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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정책 이대로 좋은가] 매년 2만명씩 느는 외국인 자녀들, 언어장벽에 적응어려워

<3>교육·의료 사각지대 외국인, 부메랑 될까

미성년자 외국인 11만명 달하지만

언어장벽에 방과후 집에만 머물러

불법체류자엔 교육기회마저 없어

"佛 이민자처럼 갈등 씨앗 될 수도"

지난 8일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원곡동 주택가 골목에서 중국인 초등학생들이 비비탄 총 놀이를 하고 있다. /안산=백주연기자




“러시아 애들은 한국말을 못해서 자기들끼리 문구점 앞에서 게임기를 가지고 놀거나 학교 놀이터에서 놀아요. 한국 애들은 학원에 가서 이 시간에는 밖에 없어요.”

지난 8일 늦은 오후 경기도 안산 단원구 원곡동 주택가 골목에서 만난 중국인 동훈(11·가명)이가 한 말이다. 동훈이는 같은 중국인 친구인 선형(11·가명)이와 비비탄 총 놀이를 하고 있었다. 여덟 살 때 한국에 온 동훈이와 선형이는 한국말에 능숙하다. 동훈이 부모님은 안산 반월공단에서 일하고 있는 합법체류자다. 선형이 부모님은 근처 양꼬치집에서 근무한다. 아이들은 매일 이렇게 동네에서 놀다가 밤늦게 집에 들어간다. 집에 늦게 가는 이유를 묻자 선형이는 “엄마 아빠는 저녁에 출근하고 다음날 아침6시에 들어오셔서 저는 혼자예요”라고 말했다. 학교 수업이 끝나고 꽤 지난 시간이었지만 안산 원곡동 주택가와 학교 놀이터, 문구점 앞에는 동훈이를 비롯해 무리 지은 남자애들이 많았다. 얼핏 보기에는 한국 아이들 같았지만 한국말이 거의 들리지 않았다. 러시아·중국·방글라데시·베트남 등 다양한 국적의 아이들은 그들의 모국어로 대화했다. 동훈이네 반은 전체 25명 중 한국인 13명, 러시아인 7명, 중국인이 5명이다.

지난 8일 오후 안산 원곡초등학교 운동장 놀이터에서 중국·러시아 아이들이 그네를 타며 놀고 있다./안산=백주연기자


국내 체류 외국인이 많아지면서 외국인 가정 자녀들도 가파르게 늘고 있다. 법무부의 조사를 보면 지난해 말 기준 국내에 있는 만 19세 미만 등록 외국인은 10만3,432명이다. 미등록으로 추산되는 8,000명을 합하면 11만명쯤 된다. 특히 경기도 안산은 공단 등이 있어 국내에서 외국인 가정 자녀 비율이 높은 지역이다. 경기도교육청에 따르면 학교에 다니는 외국인 가정 초등학생 자녀 4,708명 중 1,343명이 안산에 살고 있다. 부모들이 한국에 먼저 와 자리를 잡은 뒤 중도입국한 아이들까지 합치면 3,000명이 훌쩍 넘는다. 국적별로 보면 중국 출신이 3,164명으로 가장 많고 카자흐스탄 등 중앙아시아 출신이 620명이다. 이어 러시아가 279명으로 3위다. 서울시 내 외국인 자녀도 빠르게 늘어나는 추세다. 지난해 다문화 학생 수는 1만6,023명으로 2013년의 8,574명에 비해 5년 새 두 배가량 급증했다. 국내 출생아 수는 계속 감소하는 반면 외국인 노동자, 귀화자 등의 다문화 가정 자녀들은 매년 약 2만명씩 꾸준히 늘고 있다. 2017년 기준 국내 신생아 35만7,771명 중 다문화 가정 출생 자녀는 1만8,440명으로 5%를 넘어섰다. 등록되지 않은 신생아까지 합치면 비율은 더 늘어난다.

부모 대부분이 맞벌이를 하면서도 경제여건이 좋지 않다 보니 외국인 가정 자녀들은 학교가 끝나면 학원이나 다른 기관에 맡겨지지 않고 방치되기 일쑤다. 한국행정학회가 지난해 10월 조사한 자료에 따르면 한국 아이들은 82.3%가 사교육을 받고 있는 반면 합법·불법체류와 상관없이 외국인 아이들의 사교육 비율은 20%가 채 안 됐다. 방치된 아이들은 한국어를 배울 기회가 적다 보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악순환으로 이어진다. 실제로 외국인 가정 500명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는 이유로 ‘언어장벽(58.2%)’이 가장 많았고 이어 ‘다른 피부색·외모(28.6%)’ ‘내성적인 성향(27.6%)’ ‘학교 공부에 흥미 잃음(20.4%)’ 등의 순이었다.



그나마 합법체류자 가정 자녀들의 사정은 낫다. 불법체류자 가정 자녀들은 학령기여도 비자 문제로 학교에 가지 못한다. 국제인권법상 중학교까지는 의무교육으로 불법체류자 가정 자녀들을 받아줘야 하지만 체류요건을 이유로 거절하는 학교가 많아서다. ‘국내 체류 아동 실태조사’ 보고서에 따르면 미취학 아동을 초등학교에 입학시키려다 거부당했다는 응답은 30%나 된다. 러시아에서 온 불법체류자의 자녀 규리(14·가명)는 하루 대부분을 부천 집에서 지낸다. 같은 처지의 친구들과 모여서 인터넷으로 러시아 유튜브 동영상을 보거나 장난감 액체괴물을 가지고 논다. 다행히 규리는 근처 사회복지시설에서 한국어를 배웠지만 “러시아로 돌아가 학교에 다니고 싶다”고 말했다.

법무부 등 정부도 체류 아동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연구하고 있지만 아직 실효성 있는 대책은 없는 상태다. 부모의 체류가 불법이라는 이유만으로 아동을 추방할 수는 없다. 그렇다고 아이들이 존재한다는 이유로 무조건 그 부모까지 국내체류를 허가할 수도 없다. 게다가 불법체류자 자녀는 현황파악도 제대로 되지 않는다.

경기도 안산 ‘외국인노동자의집’이 운영하는 ‘무지개학교’ 강의실 모습. 외국인 아이들이 붓으로 한글을 연습한 한지가 붙어 있다./안산=백주연기자


이렇다 보니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거나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외국인 가정의 아이들은 사회복지시설이나 비영리단체에 의존한다. 안산의 ‘외국인노동자의집’도 설립 초기에는 성인 외국인의 일자리 상담을 주로 했으나 아이들 교육의 심각성을 인지하고 2016년부터 무지개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24세 미만의 외국인 가정 자녀들에게 한국어를 가르친다. 한국어 수업을 듣는 아이들은 20~30명 안팎이다. 한국어 능력이 어느 정도 갖춰지면 아이들이 검정고시를 준비하도록 독려한다. 개인이나 기관의 후원으로 운영되는 이곳은 올해부터 경기도교육청의 지원이 끊기면서 오후 수업을 없앴다. 정부에서 학교에 입학한 합법체류자 가정 자녀들만 지원하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정혁 안산 외국인노동자의집 대표는 “몇 년 새 학령기에 접어든 외국인 가정 자녀들이 늘어났다. 지금은 초등학생이 가장 많지만 곧 중고등학교로 이어질 것”이라면서 “아이들이 10대 후반으로 접어들기 전에 정책 마련이 필요하다”고 안타까워했다. 프랑스에서 알제리 이민자 자녀들이 사회에 불만을 표출하며 난동을 부렸듯 국내에서도 이 같은 사회문제가 발생하는 것은 시간문제라는 의미다. 이 대표는 “지금도 한국말을 모르는 아이들이 출신 국가별로 몰려다니는데 어떻게 지도하느냐에 따라 인재가 될 수도 있고 갈등의 씨앗이 될 수도 있다”며 “앞으로 3~4년이 매우 중요한 시기”라고 말했다. /안산=백주연기자 nice89@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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