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가난한 수재의 전형이다. 소농의 아들로 태어나 경제적 어려움 때문에 이리공고를 나왔다. 서울대 경제학과에 진학했지만 시험 때만 서울에 있었고 농사일을 돕기 위해 고향에 있던 시간이 적지 않았다고 한다. 그는 “수업을 자주 빠져 나를 알아보지 못한 대학 동기들이 더러 있었다”고 했다. 그는 어릴 적 경험한 가난이 사회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의 중요성을 절감하게 했다고 한다. 일찌감치 자식들에게 재산을 물려주지 않고 사회 환원을 결심한 배경이다. 슬하에 2남 3녀를 두고 손주만도 11명을 둔 그는 “자식들에게 어릴 때부터 공동체와 더불어 사는 삶에 대해 밥상머리 교육을 했다”면서 “다행히 애들도 잘 따라왔다”고 회고했다. 40여년 전의 일이다.
박 전 총재가 십 수억원을 아무렇지 않게 내놓을 정도로 부를 축적한 것은 아니다. 인터뷰 당일 그는 아반떼 승용차를 직접 끌고 나왔다. 걸치고 나온 양복도 십 수년 된 것이다. 한은 총재직에서 물러난 후 금융권과 대기업·법무법인 등에 재취업한 적도 없다. 건설부 장관을 지냈지만 부동산 투자와는 담을 쌓고 지냈다. 1961년 한국은행 입행 이후 40여년 동안 서울 은평구 단독주택에서 살다 2008년에서야 지금의 종로구 평창동 아파트로 이사했다.
박 전 총재는 기부 행위에 대해 뜻밖에도 “나를 위한 ‘이기적’ 선택”이라고 설명했다. “행복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자신과 가족 중심의 ‘작은 행복’과 공동체 이익을 위한 ‘큰 행복’이 있는데 기부는 나의 큰 행복인 것이죠.” /권구찬 선임기자 chans@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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