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진흥위원회(위원장 오석근·이하 영진위)가 이현주 감독에게 성폭행 피해를 당한 학생 A 씨에 대해 이들이 소속돼 있던 한국영화아카데미(이하 아카데미)가 사건을 조직적으로 은폐했다고 발표했다.
해당 사실은 지난달 A 씨가 ‘미투’ 운동을 통해 아카데미 내에서 피해자에게 고소 취하 종용 등 2차 가해와 은폐 의혹을 제기하면서 공개됐다. 영진위는 2차 가해 사실 여부 등을 조사하기 위해 ‘아카데미 사건 진상조사위원회’를 꾸려 20일 간 조사를 실시했다. 이현주 감독의 성폭행 사건은 지난 1월 준유사강간 혐의로 대법원 판결이 난 바 있다.
영진위가 21일 발표한 조사 결과에 따르면 아카데미의 책임교수 B 씨와 아카데미 원장 C 씨를 비롯한 아카데미 교수들은 피해자 A 씨에게 고소 취하를 종용하거나 이현주 감독에게 유리한 방향으로 재판에 관여하거나 학교 차원에서 사태를 파악한 이후에도 ‘연애담’ 홍보를 계속하는 등 2차 가해를 했다.
영진위는 “사건의 최초 인지자 책임교수 B 씨는 피해자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고 사건을 은폐하고자 한 사실이 알려졌다. 피해자는 수차례 고소 취하를 요구받는 과정에서 B 씨의 부적절한 언사로 고통을 겪었음을 호소했다”며 “B 씨는 가해자 측 증인으로 재판에 출석해 변호인이 의도한 바대로 피해자에게 불리하게 활용될 수 있는 취지의 증언을 했고, 아카데미 직원에게 가해 학생의 소송 관련 요청에 협조할 것을 부탁하는 등 재판에 관여한 사실도 있었다”고 말했다.
아카데미 원장 C 씨에 대해서는 “책임교수 B 씨를 통해 성폭행 및 고소 사실을 인지하였음에도 상급자(사무국장 및 위원장) 및 동료 교수들에게 이를 알리지 않고 은폐하였으며, 피해 학생을 위한 보호조치를 취하지 않았다”며 “C 씨는 B 씨의 독자적 사건 처리를 묵인하는 한편 가해자 졸업영화에 대한 학교 차원의 지원 및 홍보를 적극 지속한 결과 피해자의 고통이 가중되었다”고 전했다.
이밖에 교수들 또한 피해자 A 씨가 적극적으로 도움을 요청하는 의사표시를 하였음에도 이를 공론화하거나 피해자를 구제하기 위한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영진위에 따르면 이들 관계자는 유죄 판결이 선고된 사실을 알지 못할 정도로 사건에 무관심했던 것.
마지막으로 영진위는 “아카데미 행정직의 선임 직원은 원장의 요구에 동조하여 본 사건을 사무국에 보고하지 않았고, 하급 행정직원은 상부 결재 없이 가해자에게 법원에 제출될 사실 확인서를 작성해주고서도 사후보고도 하지 않는 등 보고시스템이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결과 사건이 장기간 은폐되었다”면서 “영진위 오석근 위원장은 16일 피해자에게 조사결과를 알리면서 직접 사과를 하고, 재발 방지를 위한 대책도 세우겠다는 의지도 전했다”고 사건의 장기간 은폐를 인정하고 향후 이 같은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노력하겠다는 각오를 다짐했다.
현재 영진위는 조사결과를 감사팀에 통보해 필요한 행정 절차를 마쳤으며 규정에 따라 인사위원회에 회부해 징계 절차를 진행할 예정이다. 향후 교내 성폭력 사건에 대한 이 같은 일을 예방하도록 아카데미 내부 운영 체계를 점검하고 근본적인 개선 방안을 적극 모색할 예정이다.
[사진=영화 포스터]
/장주영기자 jjy0331@sedaily.com
< 저작권자 ⓒ 서울경제, 무단 전재 및 재배포 금지 >