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기침과 사랑, 그리고 가난은 숨길 수 없다고들 합니다. 하지만 아무리 숨기기 힘들다고 할지라도 숨겨야만 마음이 편한 것이 있습니다. 바로 ‘가난’입니다. 가난함에 대해 사람들이 가지는 선입견과 혐오감이 심하기 때문인데요, ‘빈혐(貧嫌)’, 즉 가난을 혐오하는 풍토가 우리 사회에 만연한 듯 보입니다.
그리스 신화에 나오는 악당 프로크루스테스는 지나가는 나그네를 집에 불러 자신의 침대에 눕힌 후, 침대보다 키가 크면 다리를 자르고, 침대보다 키가 작으면 다리를 늘려 죽였습니다. 침대를 세상의 기준으로 잡고 그 기준에서 조금이라도 어긋나는 걸 용납하지 않은 겁니다. 자신만의 절대적인 기준을 정해 놓고 모든 것을 거기에 맞추려고 하는 것을 뜻하는 단어 ‘프로크루스테스의 침대’는 여기서 유래합니다.
사람들이 ‘가난’을 대하는 방식도 비슷합니다. 가난에 대한 저마다의 침대를 가지고 “가난한 사람은 이래야 해”라는 기준을 갖습니다. 가난하면 헤진 옷을 입어야 하고, 얼굴도 꾀죄죄해야 하고, 스마트폰도 없어야 하며, 1만원을 넘어가는 밥을 사 먹어서도 안 된다 따위의 기준 말입니다. 그 기준에서 벗어난 모습을 하는 사람들에겐 “가난한데 왜 사치를 부리냐”, “너는 진짜 가난한 게 아니다”라는 비난의 화살이 돌아오죠. 가난한 사람이라고 꼭 구질구질하게 살 필요는 없는데 말입니다.
■“가난한데 감히 돈가스를 먹어?”
최근 같은 동네에 사는 기초수급자 남매가 일식 돈가스 프랜차이즈에서 밥을 먹는 걸 본 한 시민이 “왜 내 세금을 낭비하느냐”며 복지 센터에 항의 전화를 건 일이 있었다고 합니다. 자신이 낸 세금으로 기초수급자 아이들이 사치를 부려 ‘기분을 잡쳤다’는 그 시민은 “굳이 그렇게 좋은 집에서 먹어야 하나. 누나랑 둘이 하나를 나눠 먹는 것도 아니고 둘이 한 접시씩 시켜먹더라. 그냥 분식집에서 먹어도 똑같이 배부를 일을 굳이 좋은 곳에서 기분 내며 먹어야 하나”라며 분통을 터뜨렸답니다. 가난한 사람은 분식만 먹을 수 있고 일식 돈가스는 못 먹나요?
지난해에는 후원 아동이 크리스마스 선물로 20만원 대의 브랜드 롱패딩을 받고 싶다 했다고 후원을 끊어버린 일이 화제가 됐었습니다. 무려 4년 넘게 후원을 해왔다는 한 남성은 인터넷에 ‘20만원 짜리 점퍼를 선물로 요구한 후원 아동’이라는 제목의 분노에 찬 글을 올렸습니다. 남성은 자신을 후원자가 아닌 물주로 생각했다는 생각이 든다면서 이런 내용도 덧붙였습니다.
“아동으로부터 편지를 받았는데 자기가 체르니 몇 번까지 쳤느니 어쩌니 하는 편지를 보냈더군요. 근데 요새 피아노 학원 아무리 싸도 월15만원은 줘야 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제야 느꼈습니다. 아, 얘는 그렇게 어렵지 않게 사는구나…”
해당 글에는 가난해도 비싼 옷을 입고 싶을 수 있지 않느냐는 댓글도 있었지만, 평범한 아이도 갖기 힘든 롱패딩을 요구한 아이가 잘못이라는 댓글도 많았습니다. 이후 후원자가 먼저 아이에게 롱패딩 선물을 제안했기 때문에 아이가 요즘 유행하는 패딩을 고른 것이며, 피아노도 정부 지원으로 배우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지면서 논란이 잦아들긴 했지만, 사회가 가난한 사람에게 허용한 욕구가 굉장히 제한적이라는 걸 보여준 사례였죠 .
가난한 사람이 생존을 넘어선 욕구를 가지면 사람들은 이를 사치라 여깁니다. 먹고, 살고, 입는 것과 같은 가장 기본적인 욕구만이 허용되는 셈이죠. “어딜 감히 가난한 사람이 일식 돈가스를 먹어?” “가난한데 감히 비싼 롱패딩을 입어?”라는 얘기가 나오는 이유입니다. 가난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 사이에 ‘욕구의 경계선’을 그어 철저히 분리하고, 가난한 사람이 그 선을 넘으면 ‘분수를 알라’며 비난하는 현상, 가난을 혐오하는 ‘빈혐’의 일면 아닐까요?
■가난하면 ‘벌레’가 되는 사회
빈혐은 이미 만연합니다. 인터넷에서 가난한 사람을 비하하는 ‘가난충(‘가난’에 ‘벌레 충(蟲)’을 합성한 신조어)’이라는 단어가 종종 눈에 띕니다. ‘가난한 사람들은 마음도 가난해 염치도 없고 인성도 별로다’라면서 가난한 사람을 벌레에 빗대는 거죠.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혐오의 대상이 되는 겁니다.
젊은 세대의 빈혐도 심각합니다. 혹시 ‘이백충’이라고 들어보셨나요? 월 수입이 200만원이 채 안 되는 사람들을 벌레에 빗댄 말입니다. 인터넷 커뮤니티인 ‘메갈리아’에서 가난한 남성을 비하하는 뜻으로 처음 사용됐습니다. 일부 커뮤니티 유저들은 “한 달에 200만원도 못 버는 남성들은 도태되어야 한다”며 가난한 청년에 대한 혐오감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기도 했습니다. 통계청에 따르면 29세 이하 노동자들의 월 임금 총액은 2016년 기준 194만2,000원입니다. 우리나라 청년들의 대부분이 월 200만원을 벌지 못한다는 거죠. 실제로 한 취업 포털사이트에서 게시글 제목에 “이백충 탈출!”이라는 문구를 사용해 뭇 취준생들의 마음에 상처를 입히기도 했습니다. 네티즌들은 “나도 200만원을 못 버는데, 그럼 내가 벌레라는 소리냐”라며 분노했고, 해당 사이트는 사과하고 슬그머니 제목을 바꿔 달았습니다.
‘노란 장판 감성’이라는 단어도 있습니다. 가난한 집의 방바닥에는 주로 노란 장판이 깔려 있다는 데에서 유래한 말로, 세련되지 못하고 구질구질한 것을 조롱할 때 쓰입니다. 이처럼 일상 생활에서 ‘가난’은 비하의 조롱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네덜란드의 역사학자 럿거 브레그만(Rutger Bregman)이 말했습니다. “가난은 인성 부족이 아니라 금전 부족이다”라고요. 단지 가난하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이 가지는 욕구를 폄하하고, 그들이 처한 가난을 조롱의 대상으로 삼을 권리는 없다는 겁니다. 우리도 이제 가난을 혐오하는 ‘빈혐 사회’에서 벗어나야 하지 않을까요?
/양지윤기자 yang@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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