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중 무역전쟁과 글로벌 경기둔화 속에 2차 세계대전 이후 가장 긴 경기 확장기라던 일본 경기마저 빠르게 식어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유럽과 중국을 거쳐 미국으로까지 확산된 경기둔화 조짐이 일본으로까지 번지면서 한국 경제의 대외 여건은 갈수록 악화하는 분위기다. 최근에는 터키와 아르헨티나 등 신흥국 금융시장도 불안해지면서 급격한 글로벌 경기둔화에 대한 우려를 부추기고 있다.
일본은행(BOJ)은 ‘3월 전국기업 단기경제관측조사(단칸)’ 결과 제조 대기업의 체감경기를 나타내는 업황판단지수(DI)가 12로 지난해 12월(19)에 비해 7포인트 떨어졌다고 1일 밝혔다. 이는 시장 예상치인 14를 밑도는 수치로 낙폭은 지난 2012년 12월(-9포인트) 이후 6년 3개월 만에 가장 큰 수준을 보였다. DI는 일본 내 1만개 기업을 대상으로 경기가 ‘좋다’고 답한 기업에서 ‘나쁘다’고 밝힌 업체의 비율을 빼서 산출하는 지수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미중 무역마찰과 해외경제 둔화가 체감경기 악화로 이어졌다”며 “비철금속 및 일반기계 등의 악화가 두드러졌다”고 평가했다. 런던에 근거지를 둔 캐피털이코노믹스의 마르셀 틸리안트 수석 일본 이코노미스트는 “1·4분기 단칸지수 하락은 일본 경제가 연초 급격하게 둔화하고 있다는 점을 확인시켜준다”고 설명했다.
일본 기업의 급격한 체감경기 악화는 올해 들어 세계 주요국에서 불거지는 경기둔화 흐름의 한 단면일 뿐이다. 노딜 브렉시트(영국의 유럽연합(EU) 탈퇴) 가능성이 점차 커지는 유럽의 경우 3월 유로존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기준선인 50을 크게 밑도는 47.5에 그치는 등 빠른 속도고 경기가 악화하고 있다. 3월 제조업 PMI 확정치는 71개월래 최저치다. 특히 유럽 최대 경제국인 독일의 3월 제조업 PMI는 44.1에 그쳤다. 최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는 올해 독일의 경제성장률을 지난해 11월 전망치인 1.6%에서 0.7%로 대폭 하향 조정했다.
상황은 세계 2위 경제국인 중국도 좋지 않다. 중국은 대규모 부양책에 힘입어 지난달 제조업 구매관리자지수(PMI)가 49.2에서 50.5로 ‘반짝 상승’했지만 대규모 부채 때문에 중국 정부가 경기를 계속 떠받치기는 쉽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지난달 말 우샤오추 인민대 교수 겸 부총장은 “지방정부 부채 수준이 ‘끓는 점’에 근접했다”며 “중국에서는 기업 부채보다 오히려 지방정부의 부채 문제가 더 심각하다”고 강조했다. 앞서 지난 1~2월 중국의 공업기업 이익은 총 7,080억위안(약 119조6,000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14%나 급감했다. 여기에 주요 교역지역인 유로존의 경기 하강은 가뜩이나 성장 속도가 둔화한 중국 경제에도 한층 찬물을 끼얹고 있다. 홍콩 사우스차이나모닝포스트(SCMP)는 “유로존의 경기둔화가 중국 수출경기에 악영향을 줄 것”이라고 진단했다.
미국 역시 장단기 국채금리 역전 이후 경기침체 시점을 두고 의견이 분분하지만 경기둔화가 본격적으로 시작됐다는 데는 이견이 없다. 앞서 미 연방준비제도(Fed·연준)는 올해 미국 경제성장률 전망치를 2.3%에서 2.1%로 낮췄고 올해 금리동결 방침을 밝혔다. 스티븐 무어 연준 이사 내정자에 이어 래리 커들로 백악관 국가경제위원회(NEC) 위원장은 최근 “연준은 당장 기준금리를 0.5%포인트 내려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김영필기자 susopa@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