에서도 막판까지 손대지 않았던 카드다. 그만큼 민간주택시장에 미치는 파급력이 크고 부작용도 우려되는 대책이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분양가상한제 시행으로 공급이 급감할 것으로 우려하고 있다. 실제 2007년 9월부터 민간택지에 분양가상한제가 적용되고 이후 글로벌 경제위기까지 겹치면서 재건축·재개발 사업이 줄었다. 부동산114 조사에 따르면 서울 지역의 새 아파트 입주물량은 2008년 5만6,000여가구에서 2009년 3만1,700여 가구, 2010년 3만5,000가구, 2011년 3만6,900가구 등으로 반토막이 났다. 반면 미분양 물량은 전국 기준으로 2007년 11만2,254가구에서 2008년 16만5,599가구로, 서울 역시 454가구에서 2,486가구로 일시 급증했다. 여기에 상한제 적용 단지가 또 다른 ‘로또 분양’이 되는 풍선 효과도 우려된다.
함영진 직방 빅데이터랩장은 “2007년 분양가상한제 실시로 신규 분양 부족이라는 후폭풍을 겪었다”면서 “분양가상한제는 분양가를 낮추는 차원을 넘어 주택·건설시장 전반의 문제로 접근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동훈·이재명기자 hooni@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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