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7년 여름 필라델피아에 미국 ‘건국의 아버지’로 불리는 55명의 지도자가 모였다. 느슨한 국가연합을 강력한 연방국가로 바꾸기 위한 연방 헌법을 설계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딱 하나의 고민 해결에 각별히 공을 들였다. 바로 권력 분립이었다. 1776년 영국과의 전쟁을 통해 독립을 쟁취한 것은 모든 권력을 군주가 갖는 영국의 권력 형태의 폐단이 싫었기 때문이다. 당시 식민지 13개주를 대표하는 이들은 이해관계가 달라 합의점을 찾기가 쉽지 않았지만 연방제 민주국가의 형태를 갖춘 지 불과 100여일 만에 집단지성의 힘으로 권력 균점을 위한 공감대를 이뤄냈다. 이때 기틀을 마련한 연방 헌법은 오늘날 대통령제(presidential system)의 모델로 미국을 꼽는 초석이 됐다.
대한민국이 채택하고 있는 국가체제는 미국식 대통령제를 벤치마킹했다. 그러나 같은 형태지만 미국 대통령제와는 상반된 평가를 받는다. 대통령 1인에게 모든 권력이 집중돼 제왕적 대통령제로 불린다. 역대 대통령 4명이 국정논란으로 구속돼 해외 토픽에 오르내리는 국가적 망신도 당했다. 그래서인지 더 이상의 국론 분열이 없기를 바라는 마음에 개헌에 대한 국민적 열망은 어느 때보다 높다.
다행히 정치권 갈등으로 수년간 차일피일 미룬 개헌(constitutional amendment) 논의가 최근 문재인 대통령의 개헌안 발의로 새로운 국면에 접어들었다. 보수진영과 야당은 대통령 개헌안에 비판을 쏟아내며 일단 개헌 열차에는 올라탔다. 하지만 시작부터 개헌안 내용을 놓고 논란이 끊이지 않는다.
이번 개헌의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청산이다. 그 가운데 관건은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의 시발점인 인사권 견제다. 우리가 모델로 삼은 미국 대통령제는 1,100여명에 달하는 모든 고위공무원을 임명할 때 상원의 조언을 받아야 한다는 견제장치가 있다. 연방대법원장을 비롯해 총 890개의 연방법관직도 상원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 상원의 동의 없이는 인사권 행사가 절대 불가능하다. 반면 한국 대통령은 임명하는 고위공직자 수는 상대적으로 적지만 국회의 동의를 받지 않고 인사권 행사가 가능하다. 정무직인 장관급도 국회 인사청문회를 하지만 청문회 결과와 상관없이 임명을 강행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한국의 대통령제가 제왕적 대통령제라는 불명예를 벗어나려면 미국식 의회통제 도입이 필요하다는 지적을 귀담아들을 필요가 있다. 견제를 받은 인사권이 시행되면 제왕적 대통령의 큰 몸통은 사라질 수 있기 때문이다. 안타깝게도 정부의 개헌안에서는 대통령의 인사권 행사에서 국회 동의 대상을 단 한 자리라도 늘리겠다는 조항은 찾아보기 힘들다. 내용만 놓고 볼 때 현 정부도 국회의 견제는 싫고 제왕적 대통령제의 막강한 칼자루 놓기는 더 싫은 게 아닌지 우려스럽다. /hhleee@sed.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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