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주 국내 바이오제약 업계에 뜻밖의 낭보가 전해졌다. 신약의 기술수출 계약이나 선진국 판매 승인이 아닌 국내 바이오벤처 간의 전격적인 합병 소식이었다. 면역항암제가 주력인 제넥신과 유전자가위 원천기술을 보유한 툴젠의 합병 선언에 업계 관계자들은 ‘K바이오’의 생태계가 바뀌는 신호탄이라며 한껏 기대감을 나타냈다.
하지만 최근 기자가 만난 바이오기업의 대표는 K바이오의 한계를 고스란히 반영하는 사례라며 안타까움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두 회사 모두 글로벌 수준의 기술력을 갖춘 기업인 만큼 국내 제약사에 인수됐어야 마땅하다고 지적했다. 표면적으로는 글로벌 진출을 위한 대승적 결단이지만 사실은 생존을 위한 처절한 몸부림이라는 분석에 절로 고개가 끄덕여졌다.
최근 들어 K바이오의 성적표는 눈부실 정도다. 셀트리온과 삼성이 연일 글로벌 무대에서 가시적 성과를 거두고 있고 신라젠·헬릭스미스·ABL바이오 등의 벤처기업도 혁신 신약의 상용화를 앞두고 있다. 하지만 정작 K바이오의 허리 역할을 하는 중견기업의 존재감이 없다는 것이 K바이오의 불확실성을 키우는 부메랑이 되고 있다.
바이오 산업에서는 어떤 산업군보다 대·중·소로 이어지는 기업 간 생태계가 중요하다. 기술력은 있지만 자본력이 달리는 바이오벤처를 중견기업이 인수하면 이를 다시 대기업이 품는 선순환식 생태계가 조성돼 있어야 지속 성장할 수 있다. 지금과 같이 대기업과 벤처기업으로 철저히 나뉘는 양극화 구조에서 K바이오의 글로벌 주도권 확보와 경쟁력 강화는 요원하다.
K바이오 생태계에서 허리 역할을 맡을 기업은 12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전통 제약사다. 하지만 국내 제약사들은 보수적인 경영문화와 경직된 조직체계 탓에 적극적인 인수합병(M&A)에 나서지 못하고 있다. 그 결과 국내 제약사 중 글로벌 시장에서 연매출 1,000억원 이상 올리는 신약을 개발한 곳은 아직 하나도 없다.
국내 제약사들은 K바이오가 글로벌 무대에서 경쟁력을 갖추려면 정부가 규제를 완화하고 연구개발 지원을 강화해야 한다고 연신 입을 모은다. 하지만 그에 앞서 국내 바이오기업을 발굴하고 육성하는 것이 국민들의 사랑으로 성장한 제약사에 주어진 과제이자 의무다. K바이오의 백년대계를 위해 국내 제약사의 인식 전환이 필요한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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