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친구는 척수장애인이다. 교통사고로 허리 아래의 모든 신경이 마비됐다. 척수는 뇌가 명령하는 메시지를 신체 부위에 전달하고 이 부위의 메시지를 다시 뇌로 전달하는 쌍방향 커뮤니케이션 네트워크 역할을 하는데 척수장애인들은 그 네트워크가 깨어진 것이란다.
친구는 주로 집에서만 지냈다. 대부분 척수장애인은 사고로 하루아침에 장애인이 된 사람들이 많다. 내 몸은 물론이요, 가족, 그리고 사회와 커뮤니케이션이 되지 않는 답답함을 견디는 것도 그들에게는 힘든 일이다. 등록장애인 기준으로는 약 6만명. 척수장애인 수가 이렇게 많은데 거리에서 만나는 경우는 드문 것을 보면 대부분이 집에서 지내기 때문일 것이다. 집에서의 생활도 만만치 않다. 활동보조인의 도움을 받는다 하더라도 24시간 타인의 도움을 받으며 살 수밖에 없는 삶은 고단하다.
얼마 전, 장애인들의 삶을 바꿔놓을 섬광 같은 광고 한 편을 만났다. 7년 전 사고로 목 아래를 모두 쓸 수 없는 척수장애인 이원준씨. 세 아이의 도움 없이는 혼자 아무것도 할 수 없었던 그가, 아이들의 도움 없이 음성만으로 가전제품을 조작하고 막내를 위해 나들이를 계획하는 모습이 담겨 있었다. 인공지능(AI)과 사물인터넷(IoT) 기술은 정말 생각을 넘어 생활 속에 들어와 있었다. “아빠 좀 도와줄래”라는 말보다 이제 “아빠가 할 수 있어”라는 말을 더 많이 쓸 수 있게 만든 생활 혁명이었다.
모든 유형의 장애인들이 만족하는 기술이 계속 개발되면 좋겠다. 한 통신사는 척수장애인 가정에 AI와 IoT 서비스를 무상지원했다고 한다. 많은 기업이 스마트홈을 구축하는 데 경쟁이 치열하지만 IoT든 AI든 목적은 일상생활의 행복이 아닐까. 이제는 누구도 소외되지 않는 따뜻한 기술의 진보를 기대하고 요구할 때다. 기술개발 단계에서부터 유형별 장애인들이 참여한다면 더 편리한 기술이 탄생할 것이다. 그들의 조언은 필수다. 모두가 차별 없이 세상과 소통하는 사회가 진정 행복한 사회가 아닐까. 기억하자. 장애인들의 일상생활을 편리하게 만드는 기술은, 비장애인들에게도 더욱 편리하다는 것을. 모든 사람이 소외되지 않는 기술이 최첨단 기술이라는 것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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