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사회발전노사정위원회가 사용자 측이 완강하게 반대하고 있는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 논의 카드까지 꺼내 든 데는 이것 외에는 노동계를 설득할 만한 이렇다 할 방안이 없다는 판단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한국노총과 민주노총 등 양대 노총은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반대해 현재 사회적 대화 기구 불참을 선언한 상태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와 인상폭 등에 현실적으로 관여할 수 없는 노사정위 입장에서는 노동계에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하고도 유효한 당근책이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 논의 카드였을 것이라는 분석이다. 문성현 노사정위원장은 11일 기자간담회에서 “최저임금 인상폭 등을 정하는 것은 최저임금위원회이기 때문에 내가 언급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면서도 “노사가 합의하기만 한다면 통상임금 산입범위의 확대 등은 논의할 수 있다”고 말했다.
문제는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는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의 ‘반대급부’로 노동계에 줄 만한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통상임금의 산입범위를 어떻게 정하느냐에 따라 기업 입장에서는 연간 10조원 이상의 추가 비용이 소요된다. 한국경영자총협회는 통상임금에 정기상여금 등이 포함되면 기업들은 지난 3년과 앞으로 1년 등 총 4년간 38조5,509억원의 직간접 노동비용이 추가로 들 것으로 추산하고 있다. 최저임금 산입범위처럼 정기상여금은 물론 복리후생비까지 공격적으로 포함하면 통상임금을 기반으로 하는 연장야간수당·퇴직금 등이 눈덩이처럼 불어나 경영계가 부담해야 할 금액은 더 커질 것이라는 게 재계의 설명이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사용자 측에서는 강한 불만의 목소리가 흘러나오고 있다. 경영계의 한 관계자는 “노사정위가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가져올 파장을 한 번쯤이라도 생각을 해봤는지 모르겠다”며 “산업현장에 미칠 여파 등을 감안할 때 노사가 머리를 맞대 풀어나가야 할 사안인데 아무리 급해도 그렇지 중재자가 돼야 할 노사정위원장이 그런 언급을 하는 게 말이나 되냐”고 언성을 높였다.
경총도 입장문을 내고 “노사정위가 제안한 최저임금과 관련한 통상임금에 대한 논의는 노사 갈등만 야기할 뿐”이라며 “인위적인 대화 재개를 위해 일방의 요구만 반영된 의제를 논의하자는 제안은 다른 참여주체들을 전혀 배려하지 않은 것”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이제는 갈등과 대립이 예상되는 의제에 얽매일 것이 아니라 우리 경제의 구조적 어려움을 해결하기 위한 대화가 시작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노사정위의 이 같은 제안에 대해 노동계는 직접적인 언급을 삼갔지만 회의적인 반응을 보였다. 노동계의 한 관계자는 “통상임금 산입범위 확대가 노동계가 아주 바라는 사안임은 틀림없다”며 “하지만 최저임금 산입범위 확대에 대한 반발감을 이것으로 억누를 수 있을지는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노동계는 이날 문 위원장의 발표에 앞서 이뤄진 의견 조율과정에서도 통상임금 범위 확대 논의 안건과 관련해 이렇다 할 언급을 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노사정위의 한 관계자는 “노동계 입장에서는 통상임금 범위를 국회가 다루는 게 유리할지, 아니면 노사정위에서 논의하는 게 더 나을지 고민이 깊을 것으로 본다”고 전했다. 국회 환경노동위원회는 오는 하반기 노사정위의 논의와는 무관하게 통상임금 범위를 놓고 격론을 벌일 것으로 예상된다.
문 위원장은 그간의 소회도 밝혔다. “4개월 동안의 대화가 순탄하지는 않았지만 노사정이 머리를 맞대고 해법을 모색하고자 치열하게 논의했다”며 “이런 노력의 결실로 사회적 대화 기구 개편안이 합의돼 6월11일부터 경제사회노동위원회법이 시행된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노사정위원회는 경제사회노동위원회로 이름이 바뀐다. /임지훈기자 jhilm@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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