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는 26일 작고 20년이 되는 고(故) 최종현 SK그룹 회장은 단순히 돈 되는 사업보다 대한민국이 먹고 살 산업을 고민하고 이를 키우는 데 열정을 바친 경영인으로 기억된다. 일찌감치 지난 1970년대에 ‘21세기 일등국가론’을 제시하고 구체적인 방향으로 세계화와 시장경제 활성화를 통한 국가경쟁력 강화를 역설했다. 작은 직물공장에서 출발한 SK가 세계 수준의 에너지·화학 기업으로 거듭난 것도 이 같은 혜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불굴의 도전정신도 빼놓을 수 없다. 1973년 ‘석유에서 섬유까지 수직계열화’를 추진하겠다는 비전을 밝혔을 때 주변에서는 허황한 꿈으로 치부했다. 하지만 그는 포기하지 않고 준비해 꿈을 현실로 바꿔놓았다.
많은 1·2세대 창업주들이 최 회장과 함께 열정·보국(報國), 개척자정신과 결단력으로 한국 경제의 성장에 기여했다. 고 이병철 삼성 창업주는 1974년 12월 한국반도체를 50만달러에 인수했다. 메모리 반도체 세계 1위로 도약하는 첫발을 내딛는 순간이었으나 안팎의 경영 환경은 녹록하지 않았다. 주변의 만류가 심했지만 이 회장은 1983년 2월 반도체 사업을 반드시 키우겠다며 일본 도쿄에서 대규모 시설투자를 지시했다. 그렇게 반도체 신화가 만들어졌다. 이런 도전정신과 결단이 오늘의 삼성을 있게 했다.
“이봐, 해봤어”라는 고 정주영 현대 명예회장의 일성은 기업인의 도전과 열정을 상징한다. 달랑 설계도 한 장을 들고 그리스 해운업자를 찾아 26만톤급 유조선 두 척을 팔아치우는 기적은 기업가정신의 표본이라 할 만하다. 정 회장이 현대자동차 창립을 밀어붙이지 않았다면 자동차 강국은 불가능했다. 구자경 LG 명예회장과 고 구본무 LG 회장도 다르지 않다. 특히 구본무 회장은 차세대 디스플레이, 2차전지 등을 미래 신성장 사업으로 키워 글로벌 LG의 성장을 이끌었다. 2005년 2차전지 사업이 큰 적자를 기록했지만 “끈질기게 하다 보면 꼭 성과가 나온다, 여기에 우리의 미래가 있다”며 물러서지 않았다고 한다. 이들 기업인이 이룬 성과는 지금으로 말하면 혁신성장이다.
이렇게 열정·보국의 기업가정신으로 나라 경제 성장에 이바지한 기업인의 사례는 어느 나라와 비교해도 뒤지지 않는다. 이들의 도전정신과 개척자 정신이 우리 경제성장의 원동력이었다는 데 이의를 달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이제는 기업가정신이 위축되고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창업 3·4세대로 넘어가면서 그런 측면이 있지만 정부발(發) 반기업정서의 영향이 적지 않다. 과거 기업들의 잘못된 관행을 바로잡는 것은 필요하다. 사회적 책임을 다하려는 기업인의 자발적 노력도 중요하다. 하지만 그 과정에서 기업의 부정적인 측면만 부각하면 정상적인 기업활동과 기업가정신은 약화할 수밖에 없다. 그것도 정부·여당이 앞장서서 부추기면 더욱 그렇다.
기업가정신이 위축되면 투자가 늘기 힘들고 이는 결국 일자리 감소를 초래한다. 최근 우리 경제가 활력을 잃고 고용참사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어려움에 직면한 것은 이런 배경과 무관하지 않다. 기업인들이 죄인 취급을 당한다고 느끼면 기업 할 의욕마저 생기지 않는 것은 당연하다. 이런 한국의 상황은 미국·유럽 등과 확연히 대비된다. 미국은 국가경제교육연합(NCEE)·국가기업가정신교육재단(NFTE) 등이 나서서 기업가정신을 체계적으로 가르치고 있다. 매년 40만명 이상의 대학생들이 이를 통해 창업이나 기업가정신에 대해 강의를 듣고 있을 정도다. 유럽에서도 최근 기업가정신에 대한 교육을 강화하고 사회주의국가인 중국 정부조차도 기업가정신을 강조하고 있다. 경제성장을 위해서는 기업가정신을 북돋우는 게 중요하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글로벌 경영환경이 급변하는 등 시대가 바뀌어도 기업가정신의 근간은 변하지 않는다. 정부나 사회가 도전과 열정을 자극할 수 있는 여건을 만들어 주면 언제든지 기업가정신은 되살아날 수 있다는 얘기다. 요즘처럼 경제가 힘들수록 더 독려할 필요가 있다. 지금이 그때다. /shi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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