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한도전이 멈췄다.
2005년 4월 MBC의 주말 예능 ‘토요일’의 한 코너 ‘무모한 도전’으로 시작한 무한도전. 황소와의 줄다리기, 목욕탕 배수구와 물빼기, 지하철과 달리기 등 별 의미 없어 보이는 미션, 이런 미션에 실패한 멤버를 두고 ‘사실 에이스가 아니었다’라며 ‘정신승리’하는 출연진이 맞붙는 ‘대한민국 평균 이하 연예인들의 좌충우돌 도전기’가 지난달 31일 ‘조금 더 보고싶다 친구야’ 편으로 멈췄다. 예능계의 패러다임을 바꿔놓았던 등장처럼 무한도전의 시즌 종료도 대한민국 예능 프로그램의 시스템을 뿌리부터 흔들 것으로 보인다.
2005년 김태호 PD가 연출을 맡고 ‘무리한 도전’을 거쳐 ‘무한도전’으로 이름을 바꾸며 ‘포맷’ 자체가 없는 예능의 도전이 시작됐다. 이들의 도전은 ‘돈가방을 갖고 튀어라’로 대표되는 추격전, 직장 생활을 풍자한 콩트 ‘무한상사’, 에어로빅, 레슬링, 조정, 댄스스포츠 등 장기 프로젝트, 멤버들의 사생활을 파헤치는 ‘무한뉴스’까지 거침이 없었다. 2009년 방영된 무한도전 TV 특집이 대표적이다. 추석을 맞아 마련된 이 특집은 MBC에서 방영한 프로그램을 애국가부터 뉴스, 드라마, 영화까지 모두 무한도전의 방식으로 패러디했다.
정덕현 대중문화평론가는 무한도전에 대해 “지금까지 이어지는 ‘관찰카메라’ 등 리얼리티 개념을 예능에 도입해 ‘예능프로그램’이라는 방송의 한 장르에 큰 진화를 선물했다”며 “13년간 매주 새로운 형식을 실험하며 많은 예능들이 무한도전의 한 에피소드에서 발화한 셈이 됐다”고 평했다. 정 평론가는 이어 “대표적인 예가 무한도전의 ‘추격전’이라는 포맷에서 퍼져나가 세계적인 인기를 끌고 있는 SBS의 ‘런닝맨’”이라며 “음악·콩트·관찰 등 현재 예능의 거의 모든 장르를 TV에 최초로 접목했던 프로그램이 무한도전”이라고 설명했다.
호평과 높은 시청률은 덤이었다. 2008년 1월 ‘이산 특집’이 기록한 30.4%의 최고 시청률과 더불어 2013년부터 한국갤럽이 조사한 ‘한국인이 좋아하는 프로그램’에서 1위를 수년간 차지했다. 2015년 광복 70주년 기념으로 조사한 ‘광복 이후 최고의 TV 프로그램’에서도 6.5%를 기록한 2위 ‘전원일기’의 두배에 가까운 수치인 12.7%를 기록해 1위를 차지했다.
하지만 김 PD는 “2010년이 넘어가며 신선도를 찾아가기 쉽지 않았다”고 밝혔다. 예능 프로그램의 수명이 5년을 넘기기 힘든 상황에서 정해진 포맷 없다는 장점으로 13년을 달려올 수 있었지만, 이와 함께 지상파 TV채널이라는 플랫폼의 한계도 뚜렷했다는 것이다. 김 PD는 “MBC라는 플랫폼에 적용하기는 힘들지만 시즌제나 모바일 방송에서는 눈길을 끌 수 있는 아이템들이 많았다”며 “매주 정해진 시간에 프로그램이 방영되다 보니 더 여유롭고 참신하게 도전해보고 싶어도 쉽지 않은 면이 있었다”고 말했다.
그는 대표적인 예로 ‘면접의 신’ 특집을 꼽았다. 특집을 준비하며 30개가 넘는 기업의 인사담당자를 만났는데 주류회사, 게임회사 등 업계에 따른 인사채용방식이 다르다는 점이 김 PD의 마음에 쏙 들었다고 한다. 하지만 정작 방송에서는 단 세 곳의 회사만 담을 수 있어 기획의도가 잘 안 나타난 것 같았다고. 김 PD는 “만약 시즌제였다면 각 회사마다 한편씩 만드는 등 더 재미있게 풀어낼 수 있었을 것 같다”고 밝혔다.
무한도전 종영의 상징성은 적지 않다. 정 평론가는 무한도전의 종영이 결국 기존 지상파 예능의 큰 틀을 바꾸게 될 것이라 예측했다. 그는 “시청자들은 이제 예능프로그램에도 완결성을 요구하기 시작했다”며 “끊임없이 굴러가는 지상파 예능과 달리 최근의 케이블·웹예능은 시즌제를 통해 예능프로그램을 하나의 작품처럼 만들었다”고 밝혔다. 이어 “무한도전과 김태호 PD 역시 MBC에 이런 변화를 요구했지만 결국 바뀌지 않았다”며 “무한도전으로서도 이런 큰 틀을 쫓아가기 위해 일단락을 지어야 하는 상황이었다”고 설명했다. 한 시대를 이끌고 풍미한 예능프로그램으로 새로운 시대 역시 자신의 종영으로 만들어 낼 것이라는 의미다.
다시 시작될 무한도전 시즌2는 어떨까. 김 PD는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를 무한도전의 미래로 꼽았다. 마블 시네마틱 유니버스에서 감독은 중요하지 않다. 대신 완결된 각각의 이야기가 필요할 뿐이다. 정 평론가는 “‘아이언 맨’, ‘헐크’ 등으로 세계관을 만들고 이런 세계관을 ‘어벤저스’를 통해 연결해 나가는 것처럼 무한도전 역시 13년의 역사를 공유하면서 각 멤버를 주인공으로 하는 새로운 ‘무한도전’이 생겨날 것”으로 예측했다. 하하가 옛 무한도전 멤버들을 다시 찾아가는 시즌제·인터넷 예능, 박명수와 정준하가 무한도전을 그리워하며 진행하는 스텐딩코메디 ‘하와수’ 등의 각 편 등이 예가 될 수 있겠다.
김태호 PD는 “정해진 게 없어 종영이라고 표현할 수는 없다”며 “언제 돌아올지는 모르겠지만, 반드시 돌아오겠다”고 밝혔다. 이어 “매주 친근한 예능도 좋지만 1년에 하나를 하더라도 ‘무한도전’이 특별했으면 좋겠다”며 “종영보다는 시즌 종료라고 생각한다”고 강조했다.
/우영탁기자 tak@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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