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역의 괘(卦)는 닫힘과 열림이라는 두 가지 특성으로 64괘를 이루고 있는데 이는 0과 1의 조합인 디지털 언어와 맥이 닿아 있어요. 4차 산업혁명에 의한 과학기술의 발전으로 변화의 소용돌이에 휘말린 현대인에게 주역은 3,000여년간 누적된 동양의 사유와 실천의 친절한 안내자가 될 것입니다.”
동양사상의 최고봉으로 평가받는 ‘주역(周易)’ 주석의 결정판인 ‘주역절중(도서출판 학고방 펴냄·총 12권)’을 3년여에 걸쳐 국내 최초로 완역한 신창호(사진) 고려대 교육학과 교수는 최근 방대한 분량의 원전을 해석해낸 의미를 이같이 말했다.
‘주역절중’은 중국 한대(漢代)에서 명대(明代)에 이르기까지 주희(朱熹·朱子)를 비롯한 최고의 주역 연구가들이 주석한 저작 가운데 핵심을 골라 조리 있게 편집한 주역 학술의 결정판이다. 1715년 청나라 강희제(康熙帝)가 이광지(李光地·1642~1718년)에게 총괄책임의 칙명을 내려 3년(1713~1715년)에 걸쳐 완성한 ‘어찬주역절중(御纂周易折中)’을 한글로 번역한 것이다.
신 교수는 “주역절중은 1715년 청나라에서 간행된 후 1723년에 조선으로 전해져 성호 이익(星湖 李瀷), 하빈 신후담(河濱 愼後聃) 등 당대 최고의 유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지만 당시 주역 연구는 주자학에 매몰돼 있었기에 정자나 주자 이외에는 큰 관심이 없어 깊이 연구되지 못했다”면서 “이 책은 정자와 주자 중심의 ‘주역전의’를 넘어 한(漢)·진(晉)·수(隋)·당(唐)·송(宋)·원(元)·명(明) 등 중국 역대의 주역 사상이 시대별로 어떻게 다르게 인식하고 해석했는지 그 차이를 비교할 수 있다. 다양한 역학 사상을 통해 주역 연구에 활력을 불어넣어 줄 수 있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원래 점복서(占卜書)인 주역이 첨단 과학기술의 시대에 어떤 의미인지를 묻자 신 교수는 “고대 사람들이 순수하고 풍속이 소박한 시기, 즉 세상에 지식이 지금처럼 다양하지 않을 때 주역은 인간 삶의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편이자 지혜였다”면서 “주역은 우주 자연의 이치와 인간 사회의 법칙이 녹아 있는 사유와 실천이 융·복합적으로 담보돼 있는 집단 지성들의 저술로 동양인의 삶에 깊이 스며들어 있다”고 설명했다. 그는 음양(陰陽)의 원리를 예로 들면서 “음양은 플러스(+)와 마이너스(-), 남성성과 여성성, 강한 것과 부드러운 것 등이 녹아 있다. 고대 동양의 사상이었지만 오늘날에도 우리가 음양이라는 큰 시스템으로 세상을 개략적으로 이해할 수 있는 까닭은 오랜 세월 동양인의 사상적 DNA에 뿌리내린 삶의 철학이기 때문”이라며 “주역은 변화(變化)를 기본 원리로 우주 자연 질서와 인간 사회 법칙을 끊임없이 변주(變奏)하며 우주적 삶의 기준을 구가하는 철학으로 복합적인 해석이 가능하기에 시대별로 해석이 다르다. 그만큼 응용할 수 있는 폭과 깊이가 개방적이라는 의미”라고 설명했다. 그는 이어 “시대별로 다양한 주역의 해설과 이해를 밑천으로 삼아 응용하면 과학기술문명 시대에 다차원적 사고의 지평을 헤쳐나가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면서 “특히 주역은 ‘이현령비현령(耳懸鈴鼻懸鈴·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이라는 표현으로 대변되듯이 복합적 해석이 가능한 만큼 우주 자연과 인간 사회에 관해 의미심장한 세계를 펼쳐나가는 데 기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글·사진=장선화 백상경제연구원 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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